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전 오늘, 올림픽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참사
[김성호 기자]
이열치열, 역대급 무더위를 뜨거운 열정으로 덮어버린 2024 파리 올림픽이 바로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올림픽의 뒤를 잡아 열리는 패럴림픽이 한창인 가운데 올림픽과 패럴림픽, 스포츠로 하나 됨을 말하는 이 국제적 행사의 의미를 돌아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다섯 개 대륙을 상징하는 색색깔 원형 고리가 이어진 오륜기의 의미대로 올림픽은 세계인의 우정과 결속을 위한 장으로서 기능한다. 전 세계인이 인간이 부단한 노력을 들여 자기를 극복한 성취를 확인하며, 그 경쟁이 빚어내는 즐거움을 향유한다.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올림픽이라 하겠다.
52년 전 오늘인 1972년 9월 5일 새벽,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사건이 일어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 이스라엘 국가대표 선수단 코치와 선수 11명이 사망한 비극이다.
▲ 뮌헨 스틸컷 |
ⓒ CJ엔터테인먼트 |
전 세계에 흩어져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저들이 믿는 종교가 약속하였다는 땅으로 돌아가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국민국가를 건설한다는 게 시오니즘이다. 수천 년에 이르는 차별과 박해, 그 정점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이루리라는 신화적 염원은 2차 대전 가운데 영국 정부의 책임 없는 약속을 통해 현실화된다.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은 그 땅에 본래 터 잡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밀어내게 되니, 팔레스타인과 역사며 종교적 뿌리가 같은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불화해 온 건 차라리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오늘까지 전쟁의 참화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이 땅의 불화는 1970년대 정점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선전포고하며 시작한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압도적 전력을 과시한 게 불과 5년 전인 1967년의 일이다.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한 턱없이 작은 국토에 적대적인 주변국에 둘러싸여 있던 이스라엘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앞선 전쟁들에서 우위를 점했다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집트를 위시한 중동 국가들이 당대 강국이던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물밑에선 팔레스타인 비밀조직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활발히 움직이니 이스라엘의 고민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정보 조직 모사드의 활동을 크게 늘이는 한편, 시오니즘 테러 집단들까지 받아들여 적대적인 인사들을 암살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군사력을 증강해나갔다. 그 결과가 제3차 중동전쟁,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을 순식간에 무릎 꿇린 바로 그 전쟁이다.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까지 후원하며 전쟁을 준비해 온 이집트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시리아와 요르단, 이라크 등 제법 전력이 있다고 평가됐던 국가들 또한 하나같이 참전한 부대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 뮌헨 스틸컷 |
ⓒ CJ엔터테인먼트 |
뮌헨 올림픽 테러는 이처럼 그릇된 길로 접어든 역사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모여 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 즉 웨스트뱅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요르단이 갈수록 강성화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갈등을 빚다 아예 이들을 타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낳은 1970년의 이 사건은 '검은 9월 Black September'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2년 뒤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테러를 저지른 '검은 9월단 Black September Organization'은 그 이름부터가 이를 딴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뮌헨> 제작에 돌입하며 수많은 우려가 따랐다. 누가 뭐래도 스필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공한 유대인이 아닌가 말이다. 앞서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호소력 있게 연출한 그가 또 한 번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라고 떠드는 이가 많았다.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이 한때 제노사이드의 피해자였으나 이미 역사적 가해자로 탈바꿈한 유대인과 유대국가의 잘못을 외면한 채 그 고통만 부각하는 작품을 찍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여론도 작게나마 들려왔다.
▲ 뮌헨 스틸컷 |
ⓒ CJ엔터테인먼트 |
<뮌헨>은 역사적 사건이 된 참극을 기존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뇌된 광신자 집단인 팔레스타인 테러단체가 무고한 이들을 인질로 잡아 일으킨 사건, 또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해묵은 갈등, 또 냉전의 양 축의 무책임함과 원인을 제공한 영국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걸어온 잘못된 길 따위의 흔하고 익숙한 거대한 이야기는 저기 한쪽으로 치워진다. 대신 카메라 가운데 서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모사드 요원이기도 한 아브너 카우프만(에릭 바나 분)이 팔레스타인인 11명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명령에 따른 것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작전, 눈에는 눈이며 피에는 피라는 인간의 법칙에 따라서 그는 적합한 인물들을 선발해 임무를 수행한다. 한 명씩 팔레스타인 요인들을 제거해나가는 아브너의 팀, 조국을 위한 충성과 적에 대한 적개심, 또 사명감이며 명예 따위가 도달한 결과는 결국 제 반대편에 섰던 이들이 그러했듯 피의 복수, 살인과 테러일 뿐이다.
▲ 뮌헨 포스터 |
ⓒ CJ엔터테인먼트 |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잃은 것이 무엇일까. 그를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필버그가 해내고자 하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질릴 만큼 담백하게, 그리하여 어느 극적인 연출보다도 섬찟하게 느껴지는 암살이 반복되는 사이, 관객은 뉴스며 역사가 담지 못한 폭력의 연쇄 고리가 진실로 어떤 모양인지를 마주하게 된다. 대의명분과 같은 거대 담론 사이에서 소실된 인간적 가치들을 꺼내어서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다.
피를 피로써 갚는 일은 답이 될 수 없다고, 골은 더욱 깊어지고 복수는 더 처절해질 뿐이라고 스필버그는 말한다. 지난 역사를 앞에 두고서 누가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시오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에 이르는 스필버그의 여정이다. 성공한 유대인 감독이란 세간의 평가에 스필버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그저 성공한 유대인이 아니라고, '위대한' 유대인 감독이라고. 이런 작품 앞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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