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계엄 괴담과 국민 모독
지난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은 나쁜 선례를 남겼다. 결과물이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야 대표 회담이 ‘괴담’ 공개 회견장이 됐다.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최근에 계엄 얘기가 자꾸 이야기되고 있다”며 ‘계엄령 준비 의혹’을 제기했다. “완벽한 독재국가 아니냐”고도 했다. 이로써 민주당 일각에서 거론되던 계엄 의혹이 전 국민을 향해 발신됐다. 계엄이 갖는 정치적 폭발성을 감안할 때 한 대표가 회담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궁금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정치 초보의 한계라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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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표 ‘계엄 의혹’ 본격 제기
법으로도 불가능, 국민 용납 안 해
이젠 괴담·선동 중독서 벗어나야
」
진짜 문제는 의혹을 제기한 이 대표다. 계엄이 어디 예삿일인가. 헌법에 따라 전시·사변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 때 군대를 동원해 질서를 유지하는 조치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제한된다. 가장 최근의 비상계엄은 44년 전인 1980년에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후 펼쳐진 민주주의 암흑기인 신군부 시절이었다. 그해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확대하면서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시키고, 전국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그러곤 김종필·김대중 등 정치인 26명을 강제 연행했다. 그런 무도한 조치를 44년 만에 되살린다고? 친명계인 정성호(5선) 의원은 “정치인들이 이런 정도 얘기를 왜 못 하냐”고 했다. 언론 자유가 있으니 못 할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라면 의혹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근거 없는 의혹은 결국 괴담일 뿐이다.
지금 계엄이 불가능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법이 그렇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해제해야 한다(헌법 77조 5항). 현재 의석수가 국회(300석) 절반을 훌쩍 넘는 민주당(170석) 단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법엔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계엄법 13조)고 돼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대략 세 가지다. 우선 군이 따를까. 헌법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헌법 5조 2항). 문민정부 이래 30여 년, 우리 군이 정치 개입의 악습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게다가 병사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유와 인권을 체화한 MZ세대다. 그들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신군부의 행태에 분노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우리 군에서도 안 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고 본다.
둘째, 국민이 용납할까.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함께 이룬 유일한 나라다. 우리 국민은 국정 농단을 이유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 끌어내렸다. 그런데 전쟁 같은 비상 상황도 아닌데 계엄령을 내리고 자유를 제한한다면 가만히 있을까. 만약 그렇게 여긴다면 위대한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셋째, 국제사회가 그냥 지켜볼까.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고, 세계 GDP의 85%를 차지하는 59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글로벌 허브 국가다. K팝과 K콘텐트 등이 세계인의 환호를 받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정쟁 끝에 계엄을 한다면 세계가 어떻게 볼까. 대외신인도는 급락하고, 경제는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진보 정권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유독 보수 정권 시기에 진보 진영이 확산시킨 괴담이 사회를 어지럽혔다. 광우병(이명박 정부), 사드 전자파(박근혜 정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윤석열 정부)에 이어 계엄 괴담까지. 매번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됐지만 민주당은 사과 한 번 없다. 그 무책임함에 질려 등을 돌린 이가 적지 않다.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이라면 괴담 중독을 끊을 때도 되지 않았나.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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