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밸류업, 꼭 기업만 해야 하나
올해 초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 기대감으로 은행주 주가가 급등했을 무렵,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은행주보다는 증권주를 사는 게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은행주보다 증권주를 선호한 건 관치(官治) 때문이었다. 돈을 많이 벌면 ‘이자 장사’ 논란으로 배당이 제한되는 일이 벌어지는 등 정부 정책에 좌지우지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증권업이 당국의 관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만큼 투자 매력도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관치금융이 은행주를 흔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에 시장금리가 내려가는 와중에 대출금리만 오르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 따라 기업(은행)이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금리)도 생산량(대출총량)도 좌지우지되다 보니, 투자자 입장에서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눈치 빠른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주 은행주를 대규모로 매도했다고 한다.
정부의 관치에 투자의 시계가 흐려지는 건 이번만이 아니다. 공매도 전면금지도 빠지지 않는 단골 사례다. 지난해 11월에는 주말 사이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공매도 전면 금지를 결정했다. 외국계 금융사의 불법 공매도를 이유로 들었지만, 시장에서는 “주말에 아무 예고 없이 전면금지를 결정할 사유가 되냐”는 반응이 다수였다. 수혜를 본 게 있다면 공매도 금지로 인해 반짝 수혜를 봤던 2차전지 기업 투자자들뿐일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레 금투세 폐지를 꺼내 든 후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폐지에 반대하는 거대 야당 탓도 있겠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을 사전 논의도 없이 한 번에 바꾸려는 정부 탓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장기투자에 대한 혜택이나 원천징수 문제 등 다양한 이슈는 뒷전이다. 투자자들은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 문제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자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기업 밸류업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은 좋은 경영자다. 사업을 잘 꾸리고, 주주환원을 꾸준히 늘리는 능력 있는 경영자에게 시장은 신뢰를 보낸다. 스타벅스가 새 최고경영자(CEO)로 치폴레 멕시칸 그릴의 브라이언 니콜 CEO를 선임한 뒤 주가가 급등한 이유다. 그런데 한국의 경영자격인 정부는 어떤가. 효율적인 자본배치 등은 차치하더라도 시장의 신뢰조차 잃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기업들의 밸류업을 독려하기 전 정부부터 먼저 밸류업을 해야 하지 않나.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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