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웃고 강남 울고...2024 뜨는 상권, 지는 상권 [스페셜리포트]
2024년 서울 주요 상권 지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로 내수 경기가 침체하면서 상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전반적으로는 ‘안 좋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서울에서 가장 큰 상권 30곳 중 15곳에서 카드 매출 감소가 나타났다. 딱 절반에서 매출이 늘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매출이 줄었다. 엔데믹을 맞이했던 2023년 당시 전체 30개 중 29개 상권에서 전년보다 매출이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상권 분위기는 분명 예년보다 주춤하다.
올해 상반기 어떤 상권이 흥하고 어떤 상권이 부진하고 있을까. 매경이코노미는 빅데이터 전문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와 손잡고 서울 주요 상권 144곳 매출을 분석했다. 강남·홍대입구·신사 등 서울을 대표하는 메가 상권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명동을 비롯해 양재·영등포·가산디지털단지 등은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 -245억원, 신사 -400억원
대한민국 최대 상권은 누가 뭐라 해도 ‘강남’이다. 매출 규모가 여타 지역과는 비교 불가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서울 주요 상권 매출 1위는 강남, 2위는 신사, 3위는 논현, 4위는 압구정로데오다. 특히 강남 올해 매출(1조8805억원)은 2위인 신사(1조561억원)와 8000억원 이상 차이를 보일 정도로 거대한 상권이다. 선릉(6위)과 압구정(8위), 교대(9위)까지 범강남으로 분류한다면, 국내 톱10 상권 중 7개가 강남 지역에 몰려 있다. 5위 홍대입구와 7위 동여의도, 10위 노원 정도를 제외하면 강북 상권은 찾아보기 힘들다. 2022년 10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신흥 강자 성수는 올해는 11위를 기록했다.
강남 강세는 물론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올해 상반기 강남 매출은 전년 대비 245억원 감소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가 여전했던 2022년(2조310억원)과 비교하면 1500억원 넘게 줄었다. 덩치는 여전히 크지만 하락세에 접어든 모습이다.
2위 상권인 신사 분위기는 더 안 좋다. 지난해 1조962억원에서 올해 1조561억원으로 402억원 줄었다. 서울 내 모든 상권 중 홍대입구(-510억원)를 제외하면 가장 큰 하락폭이다. 강남역과 인접한 역삼(-142억원), 포스코사거리(-58억원), 선릉(-19억원) 상권 역시 모두 전년보다 주춤했다.
강남 상권 부진 원흉은 ‘외식의 침체’다. 음식 업종 카드 매출이 지난해보다 245억원 줄었다. 강남 상권 전체 매출 하락폭과 동일한 액수다. 고물가에 인근 음식점에서 지갑을 여는 직장인이 줄어들었다. 식자재비 상승과 더불어 평균 월 임대료만 수억원에 육박하는 강남역 상권 특성상 다른 지역보다 외식 물가 상승폭이 더 컸다. 강남역 인근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창현 씨는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거의 없고 점심도 값싼 구내식당에서 최대한 해결하려는 분위기”라며 “과거 길게 대기줄을 섰던 강남 빌딩 지하 푸드코트 매장은 요즘 점심에도 썰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음식 업종뿐 아니다. 소매(-111억원), 생활서비스(-60억원), 여가오락(-4억원) 등 주요 업종 전반에서 강남은 부진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업종 중 유일하게 오름세를 보이는 건 ‘의료서비스’다. 병원 매출은 지난해 1조2306억원에서 올해 1조2471억원으로 165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병원 수도 655개에서 675개로 20개 증가했다. 강남 전체 카드 매출에서 의료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6.3%에 달한다. 강남이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 중심 상업지구에서 ‘의료 상권’으로 점차 굳어지는 추세다.
