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 매운맛에 번아웃…일 때려친 '쉬는 청년' 94%는 이곳 출신
지난해 한 중소 게임사에 취업했던 임모(27)씨는 1년 만에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을 뿐더러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적게 느껴지는 월급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멋모르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번아웃(소진)이 너무 세게 왔다”며 “당장은 취업 시장에 다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일을 한 경험이 있는 ‘그냥 쉬는’ 청년 10명 중 9명 이상이 중소기업을 다녔던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커지는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 MZ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경험 청년들이 구직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 7월 청년(15~29세) 쉬었음 인구 44만3000명 가운데 74.6%인 33만명이 이전에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나머지 25.4%는 일경험이 없었다. 쉬었음 인구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중에서도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둔 20만4000명의 93.7%(19만1000명)은 종사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이들이 종사한 업종으로는 숙박·음식점업이 21.5%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제조업, 도소매업, 사업시설관리업, 건설업 순으로 이어졌다.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으면 이전 직장 통계가 잡히지 않지만, 추세적으로 봤을 때 유사한 비중으로 추산된다.
특히 근로기준법 미적용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본 쉬었음 청년은 28.8%(5만9000명)를 차지했다.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 종사자가 과반이었다.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은 6.3%(1만3000명)에 불과했다. 7월 기준 청년 취업자의 12.2%가 대기업 근로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비중이다.
중소기업을 다니다 그만둔 쉬었음 청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개인·가족 관련’ 사유를 제외하면 ‘시간·보수 등 작업여건 불만족’이 35.8%로 가장 컸다. 뒤이어 ‘임시·계절적 일의 완료’, ‘정리해고’, ‘직장 휴폐업‘,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업 부진’ 순으로 이어졌다. 결국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청년 상당수를 쉬었음 인구로 전환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사업체 임금인상 특징 분석’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 대비 300인 미만 사업체 임금은 코로나 당시인 2020년 64.2에서 지난해 61.7로 더욱 감소했다.
적은 임금뿐만 아니라 열악한 조직 문화, 임금체불 등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들까지 겹치면서 청년들을 ‘번아웃’ 상태로 몰리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보수만 작은 게 아니라 복지, 근무여건, 문화까지 차이가 크다 보니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가 심화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매칭하는 동시에 기존 일자리도 내실 있게 개선시켜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쉬었음 청년 증가는) 기본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진 영향이겠지만, 요즘 청년들의 달라진 모습을 영세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근로·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을 양질의 중소기업과 연결해주는 알선 기능을 강화하는 등 ‘투트랙’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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