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의사만 갖다 두면 해결될까... 지역·군 의료 붕괴?

임병도 2024. 9. 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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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응급실 진료 중단에 공보의·군의관 투입...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지적

[임병도 기자]

▲ 전국 곳곳 응급실 운영 파행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 연합뉴스
응급실 진료 중단 사태를 막겠다며 정부가 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선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4일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아래 대공협)는 보도자료를 통해 충북 충주시가 충주의료원에 공보의를 파견해 지역 응급의료 공백을 막겠다며 일방적으로 다른 지역에 파견한 공보의를 복귀·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파견 대상인 공보의들은 사전에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에 복귀 재배치 결정이 된 공보의는 충주시 소속 공보의 8명 중 4명으로 충주시는 공보의들을 8월 30일에 충주의료원에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보의들이 이동 배치 사실을 안 것은 이틀 전인 8월 28일 오후였습니다. 심지어 하루 전날인 29일에 안 공보의도 있다고 합니다.

대공협 관계자는 의료전문 언론 <청년의사>와의 통화에서 "(배정된 시간 동안은) 공보의 1명이 의료원 응급실을 혼자 보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건 응급의학과 전문의조차 어려운 일이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은 더 어렵다"라며 "공보의들 내부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근무 형태라고 결론 냈다. 이대로면 100% 사고가 난다고 보고 (충주시와)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성환 대공협 회장은 "충주시 외에도 공보의나 군의관을 응급실에 임시 배치해 현재 위기를 막겠다는 방침이 이어지고 있다.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응급실에 의사만 '갖다 두면' 제대로 돌아갈 거라 착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리한 근무 요구에 '지역·군 의료 체계' 붕괴까지... 총체적 난국
▲ 응급의료센터 찾은 시민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내원객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 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후에 저희가 비상진료 대책으로 (공보위, 군의관 투입을) 2월부터 지금껏 쭉 해오고 있다"며 공보의와 군의관 파견에 대한 의료 공백 우려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선 공보의와 군의관 투입으로 불거지는 폐해와 불만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공보의들은 전공의도 아닌데도 주 80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연속 근무에 따른 피로 누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노령층 인구가 많고 지역 의료 기관이 없는 특성을 고려할 때 공보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대형병원 차출은 공공 의료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군의관 차출로 인한 군 의료 공백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5월 군기훈련(얼차려) 중 쓰러져 숨진 육군 12사단 훈련병은 강원도에만 세 곳의 국군병원이 있었지만 속초의료원과 강릉아산병원으로 전원 됐습니다.

당시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페이스북에 "훈련병 사망 사건에서는 그 어떤 군 병원도 나오지 않았다. 젊은 군인이 무려 13개 군 병원을 놔두고 속초의료원에서 강릉아산병원으로 갔을까. 이번 사건에서 놓치고 있는 핵심은 있으나 마나 한 군 병원과 부실한 군 의료체계"라고 지적했습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최전방 12사단과 국군홍천병원은 불과 66km로 60분 걸린다"며 "병사들 살리라고 뽑은 군의관은 모두 민간병원에 보내고 정작 아픈 젊은 병사는 덧없이 죽인 이들이 정치 관료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이를 용인한 신원식 국방부장관"이라며 "(이들은)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

박민수 복지차관 "전화할 수 있으면 열 나고, 피 많이 나도 경증"
▲ '구급차 향해'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4일 군의관 등 보강 인력을 긴급 배치했다. 이날 서울 양천구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에서 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민수 복지2차관은 경증과 중증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본인이 전화를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경증"이라며 "열이 나거나 배가 아프거나 찢어져서 피가 나도 경증에 해당된다"고 말했습니다.

열경련으로 응급실 11곳을 전전하다 의식불명에 빠진 21개월 여아의 경우에도 "소아도 대부분의 경우 열이 나거나 하는 건 경증"이라며 "소아의 경우에는 별도의 응급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장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박 차관의 발언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정책실무자가 이렇게 무지한 발언을 일삼는 것이 충격적"이라며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는 것은 의사들도 어렵다. 이런 식의 판단으로 응급의료를 운영한다면 오히려 중증환자가 적시에 진료받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윤석열 "국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도 의정부시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 응급 의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4.9.4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밤 경기도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의료진에게 "정부가 무엇을 하면 의료진 여러분들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기탄없이 이야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창희 의정부성모병원 병원장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운 교수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어 배후 진료에 차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라며 "늘 긴장 속에서 보내는 의료인들이 충분히 보상받게 해주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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