강남권 의료서비스 강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 진행된 ‘역명 병기’ 사업이다. 강남역은 올해 10월부터 ‘강남역(하루플란트치과의원)’으로 표기된다. 해당 병원이 11억11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가에 부역명을 낙찰받았다. 주시태 나이스지니데이타 실장은 “고물가에 음식점을 찾는 직장인은 줄어든 반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 위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돌아온 직장인…‘가디단’의 부활
강남은 울었다. 하지만 소비 침체에도 불구하고 ‘뜨는 상권’ 역시 여럿이다.
지난해보다 매출액이 가장 많이 오른 상권은 ‘명동’이다. 올해 상반기 매출이 2937억원으로 지난해(2678억원)보다 259억원 늘었다. 2022년(2068억원)에 이어 2년 연속 급증세를 이어갔다. 2년간 평균 매출 증가율이 20%에 육박한다. 더군다나 이번 카드 매출 집계에는 명동 상권 소비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매출이 포함되지 않았다. 외국인 현금 결제 비중이 높은 만큼 실제 명동 상권은 보이는 수치보다 훨씬 더 활성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점포 수 역시 전년 대비 68개 증가했다. 명동 인근에 위치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 활성화로 신규 매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명동을 찾는 내국인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라며 “점포 리뉴얼이 활발하고 ‘핫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심·저녁 시간 명동을 찾는 국내 소비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매출 증가 2위부터 4위까지는 ‘범강남’ 상권이다. 2위 양재(206억원), 3위 압구정로데오(147억원), 4위 논현(141억원)이 주인공이다. 매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강남 이탈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곳 상권 모두 음식·소매·생활서비스·여가 등 주요 업종 매출이 부진했다. 매출 증가 대부분이 강남과 같은 ‘의료 업종’이다. 양재역(241억원), 압구정로데오(391억원), 논현(229억원) 모두 전년 대비 의료 매출이 크게 늘었다. 강남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의료 상권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매출액 증가 5위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의료 업종 외에도 고른 업종 분포를 보이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상권이다. 장지(5위), 영등포(6위), 가산디지털단지(7위), 천호(8위), 동여의도(9위), 잠실새내(10위)가 대표적이다. 공통점은 다소 서울 외곽에 위치하면서도 아파트·오피스 등 풍부한 주변 배후 수요를 자랑하는 상권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에 따라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던 곳이기도 하다. 강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외식 물가 상승률이 낮은 지역이라는 점도 상권 부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가산디지털단지 상권 활성화가 눈길을 끈다. 가산디지털단지는 ‘서울 IT 허브’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오피스 상권이다. 강남 지역 상권과는 반대로 외식 매출 증가(84억원)가 높은 순위를 견인했다. 전체 모든 상권 중 가장 큰 폭으로 외식 매출이 뛰었다. 서울 30대 상권 중 음식 업종 매출이 늘어난 곳은 5개에 불과하다.
동여의도와 잠실새내는 여가·오락서비스 매출이 늘어나며 순위를 끌어올린 케이스다. 노래방, 모텔·여관, 스포츠센터, 스크린골프장 같은 업태가 여가·오락서비스에 해당한다. 동여의도는 ‘더현대 서울’ 집객 효과, 잠실새내는 경기 관중이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높아진 프로야구 인기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이제 외식은 ‘강북’에서
충무로·을지로 상권 ‘호호’
음식 업종 매출은 상권 활성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 꼽힌다. 2차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최근 외식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해당 상권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음식 매출이 가장 크게 오른 상권은 앞서 얘기한 가산디지털단지(84억원)와 명동(80억원)이다. 이 밖에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인 상권이 모두 ‘강북’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서울시청(46억원), 충무로(45억원), 을지로3가(35억원), 종로3가(28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강북을 대표하는 오피스 상권. 여기에 최근 명동으로 늘어난 유입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음식 매출 규모 자체는 작지만 높은 성장률을 보인 상권도 대부분 강북에 위치해 있다. 경동시장(23.1%)과 청량리(22.1%) 등 서울 동북 상권을 비롯해 약수(12.1%), 장충동 족발거리(12.1%), 이태원(9.8%), 남대문시장(5.9%) 등이 대표적이다.
