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으면 '낼 돈' 천천히 올린다 '尹 연금개혁' 세계 첫 시도 [국민연금 개혁안 | view]
기금고갈 2088년으로 늦춰
정부가 어렵게 연금개혁안을 내놨다. 정부가 단일 개혁안을 낸 것은 2003년 이후 21년만이다. 비록 11개월 '지각 제출'했지만 연금개혁에 불을 붙였다는 점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2026년 지방 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기국회는 연금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정부안을 두고 4일 여야가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이런 상황도 연금개혁의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비친다.
보건복지부는 4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보험료를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2%로 올리는 개혁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기대여명·가입자 변화 등에 연동해 연금액 정기 인상률을 낮추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퇴직연금 단계적 의무화, 개인연금 세제 인센티브 확대, 의무가입 연령 상향(59세→64세) 검토 등의 구조개혁 방안을 담았다. 또 보험료를 4%p 올리되 50대는 연간 1%p, 40대는 0.5%p, 30대는 0.33%p, 20대는 0.25%p 올려서 인상 속도를 달리하기로 했다. 차등 인상은 세계 첫 시도이다.
정부안의 재정 효과가 작지 않다. 이대로 가면 기금이 2056년(새 인구추계에 따라 2055년에서 수정) 고갈되는데,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2%'로 가면 2072년으로 16년 늦춰진다. 지난 5월 국회 연금특위에서 의견이 모여진 '13%-44%'보다 8년 뒤로 간다.
자동조정장치를 2036년에 도입하면 기금 고갈이 2088년으로 32년 늦춰진다. 2036년은 연금액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기금 고갈 5년 전인 2049년에 도입하면 2079년, 2054년에 도입하면 2077년으로 늦춰진다.
정부는 청년세대의 연금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지급보장 근거를 법률에 담기로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가가 연금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또 출산 크레디트(가입기간 추가인정) 대상을 둘째 아이에서 첫째 아이로 확대하고, 군 크레디트를 6개월에서 전 복무기간으로 확대한다. 기초수급자에게 기초연금도 지급한다.
정부안은 '더 내고 더 받기'에다 중간 정도 강도의 구조개혁을 담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표 구조개혁'이다. 정부안은 그간 극렬하게 대립해온 전문가 그룹(재정안정파, 소득보장파)의 목소리를 조금씩 반영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비판이 나온다. 전체적으로는 재정 안정을 통한 지속가능성 향상에 더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 있다.
정부안에는 이견이 크지 않은 게 일부 들어있다. 보험료 13%로 인상,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확대 등이다. 나머지는 하나하나 '논란 폭탄'이다. 소득대체율 42%는 애매하다. 민주당은 그간 40%를 44% 또는 45%로 올려 노후 소득보장을 강화하자고 강조해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금도 소득대체율 40%를 보장하려면 보험료가 19.8% 필요한데, 대체율을 더 올리는 것은 개악이라고 맞서왔다. 정부는 여야 합의를 고려해 가운데 지점인 42%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4일 논평에서 "적절하다"고 평가했지만 참여연대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국민 의견을 외면한 개악안"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논란은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세대 간 공정성의 핵심이다. 차등화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노후연금액을 결정하는 소득대체율은 1990~98년에 70%, 보험료는 3~6%였다. 99~2007년은 각각 60%, 9%였다. 50대, 40대가 이 기간에 연금에 가입했다. 낸 돈 대비 받는 연금액이 상대적으로 크다. 50세(75년생)는 소득대체율 평균치(40년 가입 가정)가 50.6%이다. 40세 45.1%이다. 반면 30세는 42.6%, 20세 42%이다. 50대의 연금액이 후하니 좀 빨리 보험료를 더 내고 은퇴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세대 간 갈라치기"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부모세대보다 형편이 더 나쁘다는 후세대의 사정을 고려하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도 있을 듯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묘수"라고 평가한다.
자동조정장치에 대해서도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혁명적"이라고 평가한다. 윤 박사는 당장 도입하는 게 아니라 일러도 12년 후 도입하는 걸로 돼 있어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연금이 성숙한 후 도입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는 수명과 가입자 수에 연동하는 약한 방식이다. 매년 물가상승만큼 연금을 올릴 때 인상률을 낮추는 것이라 절대액이 깎이지는 않는다. 다만 연금 실질가치가 하락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 회원국이 도입했다. 정부안 중 기초수급자 기초연금 지급, 국민연금 국가지급 법제화 등은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주장한 적이 있는 안이다. 연금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올리는 것은 가입기간을 늘려 연금액을 올리는 효과는 있다. 그래도 반발을 줄이려면 정년연장 논의와 같이 가야 한다.
연금개혁의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우선 연금특위 구성부터 불투명하다.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하더라도 개혁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입장문에서 '올해 모수개혁, 2026년 정기국회 때 1차 구조개혁'이라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정부안의 덩치가 큰 점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쉬운 것부터 하자는 뜻이다. 구조개혁은 모수개혁보다 더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데 내년 하반기에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정기국회에서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문상혁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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