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지만…"지배구조 개선·성과주의 안착 필요"[사면초가 임종룡號]⑤
"이사회 투명성·독립성 확보되면 조직문화도 자연스레 개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 사건으로 시스템을 넘어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조직문화’의 혁신이 긴요하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기업개선부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사고, 김해지점 대리급 직원의 180억원대 횡령사고 등 여러 차례 금융사고로 거듭 내부통제를 강화해 왔음에도 신임 회장·행장 체제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탓이다.
금융권에선 우리금융·은행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약 20년간 ‘주인 없는 기업’으로 생존해 온 데 따른 후유증이라고 보고 있는 가운데,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같은 처지였던 KB금융지주의 사례에도 주목하고 있다. 물론 KB금융지주도 많은 한계점이 있지만 KB금융지주처럼 지배구조의 투명성·독립성이 확립되고 성과 중심의 승진·보상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조직문화도 변화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연줄·계파 판쳤던 KB, 어떻게 달라졌나
우리금융·우리은행과 KB금융지주·KB국민은행은 과거에 꼭 닮은 구석이 있었다. KB국민은행 역시 주택은행(옛 동남은행 포함)과 국민은행(옛 장기신용은행·대동은행 포함)이 대등 합병해 출범한 은행인 까닭이다. 아직도 우리은행이 ‘상업은행 출신’ ‘한일은행 출신’이란 꼬리표가 붙는 것처럼, 예전엔 국민은행에도 ‘1채널(옛 국민은행 출신)’ ‘2채널(옛 주택은행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통합 국민은행은 우리은행과 달리 별도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지는 않았으나 출발선이 국책은행이었던 만큼 출범 첫해인 2001년 말 기준 정부가 9.64%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 주주 역할을 했다. 이 외엔 뱅크오브뉴욕(7.59%), 골드만삭스(6.82%)를 비롯해 외국인 지분율이 71.1%에 달했다.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전량을 보유했던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주인 없는 기업이었던 셈이다. KB금융·KB국민은행이 초기부터 거센 ‘외풍’에 시달린 이유다.
실제 대등 합병 이후 KB국민은행장 7명을 출신별로 보면 외부 출신이 4명, 국민은행 출신이 1명(민병덕 전 행장), 장기신용은행 출신이 1명(허인 전 행장), 주택은행 출신이 1명(이재근 행장)이다. KB금융 회장의 경우 6명 중 단 1명(양종희 회장)만이 내부(주택은행) 출신이다. 나머지 5명의 회장 중엔 소위 이명박 정부 ‘금융계 4대 천왕’이라 불리던 어윤대 전 회장,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황영기 전 회장, 관료 출신인 임영록 전 회장 등도 있었다.
이런 외풍과 낙하산에 따른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2014년 벌어진 주전산기 교체 사태다.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임영록 회장과 한국금융연구원 출신 이건호 행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일각에선 양자 간의 충돌을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을 일컫는 말)’와 ‘연피아(한국금융연구원 출신을 일컫는 말)’의 대립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결국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은 동시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런 외풍과 이에 따른 혼란으로 한때 ‘리딩뱅크’ 자리까지 빼앗겼던 KB금융지주는 그러나 윤종규 전 회장 체제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윤 전 회장 역시 2002~2004년 통합 국민은행에 부행장으로 영입되긴 했으나 한국외환은행에서 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삼일회계법인에서 주로 근무했던 외부 수혈 인사다. 그는 2014년 취임 직후 3년간 KB금융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직을 겸임하면서 그룹 전반의 조직문화를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립된 이사회 운영, 예측 가능한 승계구도…외풍 차단 일부 성공
윤 회장 체제 아래서 KB금융은 ‘연줄’에 의한 인사를 막겠단 취지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KB금융은 사외이사 후보 추천은 주주와 외부기관이, 검증 및 임명은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맡도록 이원화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자칫 ‘내치(內治)’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표이사는 사추위에서 제외됐다.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도 탄탄히 마련했다. KB금융은 2016년부터 차기 후보군을 일찌감치 마련해 상시 관리 및 평가하는 방식으로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내부 후보는 내부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평가·검증하고, 외부 후보는 외부 컨설팅 기관에 일임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지난 회장 후보 추천 당시 최종 후보군에 든 내부 인사 양종희 회장, 허인 전 KB국민은행장의 경우가 그랬다. 십수 명의 후보가 자·타천으로 난립했던 우리금융과는 다른 양상이다.
KB금융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박재하 전 금융연구원 부원장도 “과거 사외이사로 활동하던 시기를 되짚어 보면 윤 전 회장은 이사회의 독립성과 권위를 존중했고, 사외이사들 스스로도 회장이나 관(官)의 눈치를 보지 않는 등 독립성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었다”면서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풀(Pool)을 사전에 만들고 외부자문단을 통해 후보군의 점수를 산술적으로 평가·관리하다 보니 경영진이나 금융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새로 선임된 이사들도 비교적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만큼 눈치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KB금융도 윤 전 회장 퇴임 직전·후로 그간 쌓아온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진 승계 프로그램이 다소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승계 레이스 초반까지만 해도 “KB금융은 승계 프로그램을 잘 갖춘 편”이라고 호평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막판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KB금융은 적어도 10여년 전 회사를 옭맸던 외풍·낙하산 인사 관행과 최고경영자(CEO)의 개입 등 관치(官治)·외치(外治)에선 비교적 자유로워졌단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은 비교적 이사회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운영과정에서도 이런 원칙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가 일방적으로 들러리 역할을 하지 않고, 승계 과정도 비교적 투명하다 보니 줄 서는 문화가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고 조직문화도 조금씩 변화하게 된 것”이라며 “고 김정태 전 행장, 윤 전 회장 등 걸출한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이 이를 주도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정답은 없다지만…지배구조·조직문화 동시에 바뀌어야
금융권에선 조직문화 혁신과 관련한 ‘정답’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각 사가 겪어온 역사가 다르고, 이를 토대로 형성된 조직문화 또한 상이한 만큼 일률적인 해법을 내놓을 순 없단 것이다. 다만 우리은행 안팎에선 KB금융 등의 사례를 볼 때 성과 중심의 승진·보상 시스템과 함께 지배구조 및 리더십의 혁신이 선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금융 전 고위 관계자는 “수년 뒤엔 한빛은행 입사자가 행장, 나아가 회장직에 오를 수 있겠지만 그동안 밖에 줄 댄 사람, 윗선에 충성을 다 바치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 달라지겠는가”라며 “시간이 지나길 기대하거나, 걸출한 CEO가 오길 바랄 게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고 그런 문화가 내재화될 수 있어야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특정한 세력이 요직을 독점하거나 반대로 특정한 집단들이 요직을 나눠 갖지 않도록 인사의 묘가 필요하단 지적도 있었다. 배현기 전 하나금융연구소장은 “특정인이나 특정 라인이 자리를 독점하거나 나눠 먹는 관행을 깨야 한다”면서 “CEO가 특정 라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사와 관련한 정보를 투명하게 오픈하고, 계속 교차해서 인사를 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도 있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듯, 행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와 경영진 간 관계가 건강해져야 자연히 행 내 문화도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박재하 전 부원장은 “지배구조 문제의 요체는 사외이사들 스스로가 권위를 지키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 또 이사회에 이해관계를 투사하지 않으려는 경영진의 의지에 있다”며 “경영진과 사외이사가 이사 선임의 투명성, 이사회 운영의 독립성만 지키면 이사회는 잘 돌아가게 돼 있고, 이렇게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조직의 운영 원리·원칙도 순리대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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