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꺾인 공익법인]출발부터 발목 VS 악용에 자승자박…"당근과 채찍 함께 써야"
기부금 재산 활용 제약↑…운용 보수적
"사회로 부 환원 유도해야"
대기업 집단들이 소속 공익법인에 지분을 출연해두고 있는 배경은 결국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막기 위해 각종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끊임없이 편법과 해법을 찾는 공방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악용되고 금지하고…창과 방패의 싸움
대기업 집단이 소유 재단에 지분을 출연하는 것은 의결권을 확보하고, 그룹 내 지배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일각의 지적이 있다. 이미 여러 재벌이 재단에 출연한 지분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발휘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종종 공익법인 운영실태를 조사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삼성SDI는 2016년 초 보유 중인 삼성물산주식 500만주를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내놓았다. 이 중 130만주는 이재용 삼성전자회장(당시 부회장)이 사들였고, 나머지 200만주는 삼성생명에 딸린 삼성생명공익재단이 3000억원 이상을 들여 샀다. 이재용 회장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삼성이 재단을 지배에 활용했다면, 한진은 계열사를 우회 지원하는 통로로 썼다. 한진그룹에선 2017년 초 대한항공이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4577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이때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정석인하학원을 활용했다. 정석인하학원이 진에어등 계열사 5곳으로부터 현금 45억원을 증여받은 뒤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52억원 규모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공정위는 "공익법인 고유목적 사업과 무관한, 대한항공을 위한 출자"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2020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에서는 상호출자제한집단, 즉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취득하거나 갖고 있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막되 공익법인이 특정 계열사 단독주주(100% 소유)인 경우 등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하기로 했다.
공익법인 기부금으로 적극적 활동 어려운 한계도
공익법인들이 자산 증식만 했을 뿐 공익활동 성장은 미진했다는 지적이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도 있다. 애초에 공익법인의 기부 재산 운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운신의 폭을 크게 좁혀 놨다는 것이다. 공익법인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부 또는 무상으로 취득한 재산은 기본재산으로 분류해야 한다. 그 외의 재산은 보통재산으로 구분된다. 반드시 돈을 보관하는 통장을 나누고, 그 돈을 사용할 때도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번 기본재산으로 분류되면 좀처럼 보통재산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또한 기본재산 비중이 큰 경우 기금 운용수익만으로 재단을 운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과감한 투자를 시도했다 실패할 경우 주무부처에서 강력한 감독과 제재가 뒤따른다. 결국 기본재산이 배당만 받고 방치되며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물론 공익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공익법인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등 해외에서는 기부금으로 적극적인 투자도 하고 활동도 하는데 우리는 허가를 받고 돈을 쓰는 통제 형태의 시스템이라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낙수효과 필요…악용 막되 사회 환원 길 터줘야
결국 악용은 ‘채찍’으로 막되 공익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각종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산가들의 부를 사회로 환원시키는 통로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한 공익법인 관계자는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기업과 자산가들의 기부가 재단과 그 공익활동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마저도 없다면 극심한 가뭄에 처하는 곳들도 많다"라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기부를 악용하는 경우는 세무 조사 등을 통해서 제대로 세금을 매겨야 하지만, 동시에 각종 상속세, 증여세 면제 한도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면서 기부를 활성화해야 한다"라며 "공익법인이 쌓아둔 주식의 배당액이 평가액의 1% 미만이라면 주식 일부를 매각해 목적사업에 사용하게 하는 의무사용규정 등을 활용해 부를 쌓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일정하게 쓰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금이 이같은 부분을 손볼 적기라고 강조했다. 전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산가들의 세대와 인식이 바뀌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신흥 부자들도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이 시기가 자산가들이 일군 부를 자녀에게 상속하는 문화에서 사회에 기부하는 문화로 바꿀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라며 "약간의 절세 유인책을 주더라도 자녀와 가족이 아닌 사회로 부를 환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끌고 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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