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최초 '육휴' 썼다…고이즈미 빼닮은 40대 아들의 출사표 [줌인도쿄]

오누키 도모코 2024. 9.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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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신지로 전 일본 환경상. 사진 공식홈페이지 캡처

웅장한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신묘한 표정의 남성 앞에 '2024년 9월 6일'이란 글자가 겹쳐진다. 한 편의 영화 예고편 같은 짧은 영상의 끝에 떠오른 문구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고이즈미 전 환경상(43)의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예고하는 유튜브 홍보 영상이다.

일본의 차기 총리를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준수한 외모와 톡톡 튀는 발언으로 일본 정계 최고 셀럽으로 꼽히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세대교체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6일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그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67)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를 노리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본선 경쟁력 등을 살펴볼 때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82) 전 총리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공식 홈페이지에 오른 출마 회견을 알리는 유튜브 영상.공식 홈페이지 캡처

아버지 고이즈미 vs 아들 고이즈미


고이즈미 전 환경상을 둘러싼 현재 정치 상황은 공교롭게도 아버지(2001~2006년 집권)가 총리를 맡기 직전과 닮았다. 2001년 자민당은 '밀실정치'로 압축되는 낡은 이미지, 모리 요시로(森喜朗·87) 당시 총리의 실언 등으로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모리가 물러나게 되면서 총재 선거가 치러지자 “낡은 자민당을 깨부수겠다”고 공언한 고이즈미가 여론의 지지를 얻고 승리했다. 총리 선출 직후 그의 지지율은 80~90%를 기록했고, '새 얼굴'을 내세운 자민당은 그해 치룬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이번 총재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치자금 스캔들에 따른 지지율 추락으로 고전하던 기시다 총리가 총재 선거 재출마를 포기하면서 자민당을 쇄신할 인물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계 입문 때부터 '무파벌'을 표방해온 40대 초반의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개혁적 이미지의 참신한 인물로 부각된 상황이다.

실제로 자민당 안팎에선 2001년 참의원 선거 당시 아버지처럼 ’선거의 얼굴’ 역할로 자민당의 승리를 이끌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일본 정계에선 자민당이 새 총리가 취임해 지지율이 상승한 상황에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것이란 예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25일 실시된 각종 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층 사이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지지율 1위로 나타난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원 프레이즈 정치' vs '고이즈미 구문'


2008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소개하고 있다.지지통신
특유의 화법을 지녔다는 점도 고이즈미 부자의 공통점이다. 아버지는 한 문장으로 짧게 표현하는 간결한 화법이 특징이다. ‘원 프레이즈(one phrase) 정치’란 말까지 붙었다.

아들의 화법도 유사한 면이 있다. 2009년 28살의 나이로 처음 의원에 당선됐을 때부터 아버지처럼 ‘원 프레이즈’를 구사했다. 2010년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 간부가 정치자금 문제에 휩싸였을 때다. 민주당 내에선 이와 관련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 이를 두고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발언 자유가 있는 것이 자유민주당. 자유가 없는 것이 민주당”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이런 화법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적도 많다. 2019년 환경상에 취임한 직후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를 방문했을 때다. 일본 정부는 30년 안에 후쿠시마 밖으로 '오염토'를 반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관련 질문을 받은 그는 “제 스스로 30년뒤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30년 후 제가 몇 살일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이처럼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주어와 술어를 반복하는 일이 자주 생기자 ‘고이즈미 구문(構文)’이란 조롱 섞인 조어까지 등장했다. 현재 초·중·고 학생 사이에서 말이 안 통하는 대화에 “그럼 고이즈미 구문이잖아”라고 지적하는 게 유행할 정도다. 물론 꼭 부정적인 일은 아니었다. 10~30대 젊은층에게 존재를 알리고 친근감을 갖게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의 화법은 강점이자 약점이다.


신념 강한 아버지 vs 장관 최초 '육휴' 쓴 아들


지난해 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생일을 축하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고이즈미 신지로 인스타그램 캡처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점도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타입이었다. 우정사업 민영화에 대한 소신을 지녔던 그는 집권 당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 안팎의 반대로 2005년 부결됐다. 그러자 그는 “국민에게 묻자”며 중의원을 해산했다. 다소 무리수로 보였던 이같은 결정은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결국 선거에서 압승했다.

2001년 총재 선거 당시 공약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강행했다. 외교 당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우려해 반대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8월15일을 피했을 뿐 매년 참배했고, 총리직 마지막 해였던 2006년엔 8월15일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정치적 소신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편이다. 중의원 선거때마다 일본 언론들이 후보들을 상대로 정치 성향을 조사한다. 그런데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이런 조사에서 상당수 질문에 무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과 2017년 조사에서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중시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2014년 조사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개정 의사를 묻는 질문에도 무응답했다. 아울러 환경상 재직 당시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5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린 축제에서 만난 아기를 안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인스타그램 캡처

대신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자민당의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끈 적 있다. 환경상 재직하는 동안 일본 장관 중 처음으로 2주간의 육아휴가를 사용해 관심을 끌었다. 2021년 정치성향 조사에선 자민당 내에선 반대 비율이 높은 ‘선택적 부부별성(※일본은 결혼 후 대부분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는데, 선택에 따라 결혼 전 성을 쓸 수 있게 하는 제도)’의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동성혼 도입에도 찬성한다고 했다. 때문에 육아 관련 공약 등을 내세우면 젊은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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