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5년의 방첩 공백, 정보사 사건 불렀다

이철재 2024. 9. 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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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분명한 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정보 실패, 방첩 실패 사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정보 유출 사건(정보사 사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정보사 사건은 정보사 군무원 A(49)씨가 군사 비밀을 판 사건이다. 윤 의원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세한 내용은 수사를 통해서 밝혀야 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보사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났기 때문에 현 정부에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보사 사건은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났고, 문재인 정부는 이 사건을 막거나 적발하는 데 실패했으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야 사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윤 의원이 나중에라도 멋쩍어할까.

「 “건국 이래 최대의 정보전 사고”
야당이 비판하나 문 정부 사건
문 정부서 방첩·보안 역량 약화
군 불순세력 근절엔 투자 필요

부대서 비밀 서류 촬영해도 ‘무사통과’

정보사령부가 2016년 5월 안양 시민에게 개방한 박달동 복지 회관. [사진 안양시청]

정보사 팀장(5급 군무원) A씨는 2017년 4월 현지 공작망을 만나러 중국 옌지(延吉)로 갔다가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갑자기 체포됐다. 조사받던 중 포섭 제의를 받았고,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 때문에 결국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동포 말씨를 쓰는 중년 남자에게 30건의 군사 비밀을 건네 1억6505만원을 차명계좌로 받았다. A씨는 더 많은 정보를 판 대가로 40여 차례 4억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증거가 부족해 공소장에 넣진 못했다.

A씨는 자신을 관리한 사람을 ‘중국 동포’로 지목했지만, 방첩사령부(방첩사)는 북한 요원으로 의심하고 있다. 군 검찰도 보강 수사를 통해 A씨에 간첩죄를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A씨와 같이 해외에서 포섭 공작을 겪었다면, 귀국 후 부대에 이를 신고해야만 한다. A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 군 보안 체계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19년 2월 국방보안업무훈령이 바뀌어 안보지원사(안보사·방첩사의 전신)가 감사하는 기관 중 정보사와 통신정보를 다루는 777사령부가 빠졌다.〈중앙일보 9월 2일자 1, 10면〉 기무사와 국방정보본부가 번갈아 감사하다 훈령 개정 후 국방정보본부만 진행하게 됐다.

정보사와 777사령부는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무사와 국방정보본부가 이중으로 감사하는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게 무너졌다. A씨의 범행은 기무사의 마지막 정보사 감사가 있던 2017년 시작했다.

앞서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작성 사건을 계기로 기무사를 안보사로 해편했다. 이 과정에서 방첩요원 1200명가량이 안보사를 떠났다. 이 중 방첩·보안 전문 인력은 700명 정도였다. 안보사가 손 놓은 방첩·보안 임무는 47가지에 이르렀다.

A씨는 10대가 넘는 휴대전화로 부대 안에서 2~3급 비밀문서를 촬영하거나 메모했다. 휴대전화를 영내로 들고 가려면 촬영·녹음 기능을 제한하는 보안 앱을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A씨는 이 같은 부대 출입 절차를 우회했다. 군 내부의 보안 의식이 허술해지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정보사 사건은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났다. 국내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해커 집단이 북한이 중국에 둔 서버에 침투해 정보사 블랙(Black) 요원 명단을 발견했다. 블랙 요원은 위장 신분으로 활동하는 정보 요원이다. 반면 화이트(White) 요원은 외교관 등의 합법적 신분으로 정보 활동을 한다.

지난 6월 이런 사실을 통보받은 방첩사가 범인을 색출했다. 한때 손이 묶였던 군 보안 당국의 수사 실력이 녹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예전의 감사 수준까진 아니지만, 방첩사가 정보사의 보안 관련 규정 준수 여부를 따져보면서 A씨를 찾아낼 수 있었다. A씨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A씨와 중국 동포가 게임 앱 채팅으로 주고받은 음성 메시지다. A씨는 음성 메시지를 바로바로 지웠는데, 방첩사가 포렌식으로 되살려 놨다.

성급한 공개로 간첩망 잡을 기회 놓쳐
일각에선 이번 정보사 사건으로 해외에서 은밀하게 만들어놓은 정보망이 붕괴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A씨는 팀장으로 밑에 여러 명의 블랙 요원의 공작관(Case Officer)을 두고 있다. 공작관은 해외에서 여러 명의 공작원(Agent)을 운영한다. 공작원은 북한 주민 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번 정보사 사건과 같은 사태에 정보망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작관~공작원 연계를 점조직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A씨가 적발된 뒤 해외에서 급히 귀국한 공작관은 10명이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 주재했다.

다만 정보사 사건이 일찍 외부로 알려진 게 흠이었다. 간첩 수사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진행한다. 간첩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용의자를 감시하면서 고구마 줄기 엮듯이 간첩망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사 사건은 내사 시작 두 달 만에 정치권과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다. 이 때문에 A씨의 ‘공작관’인 중국 동포에 대해 알아낸 게 거의 없었고, A씨의 범행을 도왔던 협조자의 내사도 어려워졌다.

현재 군 당국과 방첩사는 무너진 보안·방첩 역량을 복원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때 단 한 건도 검찰로 송치하지 못했던 군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선 3건이 나왔다. 이들 사건은 군사 비밀을 빼돌리거나 이적 표현물을 영내 유포한 혐의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료 장병들이 군 국가보안 사범들의 범행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을 정도로 대적관(對敵觀)과 방첩 의식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또 병사들이 영내에서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돼 군사 비밀의 무단 촬영이 손쉬워졌다. 장병들이 군사 비밀을 돈 받고 파는 데 전혀 거리낌도 없어졌다.

군에서 몰래 퍼져나가는 ‘불순세력’을 뿌리 뽑으려 군 당국의 방첩·보안 역량을 더 키워야 할 이유다. 5년 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면 많은 투자가 절실하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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