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넷→n번방→딥페이크…성범죄 악랄해지는데 대책은 복붙"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지인 등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 착취 영상을 둘러싼 현안 질의가 열렸다. 2015년 ‘소라넷’, 2019년 ‘n번방 사태’에 이어 최근 딥페이크까지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가 더욱 빠르고 악랄해지는데도 정부 정책이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 제출된 법안조차 과거 폐기된 법안을 ‘복붙(복사해 붙이기)’하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여가위 회의에는 여성가족부 외에도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법무부·국방부·경찰청·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러 부처가 함께 체계적으로 대응하라는 게 여야의 공통된 당부였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에게 “딥페이크 성범죄 주무부처가 어디냐. 전부 각자도생이니 취합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디지털 성폭력 컨트롤타워가 돼야 하는 여가부가 중심을 못 잡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 관련 불법 영상물에 대한 삭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 제한 조치 권한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여가부가 구축한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제작하거나 퍼나르면 안 된다’는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이 “10~50분 분량 중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10~20초가량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신 대행은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콘텐트가 될 수 있도록 들여다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경찰청 보고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자 중 10대 청소년이 73.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딥페이크 영상물’ 텔레그램 유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훨씬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신고 건수가 급증한 점도 드러났다. 신 대행은 “여가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허위 영상물 피해는 2019년 144건에서 2023년 423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며 “올해 상반기 6월까지 접수된 피해 건수는 726건으로 이미 전년도 건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치권도 뒤늦게 관련 법률을 쏟아냈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난달 27일 이후 발의된 법률 개정안만 수십 건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2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9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1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1개 등 모두 33건이다.
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촬영된 성 착취 영상물에 적용했던 법규를 AI로 생성한 가짜 영상물까지 확대 적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복붙’ 법안도 적지 않았다. 타인의 의사에 반하는 허위 정보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 AI 딥페이크 영상에 워터마크를 의무화하는 법 모두 21대 국회에서 제출했던 법안이다. 한 여가위 보좌관은 “이슈가 되니 부랴부랴 기존 법안을 찾아 재발의했을 뿐, 제대로 된 전문가 감수를 거친 법안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범죄를 근절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이 텔레그램 조사에 착수했다지만, 전문가들은 협조를 받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은) 수사 기관이 용의자 계정 정보를 특정하고 충분한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한 절대로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이 많은 가입자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부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마케팅 포인트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텔레그램의 국내 차단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구걸’이 아니라 협조가 부실하면 국내 서비스 차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만약 법적 근거가 없어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법안 발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경찰이 구글이나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엔 1년에 1만건씩 수사협조 요청을 하는데, 텔레그램에는 그만큼 하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으신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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