2024 지는 상권 홍대·신림
20대 소비 분산·감소 ‘직격’
서울 주요 상권 중 올해 가장 분위기가 나쁜 곳은 ‘홍대입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매출이 510억원이나 감소했다. 주요 소비층인 20대가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서 유동인구 자체가 줄었다. 올해 2분기 홍대 합정 지역 공실률은 12.2%로 전년 동기(5.7%) 대비 2배 넘게 늘었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음식(-369억원), 의료(-53억원), 생활서비스(-20억원), 소매(-7억원) 등 업종 전반에 걸쳐 부진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홍대입구에서 주점을 운영 중인 홍민표 씨(가명)는 “홍대 주차장거리 상권을 제외하면 유동인구가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오히려 더 없는 느낌”이라며 “지난해 엔데믹 기대감에 크게 늘었던 점포 수가 요즘에는 계속 빠지는 양상이다. 요새는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고 토로했다. 홍대상인회 관계자는 “연남·성수·문래·용산 등 20대가 자주 찾는 상권으로 소비자가 분산되면서 경기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대가 주로 사는 원룸촌이 밀집해 있는 ‘신림’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홍대입구(-510억원)와 신사(-402억원)에 이어 3번째로 큰 매출 하락폭(-378억원)을 보였다. 건대입구(-52억원), 서울대입구(-10억원), 신촌(-1억원) 등 젊은 세대가 주로 찾았던 상권도 나란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 Medical: 병원은 강남에서
상권 전체 활성화는 ‘글쎄’
단순 매출액 증감만으로는 상권 전체 분위기 파악이 쉽지 않다. 상권별 매출 증가율·연령대·업종별 매출 비중·공실률 등 다양한 지표를 감안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두드러지는 상권 트렌드는 크게 4가지다.
먼저 ‘의료서비스 강남 쏠림’ 현상이다. 서울 주요 상권 매출 순위 1위부터 3위까지는 매년 요지부동이다. 강남, 신사, 논현 3곳은 늘 다른 지역 대비 압도적으로 큰 매출액을 올린다. 강남과 신사 상권은 2024년 상반기 각각 총매출 1조8805억원, 1조560억원을 거두며 ‘유이’하게 1조원을 넘겼다. 논현 상권은 726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강북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홍대입구(6223억원)와 1000억원 가까이 격차를 벌렸다.
늘어난 의료 서비스 매출이 주요인이다. 강남 지역은 의료 중에서도 특히 결제 금액 단위가 큰 ‘미용 의료’가 발달한 지역이다. 지출 규모가 큰 덕분에 외식·소매업보다 점포당 매출이 월등히 높다. 강남역 상권은 올해 상반기 의료서비스업에서만 1조2471억원의 매출이 나왔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66%가 의료서비스다. 신사와 논현 상권 역시 의료서비스 비중이 각각 68.8%, 57%에 달했다. 홍대입구(22%), 신림(27.2%), 동여의도(28.6%) 등 여타 다른 주요 상권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의료 관광’이 세 상권 병원 매출을 견인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행한 ‘2023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60만6000명에 달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을 시작한 2009년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이다. 특히 피부과·성형외과 방문객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의료 관광객 중 피부과 방문자가 23만9000명으로 전체 진료과 가운데 35.2%로 가장 많았고 성형외과(16.8%)가 뒤를 이었다. 강남에선 외국인을 겨냥한 업종과 매장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의료 업종 매출이 높다고 해서 이들 상권 전체가 활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의료 업종은 특성상 상권 전체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크다. 대부분 고객이 병원에서 치료, 시술 등 볼일을 마치고 바로 지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높은 매출과 별개로 세 상권 모두 공실률이 치솟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4년 2분기 기준 강남역이 위치한 강남대로 일대는 중대형 상가, 소형 상가 모두 강남 지역 평균을 웃도는 공실률을 기록 중이다.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1%로 강남 평균(5.7%)의 2배를 넘어섰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9.5%) 역시 강남 전체(7.7%)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신사와 논현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낮았지만,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높다. 신사는 12%, 논현은 11.8%다.
