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김남주의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

김현 2024. 9. 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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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지금 김남주] 시인 김남주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말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김현 기자]

1994년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시인 김남주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두어 달 전인 12월 4일 새벽 4시 30분 그는 이런 일기를 썼다.

어머니 아버지 노동으로 먹고 자라고 학교도 다녔다.
광주에서 학교 다닐 때는 친구나 선배의 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감옥에 다녀와서는 글 몇자 쓰고 1만원도 받고 5만원도 받고 말 몇마디 하고 3만원도 받고 30만원도 받고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다른 사람의 신세만 지고 산 셈이다. 아주 쉽게, 노동의 고역도 없이.
앞으로 내가 건강을 되찾는다면, 그리하여 내 손으로 노동의 연장을 들고 논과 밭에 설 수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받아먹고만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베풀면서 사는 그런 사람이.

기압의 영향 때문인가? 꼭 밤이면 등의 통증이 오기 시작해서 날이 샐 때까지 이어진다. 밤이 무섭다.

(후략)

- 김남주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창비, 1995) 중에서

밤이 무섭다, 라는 문장을 여러 번 되뇌어 읽었다. 그도 사람이구나. 잠 못 드는 통증의 시간 속에서 그가 염원한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제 몸을 써서 일하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검은 불 자국을 남겼다. '혁명 전사'로 불리는 이가 꿈꾸던 해방 세상이 그제야 호미나 낫처럼 손에 잡히는 것도 같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여기 우리가 소원하는 바도 바로 일하며 베푸는 삶이 아닌가.
'거울 앞에 선 자'가 되도록 하는 시
 고 김남주 시인
ⓒ 해남군
김남주의 작고 10년을 맞아 출간된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2004)에 게재된 연보에 따르면, 그는 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나 삼산초등학교와 해남중학교를 거쳐 광주일고에 입학하지만, 획일적인 입시 교육에 반하여 자퇴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1969년(23세) 전남대 영문과에 진학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 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그는 1972년 친구 이강과 함께 전국 최초의 반유신 투쟁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하여 전남대·조선대 및 광주 시내 5개 고등학교에 배포했고, 이듬해 2월 전국적인 반유신투쟁을 전개하고자 역시 친구 이강과 함께 지하신문 <고발>을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김남주는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8개월간 수감됐다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전남대 제적), 1974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농민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그해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진혼가>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자퇴 이후 '함성'과 '고발'을 거쳐 '잿더미'와 '진혼가'로 이어진 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어떤 연유로, 무엇을 위하여 시인이 되고자 했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잘 알려진 대로 이후 김남주의 삶과 문학은 자신이 뜻한 바에 따라 농민, 민중, 민족, 혁명과 해방을 향하여 돌진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항상 선봉에 선 그의 삶과 시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저 일련의 단어들이 상징하는 삶을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부당한 현실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함이 없기 때문이다. 수년 전, 우리가 이룩한 바 있는 '촛불혁명'은 민중의 함성과 고발이었고, 진혼가가 울려 퍼지는 잿더미와 같은 현실을 더는 견딜 수 없던 시민들의 혁명이었다.

김남주는 여러 글과 시에서 '농민'으로 대변되는 민중이 그들의 논리에 따라 이미 혁명의 주체임을 밝히며 자신의 시를 그들에게 바친다.

농민들은 본능적으로 혁명적이다.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자기들 적인가를 본능적으로 알아내고야 만다. …(생략)… 내 시는 근본적으로는 이들 농민들에게 바쳐진다. 농민들의 자식이고 동무인 노동자들에게도 바쳐진다. 노동자와 농민과 어깨동무하고 '우리'가 되어, '나쁜 사람들' 노동의 적 자본가들을 향해 전진하는 혁명전사들에게도 바쳐진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 시의 내용은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따뜻한 불, 밥이며 집이며 옷이며 학교며 노래며, 이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되 그것을 제 뼈와 살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애정이고, 기본적인 그런 것들 갖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남의 노동의 댓가를 착취함으로써 독점하려는 자들에 대한 증오이고, 증오의 대상 '나쁜 사람들'을 찾아 무기를 벼르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이다.

- 시집 <사랑의 무기> (창비, 1989) 중에서

내 삶과 시가 무엇에 관한 증오이며 누구에 관한 찬가인지 차분히 살펴본 적 없다. 나의 삶이나 시를 누구에게, 무엇에 바칠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최근 나는 '거울'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시 한 편에 "그런 적 없는 일. 그것이 우리를 되비춘다"라는 문장을 적었다. (옛) 시인의 시가 오늘에 와 우리에게 하는 역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선 자가 되도록 하는 것.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도록 하고, 꿈꿔본 적 없는 것을 꿈꾸도록 하며, 증오의 대상에 맞서 어깨동무하고 '우리'가 되도록 하는 것.
우리가 어깨동무 해야 하는 이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7월 18일 오후 동성 동반자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가운데 해당 소송의 당사자인 김용민·소성욱 부부가 기자들과 만나 재판에서 이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유지영
언젠가 '노동과 시'를 연결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그것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사랑이라는 보금자리에, 차별이라는 힘에 닿게 된다고 썼다. 모든 사랑이, 혼인이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18년째 교제 중인 동성 파트너와 함께 실평수가 10평 정도 되는 임대아파트에 오랫동안 거주 중이다. 바깥-사람, 안-사람이 되어 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임금노동을 하고 또 한 사람은 가사노동을 주로 맡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랑은 자주 공공연할 수 없고, 우리의 혼인신고는 합법이 아니며,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우리는 신혼부부 주거 지원 혜택 같은 사회적 보장을 받을 수 없다. 한때 뿌리 깊은 환멸에 힘입어 나는 이성애자이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성애자의 목소리로 드러나는 '노동자'의 언어, 이성애자들이 외치는 '노동 해방'에 신물이 난다고, 일하는 동성애자의 이야기, 그들이 꿈꾸는 혁명과 해방이 문학적으로 더 흥미롭다고 적었더랬다. 그 마음 한쪽에는 억압과 불평등에 반대하고 해방을 외치는 이들의 민중 속에 과연 성소수자는 있는가? 라는 의문도 얼마간 있었다.

그리고 김남주의 삶과 시의 파동에 힘입어 이제 와 나는 성소수자들이 농민들의 자식이며 동무이고 노동자이며 어깨동무하고 우리가 될 이들이라는 말로 그때 그 글의 마지막을 다시금 적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그건 비단 김남주의 삶과 시 때문만이 아니다. 거울로 삼을 만한 "자신의 몫의 희생을 자기 시대의 역사에 아낌없이 헌납(염무웅)"한 시인과 시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 투쟁 중이던 김진숙과 연대하며 진은영 시인이 적은 아래의 시는 1994년 2월, 죽음을 앞둔 '김남주의 목소리'를 빌려와 역사에 부치는 화두를 던진다. "서로 다른 풍경 뒤에 놓인 동일한 원인." 우리가 어깨동무해야만 하는 이유를.

거짓 없는 흰 발로 올라선 나의 양동이가 차이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작은 수첩에 적은 말은
해방
제국으로부터의 해방
모든 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이보시오 영리한 아가씨
당신은 서로 다른 풍경 뒤에 놓인 동일한 원인을 잘 알고 있다오

- <Bucket List-시인 김남주가 김진숙에게> 시집 <훔쳐 가는 노래>(창비, 2012)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현 시인입니다.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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