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조업 부진에 ‘R의 공포’ 재점화…증시·국제유가 급락
미국발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미 뉴욕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지난달 5일 ‘블랙 먼데이’의 데자뷔다.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의 공포를 키운 건 미국 노동절 연휴가 끝난 직후 나온 제조업 경기 위축 신호였다. 3일(현지시간)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집계한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47.2로 예상치(47.5)를 밑돌았다. 이 수치가 50 아래면 경기가 위축됐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미국 제조 업황이 다섯 달 하강 국면에 있음을 뜻한다. 이날 S&P글로벌이 발표한 8월 PMI도 두 달 연속 50을 밑돌았다.
시장이 이 지표에 민감한 건 고용 창출에 대한 기여도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 침체는 고용 감소→소비 여력 하락→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 증시를 뒤흔들었던 지난달 5일 블랙먼데이도 잇따른 제조업 지표 부진 신호에 이은 고용 지표 부진으로 촉발됐다.
이에 더해 애틀랜타연방은행은 이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예측 모델인 ‘GDP나우’를 통해 올해 3분기 GDP 증가율 예측치를 지난달보다 0.5%포인트 낮춘 2%로 제시했다. ISM 제조업 조사위원회의 티모시 피오레 위원장은 “Fed의 통화정책과 선거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면서 수요가 억눌린 상태”라고 짚었다.
최근 중국과 유로존의 부진한 성장 전망까지 맞물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는 글로벌 증시를 짓눌렀다. 뉴욕 증시에서 S&P500은 2.12%,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51% 내렸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3.43%)는 최근 인공지능(AI) 회의론과 맞물려 하락 폭이 더 컸다. 지난달 5일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한국의 코스피가 3.15% 떨어지며 2600선이 무너졌고, 일본 닛케이255(-4.2%), 대만 자취안(-4.5%) 등 다른 아시아 증시도 급락했다. 유로지역을 대표하는 지수인 유로스톡스50도 장이 열리자 마자 하락세로 출발했다. CNBC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지면서 투자자가 미국의 연착륙 여부에 집중하고 있다”며 “잇따라 공개된 제조업 관련 데이터가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도 맥을 못췄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3.21달러(4.36%) 내린 배럴당 70.3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선물은 3.77달러(4.86%) 내린 배럴당 73.74달러에 거래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하 폭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FOMC에서 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은 41%로 1주일전보다 5%포인트 올랐다.
시선은 오는 6일 발표되는 8월 비농업 고용 지표에 쏠린다. 이 지표는 지난달 예상치(18만5000명)를 크게 밑돈 11만4000건을 기록하며 경기 침체 우려를 촉발했다. 월가에선 신규 고용이 10만명 이하로 나오거나, 실업률이 4.4~4.5%로 오르면 Fed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전까지 0.25%포인트 인하가 유력한 시나리오였다”며 “8월 고용 지표가 부진하게 나오면 경기 침체 우려가 정당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빅컷에 나선다면 이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시점을 놓쳤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정치권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에서는 내수 부진을 이유로 한은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해왔다. 그러나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면서도 “금융안정 등을 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 볼 때”란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집값 급등세 때문에 인하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의 침체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이 특정 데이터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로 크지 않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노동시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Fed의 실업률 장기 목표(4.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착륙으로 보기엔 수치가 나쁘지 않다“며 "아직 경기 침체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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