경동·남대문·용문…‘시장의 진화’
한물간 취급을 받던 상권의 부활도 두드러진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가는 상권으로 인식되던 옛날 상권에 젊은 세대가 몰리면서 매출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 낙후됐던 신용산역 일대, 서울중앙시장을 필두로 매출이 급증한 신당역 상권, 노인의 성지로 불렀던 동묘앞 등이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특히 ‘시장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경동시장, 남대문시장, 용문시장 등 낡았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장 상권이 연일 소비자를 모으고 있다.
신용산역 상권은 2022년부터 신흥 강자로 부상한 지역이다.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자리한 ‘용리단길’이 뜨면서 상권 전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대와 30대의 집중적인 선택을 받았다. 2023년 상반기 전년 대비 20대 매출 증가율이 62.6%로 전체 서울 상권 중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30대 매출 증가율도 45.8%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용리단길 상권은 ‘음식’에 집중돼 있다. 전체 200여곳 매장 중 170곳이 넘는 매장이 음식 업종이다. 신용산역 상권의 음식업 매출액은 최근 2년 평균 22.5% 상승했다.
신당 상권 역시 근래 급부상한 지역이다. 1970년대부터 자리 잡은 중부소방서 일대 떡볶이 골목이 주 상권이었다. 한때 떡볶이 골목이 외면받으며 상권이 주춤했지만, 2022년부터 젊은 세대가 몰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부활을 주도하는 상권은 황학동 싸전거리와 중앙시장 일대다. 싸전거리는 말 그대로 쌀가게(싸전)가 모인 골목이다. 신당사거리 뒤편에 위치한다. 쌀가게가 나간 자리를 ‘힙’한 가게들이 채우면서 ‘젊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니칼국수’ ‘발라닭’ ‘주신당’ 등 점포가 입소문을 타고 손님을 끌어모았다.
싸전거리 옆 신당중앙시장은 유튜브 덕을 톡톡히 봤다. 평범한 재래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은 시장 내 ‘옥경이네건생선’ ‘산전’ 등 가게가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다. 특히 2030 매출 증가가 눈에 띈다. 신당역은 지난해 상반기 20대 매출 증가율 36.2%, 30대 27.3%를 기록하며 MZ대세 상권의 저력을 증명했다.
올해는 유독 ‘시장 상권’이 강세를 띤다. 최대 수혜주는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은 노년층의 ‘홍대입구’로 불리는 상권이다. 60대 이상 매출액은 서울 주요 상권 중 강남·신사·논현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올해 들어서는 30대와 40대 사이에서도 인기가 급격히 상승했다. 지나치게 비싼 물가에 지친 청년과 중년 세대가 경동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경동시장은 도매와 소매를 병행하는 재래시장이다. 도매가격에 소매로 물건을 살 수 있어 물가가 저렴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매출이 30대(26.1%)와 40대(19.7%)에서 눈에 띄게 커졌다.
재래시장 맛집도 입소문을 타면서 상권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남원통닭, 황해도순대 등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맛집을 중심으로 소비자가 몰렸다. 경동시장의 최근 2년 음식 업종 매출 평균 증가율은 33.3%로 서울 모든 주요 상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3. Reservoir: 저수지 상권 뜬다
노원·창동·목동 매출 ‘껑충’
한번 유입된 인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그 안에서 소비하는 ‘저수지 상권’이 눈길을 끈다. 과거 풍부한 유동인구 중심의 ‘개천 상권’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에는 근처 배후에 거주민이 많은 주거 상권이 힘을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원·창동·목동 상권이 올 상반기 눈에 띄는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노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 상위 10위권에 진입하며 주요 상권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창동과 목동
은 성장세가 돋보인다. 창동역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21% 늘며 서울 주요 상권 중 매출 증가율 톱3에 등극했다. 목동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8%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3곳의 공통점은 주택 단지가 많다는 점이다. 근처에 거주하는 인구가 몰려 있기 때문에 학교나 학원, 병원이 많은 상권이다. 실제로 노원, 창동, 목동 모두 올 상반기 의료서비스업과 교육서비스업 매출이 증가했다. 의료서비스업 매출은 창동역이 44% 증가했고, 목동(18%)과 노원역(6%)도 성장세를 보였다. 교육서비스업 매출 역시 목동(47%), 창동(42%), 노원(7%) 모두 올랐다.
