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온대→아열대’ 변하는 대한민국, 열대 사탕수수도 심는다
기후변화가 바꾼 한반도 작물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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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뒤 남한 기후 절반은 아열대
겨울 제외하면 더운 날씨 이어져
찜통더위에 잘 자라는 사탕수수
제주도에서 재배 가능성 시험 중
아열대 과일, 고수익 작물로 인기
감귤 줄고 망고·패션프루트 늘어
」
지금은 베트남 등을 다녀온 한국 관광객들이 소셜미디어에 사탕수수 음료 체험담을 올린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일 제주도에서 사탕수수 재배에 성공한다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제주농업기술원은 기대한다. 바닷가 카페 등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사탕수수의 즙을 짜내면 이국적인 느낌의 음료로 판매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면 제주도 농가에는 새로운 소득작물이 생기는 셈이다.
제주 평균기온 80년간 3도 상승
아직은 본격적인 재배에 앞선 초기 연구 단계다. 원래 제주도는 열대가 아닌 아열대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사탕수수 재배는 어렵다는 게 농업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작물 재배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1940년대 섭씨 14도 안팎이었던 제주도 평균기온은 2020년대 들어 17도를 넘어섰다. 지난 80년 동안 평균기온이 3도가량 상승한 셈이다. 현재 경남 거제도 등에서도 체험용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지만 생육 기간이나 품질 기준 등 재배기술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제주농업기술원은 전했다.
현대양 제주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대나무처럼 생긴 사탕수수의 긴 줄기를 잘라내 즙을 내면 달콤한 음료가 된다. 그냥 마시면 너무 달아서 물과 얼음으로 희석하는데 한번 마셔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름철 바닷가에서 달고 시원한 음료로 팔면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를 끌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사탕수수의 수확 시기를 관광 성수기에 맞출 수 있느냐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제주도의 기상 여건을 고려하면 사탕수수는 서리가 내리기 전인 10~ 11월까지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 관광의 최성수기는 7~8월 휴가철이다. 갓 수확한 제주도 사탕수수를 여름철 관광객에게 제공하기에는 계절이 맞지 않는다. 온실에서 난방하면 겨울에도 사탕수수를 키워 수확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다. 이 경우 생산 비용이 커지는 만큼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
제주 서부농업기술센터는 지난 4월 초순에는 난방 없는 온실에, 지난 5월 초순에는 노지(맨땅)에 사탕수수를 심었다. 처음엔 성장이 더뎠지만 지난달 들어선 성장 속도가 빨라진 게 확연히 눈에 띄었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지만 추가 연구를 통해 재배 가능성이 확인되면 우수한 품종을 선별해 농가에 시범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현 지도사는 “늦어도 8월 말께 사탕수수 수확이 가능하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 난방하는 온실에서 모종을 키웠다가 봄이 되면 밭에 옮겨 심는 방법도 연구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아열대 과일 재배면적 5년간 72% 늘어
한반도가 더워진다. 이 땅에서 나는 농작물도 변화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감귤을 제외하고 망고·파파야·패션프루트(백향과) 등 아열대 과일의 재배 면적은 2022년 기준 188.8㏊였다. 5년 전(109.5㏊)과 비교하면 72% 급증했다. 아열대 과일 재배지는 제주도나 남해안으로 한정되지 않고 경기도 일부 지역까지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농진청은 2050년대에는 남한 지역의 절반 이상(55.9%)이 아열대 기후대에 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30년간(1981~2010년)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기후변화 ‘고탄소 시나리오’(SSP5)다. 국제 사회가 온실가스를 제대로 감축하지 못했을 경우를 가정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90년대에는 남한 지역 대부분(97.4%)이 아열대 기후대로 변할 것이란 분석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어느 정도 이뤄진다는 걸 가정한 시나리오(SSP2)도 있다. 여기선 2050년대에 남한 지역의 절반 이상(54.9%), 2090년대에 남한 지역의 80.9%가 아열대 기후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월 평균기온 10도 이상인 기간이 연간 8개월 이상인 지역을 아열대 기후대로 정의했다. 해마다 3개월 정도의 겨울을 제외하면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심교문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은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대로 변한다고 연중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는 건 아니다. 겨울에는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극한적인 기온 변화에 대응하는 작물 재배 기술의 연구와 보급이 시급하다”며 “지난해 사과의 작황 부진으로 ‘금사과’란 말이 나왔던 것도 기온의 변동 폭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산 망고, 수입산보다 달고 신선”
