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미·중 패권 향방 가를 11월 미 대선
패권의 축 달러 신뢰 붕괴 위험
보편관세도 역효과 부를 악수
中 경제력, 이미 美 65% 육박
미국의 소프트파워 퇴조 뚜렷
동맹 중시 않는 트럼프 재집권
중국에 천우신조 될 것
두어 달 전 미국 정치 전문가로 알려진 한 대학교수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걱정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치 시스템은 트럼프 재집권 시 민주주의 파괴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행정부 내부에도 ‘저항력’이 있고 입법부, 특히 사법부가 충분히 견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 대통령의 권력은 생각보다 훨씬 세다.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대통령 행정명령의 적용 범위와 권한은 한국의 ‘대통령령’에 비할 바 아니다. 또 트럼프 1기 때 임명된 보수 성향 판사들로 균형이 깨지면서 대법원은 이제 극우적 성격의 판결까지 잇따라 내리고 있다. 견제와 균형의 모범처럼 알려져 있는 미국 헌법이 실은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문제 헌법’이라는 것을 고개가 끄덕이게 알려주는 책도 최근 나왔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 베스트셀러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쓴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들이 미국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트럼프 재집권의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정책에 관여하겠다는 발언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8일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결정에 일정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석에서 한 얘기가 아니라 플로리다주 저택에서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연준의 정치적 독립에 제동을 걸고 연준 정책에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연준 금리 결정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통령의 요구대로 금리를 내려 돈을 풀면 단기적으로는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통화정책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 통화신용정책의 결정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대중의 기대(expectation)가 형성되면 연준의 정책은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주요한 축인 달러의 구매력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 보편관세(중국에 대해선 ‘60%+α’ 관세) 부과 방침도 겨우 고삐를 잡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이고 전방위 무역전쟁의 역풍을 부를 것이다.
대외관계에서 예상되는 위험은 더 직접적이다. 가장 큰 우려는 동맹을 무시하고 외교를 ‘거래’로 여기는 트럼프의 스타일이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미국의 핵심 우방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전투행위로 국제사회에서 인권과 국제법을 앞세워 온 미국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동맹마저 압박할 경우 미국의 영향력 감퇴는 가속이 붙을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친미 안보 네트워크의 결속은 크게 약해질 것이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게 거의 확실하다. 방위비 증액에 소극적인 나토 회원국들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현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포기’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붕괴와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미(反美) 패권 세력의 약진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공약은 그간 민주당이 지향해 온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분야에서는 저소득·중산층의 혜택을 늘리는 주택·복지·조세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대외정책에서는 동맹과의 공조 강화 등 큰 틀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노선을 벗어나지 않겠지만 보다 ‘절제된 리더십’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경제의 최근 고전을 들어 미·중 경쟁의 축이 이미 미국 쪽으로 기운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이는 단견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5%에 달한다(구매력 평가로는 이미 추월). 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미 GDP 성장률의 2배인 4~5%의 성장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5~10년은 양 대국의 경쟁에서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 미국 소프트파워의 근원인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미 패권의 주축인 달러의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며, 동맹의 가치를 폄하하는 대통령의 재집권은 중국에는 천우신조가 될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한국도 미국 일방 외교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호주 인도 일본 캐나다 등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겹치고 가치를 공유하는 중견국들의 세력화에 앞장서는 것이 한 방안이다.
배병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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