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정권 바뀐 영국의 부자증세와 복지감축
“10월 말에 의회에 제출될 내년도 예산안은 쓰디쓸 것이다.”
지난 7월 초, 1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사진) 총리는 일주일 전 연설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수년간 지속된 저성장 속에서 이번에 실권한 보수당이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기에 영국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한 달 가량의 휴가를 마치고 2일 복귀한 하원의원들은 야당인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연금생활자에 지급하는 겨울 난방비 보조금의 축소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두 지원 대상이었는데 이제 저소득층만 수혜자가 된다. 총리는 연설에서도 내년도 복지 예산의 추가 삭감을 내비쳤다. 보수당 정부가 남긴 실정의 유산 때문에 노동당 정부가 표 떨어지는 소리에도 복지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당의 주장이다.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는 7월 말 보수당이 원래 예산보다 219억 파운드(약 37조 8000억원)를 더 써서, 예산에 ‘블랙홀’이 생겼다고 발표했다. 이 액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영국 GDP의 0.8% 정도나 된다. 각 부처 예산과 복지를 삭감해도 구멍 난 재정의 4분의 1 정도만 충당할 수 있다. 증세가 불가피하다.
증세한다면 안정적으로 세입을 충당할 수 있고 유권자의 반발이 약한 곳을 노려야 한다. 바로 자본이득세(CGT)다. 주식 투자로 번 돈이나, 두 번째 집에서 나오는 수익 등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기본세율이 10~28%로 소득세의 20~45%보다 크게 낮다. 자본이득세의 세율을 소득세 수준으로 올린다면 연간 최대 160억 파운드 세수가 추가된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노동당 집권이 유력해진 지난해부터 고가 부동산 매물이 많이 나왔다. 총리의 최근 연설 후 매물이 훨씬 더 늘었고 관련 문의도 폭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29일 보도했다.
자본이득세 증세로는 급한 불만 끌 수 있다. 불투명한 친환경용 추가 재정을 위해 추가적인 세금 인상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노동당은 풍력발전 대폭 확대 등 ‘그린 인프라’에 240억 파운드(약 42조 6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영국 세수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건강보험(NHS) 부담금, 부가세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 중 하나라도 증세하면 꽤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서민에게 큰 부담이 되는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는 노동당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해 영국 경제는 0.5~0.7% 성장이 예상된다. 노동당 정부가 이런 저성장을 탈피하지 못한 채 그린 인프라 투자와 같은 공약을 이행하려면 추가 증세가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높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기하다, 콧방울·입꼬리" 성공한 CEO 얼굴의 비밀 | 중앙일보
- 아내에 약물 먹인 후 72명 남성 모집…잔혹 성폭행한 프랑스 남편 | 중앙일보
- 이런 집주인, 어디 또 없다…120채 ‘강남 아파트왕’ 비밀 | 중앙일보
- "키 크고 멋있는 사람이 좋아"…오상욱, 日 혼혈모델과 열애설 | 중앙일보
- 피 묻은 손으로 머리 만지작…일본도 살해범, 소름돋는 행동 | 중앙일보
- 현아 측 "결혼 발표 후 관망할 수 없는 수준 인신공격…강경 대응" | 중앙일보
- "만지지 마라""밤에 무섭더라"…송도 출몰한 야생동물에 깜짝 | 중앙일보
- 1억짜리 벤츠, 1년 만에 6000만원 됐다…"이게 무슨 날벼락" | 중앙일보
- '육즙수지' 본 과즙세연 "뭐야 저게?"…박수 치며 보인 반응 | 중앙일보
- 8m 싱크홀 빨려들어간 여성, 시신도 못찾았다…9일만에 수색 중단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