아열대 과일 중에선 망고와 패션프루트를 재배하는 농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겨울 기온도 비교적 잘 견디면서 시장에서 고수익 작물로 인정을 받고 있어서다. 가격은 수입산보다 다소 비싸지만 검역 절차가 필요 없는 만큼 소비자가 신선한 과일을 맛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농진청은 지난해 기준으로 망고의 재배 면적(92.6㏊)은 바나나(20.6㏊)의 4.5배, 패션프루트(30.2㏊)는 바나나의 1.5배라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제주시 오등동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를 찾아갔다. 김성철 농업연구관의 안내로 온실 시험장에 들어서니 빨갛게 익은 애플망고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열대성 작물로 국내 기후 환경에 적합한 애플망고(품종명 어윈)의 재배 기술을 연구하는 현장이다. 껍질을 벗기니 달콤한 과즙을 머금은 노란 과육이 드러났다. 외국에는 노란 껍질의 열대성 망고도 있지만, 국내 농가에선 난방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재배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연구관은 “수입산 망고는 병해충 방지를 위해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하거나 고구마를 찌는 것처럼 가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수입산은 국산 망고보다 단맛도 덜하고 신선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보카도 재배도 시험했지만 국내에선 생산성이 매우 낮은 것을 확인했다. 안 되는 작물의 정보를 농가에 제공하는 것도 연구소의 임무”라고 덧붙였다.
다른 온실에선 파파야도 시험 재배를 하고 있었다. 파파야에 함유된 천연 소화 효소(파파인)는 음주 후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고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파파야는 망고보다 저온에서 잘 견디기 때문에 난방비가 비교적 적게 들어간다. 그만큼 생산성은 좋지만 아직은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낯선 편이란 게 단점으로 꼽힌다. 전지혜 연구소장은 “다문화 가정도 늘어나고 한국인의 입맛도 세계화된 만큼 파파야도 충분히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동남아에선 파파야를 채소로 많이 먹지만 국내에선 디저트용으로 먹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 감귤 생산 꾸준한 감소세…한라봉 등 만감류로 대체
「
국내 아열대 과일의 대표 주자인 감귤은 오히려 재배면적이 줄고 있다. 농가의 수익성 부진과 소비자 기호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감귤 재배면적은 지난해 2만2100㏊였다. 2000년(2만6800㏊)과 비교하면 18% 감소했다. 감귤의 연간 생산량은 2007년 77만8000t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61만5000t으로 21%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8년 무렵에는 연간 생산량이 60만t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엔 감귤의 주생산지인 제주도에서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감귤밭을 없애고 다른 작물로 바꾸도록 유도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제주도의 감귤 재배 면적은 2021년을 고비로 2만㏊ 아래로 내려갔다. 반면 전북 정읍이나 전남 고흥·완도, 경남 거제·통영 등 내륙 지역의 감귤 재배 면적(311㏊)은 최근 4년간 40% 넘게 늘었다고 농촌진흥청은 전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감귤 재배지도 점차 북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반 감귤보다 수익성 높은 한라봉·천혜향 등 만감류를 재배하는 농가는 늘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감귤 재배면적에서 만감류 비중은 지난해 21.4%를 차지했다. 2015년(10.3%)과 비교하면 두 배 수준으로 비중이 커졌다. 만감류는 만다린 계통의 감귤과 오렌지의 교배로 만든 품종을 가리킨다. 주로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을 국내 농가에 도입한 뒤 국내 상품명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
주정완 논설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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