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사선 전문의 급감, 10만명 암 치료 ‘빨간불’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대한 전공의들의 집단 반발로 시작된 갈등이 반년을 넘기면서 필수 의료 붕괴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다. 그런데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를 전담하는 방사선종양학과가 처한 위기는 논외로 밀려나 있어 안타깝다. 방사선 치료는 수술, 항암 치료와 함께 3대 표준 암 치료법이다. 전체 암 환자의 30~40%가 치료 대상이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보건복지부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신규 암 환자는 27만 7523명이다. 기대 수명(남자 80.6세, 여자 86.6세)까지 생존하면 암에 걸릴 확률은 남자 39.1%, 여자 36.0%다. 암은 대표적인 난치병이었지만, 첨단 현대 의학 덕분에 5년 상대 생존율(2018~2021년 기준)은 72.1%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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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태부족
고령 암환자 치료 위해 필수적
정부, 체계적 양성 대책 내놔야
」
방사선 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에너지 방사선을 조사(照射)해 암세포 유전자(DNA)를 파괴한다.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암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암 수술은 첨단 로봇을 이용해도 전신 마취와 수술한 뒤 상당 기간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수술 도중에 장기나 신체 조직을 절제하면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항암 치료도 약물(항암제)이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전신에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치료 도중에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반면 방사선 치료는 환자가 맑은 정신으로 누운 상태로 방사선을 쪼이니 치료 이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암세포를 중심으로 치료 부위가 국소적이라 주변 장기 기능도 최대한 보존된다. 부작용이 생겨도 방사선 노출 부위에만 국소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과거에는 방사선 치료를 하면 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정상 조직 손상도 많았다. 그동안 의학·물리학·생물학 등 첨단 의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최신 방사선 치료 장비는 더 정교해졌다. 암 부위만 방사선을 조사해 정상 조직의 손상이 현저히 감소했다. 설사 국소적인 치료 부작용이 나타나도 중증도는 낮다. 고령사회를 넘어 내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서 고령의 암 환자가 급증하는 만큼 향후 방사선 치료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방사선 치료는 고난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만 치료를 담당한다. 안타깝게도 의대 졸업생이 방사선종양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매년 의대 졸업생 중 약 2700명이 전공의의 길을 가지만, 방사선종양학과 지원자는 극소수다.
더 심각한 현실은 방사선종양학은 전공의가 된 이후에도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배출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를 보면 지난해 4명, 올해 9명이다. 미래에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수급은 이미 빨간 불이 켜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월 26일 기준 올해 전공 분야별로 사직한 전공의의 비율에서 방사선종양학과는 78.3%였다. 흉부외과(75.7%), 응급의학과(74.3%), 소아청소년과(73.7%)보다 높았다.
의대 졸업생이 방사선종양학 전공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전문의 취득 이후 진로가 대학병원급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서는 시설과 장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실제로 일반적인 방사선 치료 장비도 대당 70억~100억원이다. 연세의료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중입자치료 장비는 설치비만 약 3000억원이다. 방사선 장비 한 대당 유지·관리비만 매월 수천만 원이 소요된다. 의사 이외에도 의학 물리사와 물리학 교수 등 전문직도 상주해야 한다. 대학교수가 되더라도 인력이 부족해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는 상황이다.
방사선 치료는 미래 첨단 의료의 핵심이어서 전문의를 안정적으로 배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국에서 한 자리 숫자로 배출되는 전문의로는 매년 암 환자 약 10만명을 치료하기에 태부족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들과 의논해 미래의 체계적인 전문의 양성과 수급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행보에 따라 첨단 방사선 치료가 한국에서 꽃필 것인가,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인가가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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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철 대한방사선종양학회장·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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