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창업주 공부'를 권하는 이유
"보래이. 100개 중 1개만 불량이어도 다른 99개까지 불량이나 마찬가진 기라."
1947년 LG그룹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은 동생들에게 강한 어조의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락희화학공업사를 갓 설립한 신출내기 사장이었다. 회사에선 신제품으로 ‘럭키 크림’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불티가 났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간간이 불량품이 나오자 구 회장은 직접 공장에 나가 불량품을 걸러냈다. 이를 본 동생들은 "불량품 좀 나오면 어떠냐"며 그런 형을 말렸다. 구 회장은 6남 중 장남이었다. 그러자 구 회장은 위의 말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완성도를 강조한 그의 말은 5일 현재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트윈타워, LG전자 임직원들의 사무실과 회의실에 액자로 벽에 걸려 있다. LG전자 브랜드북 제작소가 써서 지난달 6일 출간된 책 ‘담대한 낙관주의자 LG전자 사람들’도 이 내용을 초장부터 소개하고 있다. 책은 이 구절이 "회초리" 같다고 했다. 우리 속담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를 바꾼 ‘벼룩 한 마리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워라’는 주문과 함께 창업주의 구절이 하나의 신조처럼 회사 곳곳을 돈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노력의 본보기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사원 중엔 창업주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LG전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벽에 걸린 액자는 창업주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가 담겼을 테지만, 정작 최근 직원들은 액자를 그냥 지나쳤을 수 있다. 그런 사정들은 비단 LG전자에만 있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유수의 기업들 모두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조직보다 개인의 성취가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어쩌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창업주의 이름이 직원들의 돈을 벌어다 주거나 밥을 먹여주지도 않는다. ‘반드시 외워라’는 강요나 압박이 이전 세대들의 잘못된 관행인 것도 분명하다.
다만 꼭 창업주의 이름과 그의 일대기를 알아야 하는 시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모든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도기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AI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부터, AI가 적용돼 사람들의 생활에 편의를 주는 제품들의 생산과 활용까지 모든 과정이 이전보다 복잡해지고 다변화되고 있다. 기업이 만들어서 파는 TV나 스마트폰, PC 등은 점차 작아지고 가벼워지면서 생산에서부터 극도의 세밀함을 요하는 게 대표적이다. 20, 30년 전보다 자본과 생산력을 갖춘 기업은 많아져 AI 경쟁은 이전 시대보다 더 치열하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시장 상황의 급변 등 변수까지 더해져 기업 총수부터 직원들에겐 빠른 판단과 대응을 요하고 있다.
최근엔 진입과 투자의 타이밍을 놓쳐 방황하는 기업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시점을 놓쳐 막심한 손해를 입으면 회복이 어렵다. 재도전의 여지도 찾기 어렵다. 그런 기업들에는 다소 낡은 교훈일 수 있으나 '창업주 정신'을 한번 돌아보기를 권해본다. 위기를 돌파할 해답은 때로 과거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누구나 학교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들어봤을 법한 이 주장은, 역사가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전개된다는 주장이다. 창업주를 앎으로써 그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고 그것은 회사의 현재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도 어쩌면 애사심이 생기거나, 내 직업에 대한 열의,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찾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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