특히 저수지 상권에 위치한 병원은 올해 더 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 진단이다. 피부과 등 일부 특수한 진료과를 제외하면 내과나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은 일반적으로 주거지가 몰린 상권에 하나씩 다 들어간다. 그런데 올해는 대형병원이 파업에 들어가며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들 발길이 더욱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영갑 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의료서비스업 매출은 경기와 상관없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며 “올해는 대형병원 파업 여파로 환자들이 주거지 근처 병원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무실이 밀집한 오피스 상권도 한번 유입된 수요가 잘 빠져나가지 않는 저수지 상권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여의도, 시청, 구로, 가산 등으로 대표되는 오피스 상권 역시 올 상반기 매출 증가세가 돋보인다. 올 상반기 주요 상권 매출 성장률 상위권에 구로역(22%), 시청역(16%), 구로디지털오거리(8%) 등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오피스 상권은 지난해에 이어 엔데믹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직장인이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다른 상권에 비해 회복력이 빠른 것으로 풀이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오피스 상권의 특징은 일반 상권보다 엔데믹 영향이 크다는 점”이라며 “특히 구로디지털단지 상권은 엔데믹 이후 회복력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의도 역시 오피스 일대 의료시설과 편의점, 음식점, 소매 등 회복 추이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명동 이어 이태원도 부활 중
전통적으로 외국인이 많은 상권인 명동과 이태원의 부활도 눈길을 끈다. 팬데믹 시기 직격탄을 맞고 수많은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은 상권이다. 한때 “상권 절반 이상이 공실”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발길이 끊겼지만, 올 상반기 매출 증가세를 보면 회복세가 뚜렷하다.
명동은 이미 지난해부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 상반기 명동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30%였다. 그런 명동이 올 상반기 연거푸 10% 성장률을 기록했다. 소매업이 지난해 대비 10% 하락세를 보였으나, 음식업이 8% 성장했다. 올 상반기 명동의 음식업 매출은 1144억원으로, 명동 전체 매출의 39%에 이른다. 의료서비스업과 교육서비스업이 각각 23%, 24% 성장한 점도 눈길을 끈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은, 지난해까지는 침체가 이어졌던 상권이다. 팬데믹에서 벗어날 무렵 ‘핼러윈 참사’가 발생하며 이후에도 회복에 탄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는 다르다. 이태원은 905억원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카드 결제가 16%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서울 주요 상권 중 성장률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대부분 업종이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태원역 상권은 의료서비스업(41%), 소매업(29%), 생활서비스업(21%), 음식업(10%) 등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연령대별 성장세도 고르게 분포한다. 20대(14%), 30대(25%), 40대(11%), 60대 이상(21%) 다양한 연령대에서 매출이 증가했다.
실제 이태원 상권이 부활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온다. 우선 공실률이 11.5%까지 줄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2분기 한남·이태원 공실률은 11.5%로 12.3%였던 지난 1분기와 비교해 0.8%포인트 줄었다. 최근 이태원을 찾는 외국인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카드 매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김영갑 교수는 “지난해 기저효과를 차치하고도 이태원 상권은 살아나는 분위기”라며 “외국인 소비자가 증가하면 그에 맞는 독특한 매장이 상권에 생긴다. 국내 젊은 세대도 따라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나건웅·반진욱·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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