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E&S 합병 ‘9부 능선’ 넘었지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9.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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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 ‘카운트다운’

SK그룹 에너지 계열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안이 두 회사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하면서 ‘9부 능선’을 넘었다. 오는 11월이면 자산 100조원, 매출 88조원 규모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이 출범한다. 합병에 반대한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어느 정도 규모로 행사할지는 변수다. 우여곡절 끝에 합병 절차를 완료 짓더라도 성공적인 리밸런싱을 위해 SK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참석 주주 86% 찬성

매수청구권 규모 촉각

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월 27일 서울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 주총에서 참석 주주 85.75% 찬성률로 합병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SK E&S도 임시 주총을 열고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합병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의결권 자문기관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합병안 찬성을 권고해 주총에 참석한 외국인 주주 95%가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합병 완료 땐 SK E&S 1주가 SK이노베이션 1.19주로 교환된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은 “합병 완료 이후 다양한 주주친화 정책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주총 참석률(의결권 위임 포함)은 약 63%다. 대규모 합병 이벤트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로 보기는 힘들다. 과거 SK-SK C&C나 삼성물산 합병 등 주총 참석률은 80%를 훌쩍 웃돌았다. SK그룹 지주사 SK㈜와 외국인 주주 의사 결정만으로도 합병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개인과 국내 기관투자자 참여가 저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합병에 따라 SK㈜의 SK이노베이션 지분율은 약 56%까지 올라간다.

SK온을 포함한 SK이노베이션 자회사 3곳도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SK온은 오는 11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내년 2월 1일에는 SK엔텀을 흡수합병한다. SK㈜는 손자회사 에센코어와 자회사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SK에코플랜트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합병 마지막 관문은 주식매수청구권이다. 청구권 행사 기간은 8월 27일부터 9월 19일까지다. 규모가 관건이지만, 시장에서는 합병 동력을 훼손할 만큼 파괴력을 갖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합병 반대표를 던진 824만4401주에 매수 예정 가격 11만1943원을 곱하면 9229억원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매수청구권 한도 8000억원을 웃돈다.

다만, 반대 의견을 낸 국민연금이 약 594만주를 갖고 있다는 점에 비춰 모든 반대표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상정하기는 힘들다.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 특정 종목을 100% 덜어낸다는 것은 실무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는 주식매수청구권 한도액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8000억원을 웃돌더라도 SK그룹이 합병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8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본계약을 해지하거나 합병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상규 사장은 “현금을 합치면 1조4000억원 이상 되기 때문에 현재로선 주식매수청구권 규모를 감당 못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SK이노베이션 주가도 10만~11만원 선을 등락한다. 돌발 변수로 주가가 급락하지 않는 한 현 수준에서는 매수청구권 행사 실익이 크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합병 시너지를 적극 알려 남은 기간 주가 방어에 공력을 쏟는다.

SK온 자립 서둘러야

재무 개선 효과 두고 의견 분분

합병 법인 출범 뒤에도 고난도 과제가 쌓여 있다.

최우선 과제는 SK온 자립 기반 마련이다. 2차전지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SK그룹은 약 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SK온은 2021년 설립 이후 계속 적자 행진이다. 누적 적자는 3조원에 달한다. SK그룹은 2차전지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췄기에 밸류체인 정점에 놓인 SK온 시장 지배력 확대 없이는 전략의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번 합병으로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등에 트레이딩과 탱크터미널 사업에서 나오는 5000억원 규모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을 기반으로 현금흐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SK온 입장에서는 현금흐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지만, 기업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SK온 전체 현금흐름이 EBITDA 기준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본업인 2차전지 사업에서 유의미한 이익을 만들지 못한다면 ‘배터리 기업’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2026년 말 IPO를 하려면 상장 절차 등에 비춰 늦어도 2025년까지는 2차전지 사업에서 유의미한 현금흐름 창출이 필수적”이라며 “배터리 부문 수익성 개선 없이는 향후 기업가치 평가를 두고 투자자 측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봤다.

SK온 재무적투자자(FI)는 이번 합병 동의 대가로 ‘IPO 기한 내 추진’을 못 박았다. SK온 이사회에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 중인 FI 측은 이번 합병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명확한 의견을 남겼다. 합병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을 감수하고 합병에 동의해준 만큼 개인 발언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김민규 한투PE 대표이사는 “합병으로 인해 2026년 말 예정인 IPO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 우려가 크니 IPO는 일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며 “합병이 IPO를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라는 전제하에 본건 합병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재훈 MBK파트너스 대표 역시 “본건 합병은 투자자 동의가 선행돼야 하는 것으로 그에 따라 구속력 있는 계약이 체결돼 투자자가 합병에 동의하는 것을 조건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IPO 기한 엄수와 계약 조건 구속력 등을 강조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SK E&S FI인 KKR에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 상환을 위해서라도 숫자로 공언한 시너지 창출이 시급하다. 합병 관련 여러 공시와 IB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합병 동의 대가로 KKR에 중간배당으로 1500억원가량 지급했다. 내부수익률(IRR) 조건도 9.9%로 상향했다. RCPS 발행일로부터 상환일까지 IRR이 약 10%가 돼야 한단 것이다.

SK그룹이 RCPS를 못 갚을 상황이 되면 더 문제다. 이렇게 되면 KKR은 보통주 전환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때 보통주 가치가 사전에 정한 기준 가치를 밑돌 경우 배당률이 가산(연 5~5.5%)되는 ‘스텝업’ 조항이 발동된다. 이 경우 RCPS 배당률은 기존 약 4%에서 9~9.5%로 대폭 상향된다. 이 같은 조건을 맞추려면 SK E&S는 KKR에 매년 배당으로만 3000억원 안팎 현금을 줘야 한다. 결국 발행사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서둘러 RCPS를 상환하는 편이 실질적인 독립 경영을 위해 유리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물, 현금 등 어떤 형태로든 RCPS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현금 상환을 위해선 최소 4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현실적으로 고려하기 힘든 선택지다. 현금 마련이 어렵다면 7개 도시가스 자회사 지분을 KKR에 넘기는 현물 상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합병 이후 실질적인 재무 개선 효과를 놓고도 의견이 나뉜다. SK E&S는 최근 EBITDA 기준 1조원대 현금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수소에너지를 중심으로 설비투자(Capex)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조 단위 설비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사업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만으로 설비투자를 소화하기 벅찬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이 이뤄져 SK E&S 현금흐름은 위축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통합 시너지만으로 2030년 2조원 이상 EBITDA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석유개발(E&P)·트레이딩 경쟁력 강화(1000억원) ▲액화천연가스(LNG) 판매·구매와 마케팅 강화(4000억원) ▲제품·서비스 패키지화(1조6000억원) ▲글로벌 역량 결집(1000억원)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30년 20조원 이상 EBITDA 창출이 목표다. 윤재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 현금흐름이 강화돼 재무 리스크가 상당 부분 완화됐다”면서도 “SK온의 조속한 정상화가 결국 추세 전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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