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 북향인 이유
[전갑남 기자]
▲ 만해 한용운의 유택 심우장(사적 550호). 북향의 한옥으로 멋스러움을 지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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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로 그늘진 가로수길을 걷다 작은 공원에서 만해 한용운 동상을 만났습니다. 길 한쪽에 '만해 한용운 심우장', '북정마을', '성북동비둘기쉼터' 이정표가 보입니다.
만해 선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심우장
데크 계단을 오르자 좁고 후미진 북정마을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길가를 따라 빨간 연등이 줄지어 매달려 있습니다. 처음 찾는 사람은 길모퉁이 끝에 절집이 있나 할 것 같습니다.
▲ 만해 한용운 심우장 가는 오르막길에 연등이 걸려있습니다. 북정마을과 성북동비둘기 쉼터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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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장 가는 길에 만해 선사의 어록이 쓰여있습니다. 아래 글귀가 가슴에 닿습니다. "민족의 자존심은 항상 자존성에 따라 팽창하며 그 한도는 민족자존의 길에 이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것이니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조선의 독립을 감히 막지 못할 것이다." - <조선독립에 대한 감성의 개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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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장 간판이 있는 대문, 쪽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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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 않으리라.
담벼락에 표시한 한용운 연대표를 보니 스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서재로 쓰였던 사랑방에서 찬불가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옵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네댓 명이 예불을 마친 듯싶습니다.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자들이신 모양이에요?"
"네, 만해불교청년회라는 모임입니다."
"아! 그러세요. 맛난 거 잘 먹겠습니다."
▲ 내가 방문한 날, 만해불교청년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불경 공부를 하면서 청소봉사도 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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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장 뒤안. 예스러운 멋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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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장 건물 한쪽에 자라고 있는 큰 소나무. 만해 선사의 기개를 닮은 듯 우람하게 서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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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의 초상화. 선생의 표정에서 꼬장꼬장한 성격과 강단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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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에는 만해 선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님의 침묵 시집을 들쳐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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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선사의 붓글씨, 전대법륜(轉大法輪). '큰 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으로 부처님시 설법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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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길가에 있는 만해산책공원. 이곳에 만해 선생의 동상과 <님의 침묵> 시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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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볕이 들어와야 할 시간인데, 그늘이 졌습니다. 심우장이 북향집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은 남향으로 하면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게 되니 이와 등을 지고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한용운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05년 27세 나이로 승려가 되고,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 행동강령이 담긴 공약 3장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이로 인해 한용운은 3.1운동 주동자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선생은 강연과 잡지 등을 만들어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독립운동을 모의하다 또다시 수감되었습니다.
1920대와 30년대 일제는 더욱 혹독한 탄압을 일삼았습니다. 탄압과 회유에 못이긴 지식인들은 하나둘 변절하고 투항하기도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시인 한용운은 1926년 <님의 침묵>과 같은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가 변절하여 넘어가는 걸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길에서 최남선을 만난 한용운은 "내가 아는 육당은 죽어서 장례까지 치러버렸소!"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 툇마루 아래 흰고무신. 선생께서 가거하면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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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일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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