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정부의 동상이몽, 거기 시민은 없다
2024년 2월 19일,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개강을 맞은 의대생들도 수업을 거부하며 휴학을 선언하자 ‘의료 대란’이 일어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정부와 의사 모두 바람직한 의료가 무엇인지 열변을 토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수가'와 ‘응급실 뺑뺑이’라는 낯선 단어의 홍수 속에서 시민이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돕는, 바람직한 의료라는 의료개혁의 본질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난리’를 감당하고 있나? 6개월의 궤적을 되짚으며,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기자말>
[Health Socialist Club]
의료공백 사태를 넘어 최근 곳곳에서 응급실 폐쇄까지 벌어지자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기자회견을 통해 또다시 '의료 개혁'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불거진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원래부터 그랬다"는 말로 일축한 뒤, 수가를 인상해 의사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의 불편은 점점 커지는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새롭지 않았다. 정부는 이미 사태 초기부터 수가 등 의사 집단이 요구해 온 단어를 내세우며 해결을 도모해 오고 있다.
▲ 국정브리핑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개혁’을 언급했다. |
ⓒ 대통령실 |
환자 내세우는 말 속에 환자가 없다
정부가 연이어 내놓은 대책이 현행 체계의 개선과는 관련 없는 반복 격이었다면 대립하고 있는 의사 집단의 대안은 어땠을까. 살펴보고 싶어도 의사와 의대생들은 병원과 학교에서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간 초반 모습과는 달리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계속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입장이 없는 것이 단일 안"이라고 답했고(관련기사: 尹, 2천명 얘기하면서도 "대화하자"…의사들 "증원 철회가 우선"), 전공의들은 7대 요구안의 수용이 선결 조건이라고 답했다(관련기사: 대통령-전공의 만남 후폭풍…"그래도 대화해야" vs "백지화부터").
대한전공의협의회 7대 요구안(24.02.20 대전협 비대위 성명 바로가기) |
1.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라 2.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증원과 감원을 같이 논하라. 3. 수련 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을 확대하라. 4. 불가항력의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라. 5. 주 80시간에 달하는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라. 6. 전공의를 겁박하는 부당한 명령들을 전면 철회하고 전공의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라 7.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을 전면 폐지하여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을 준수하라. |
의사가 보지 않는 것
▲ '경증 환자'와 응급실 응급실이 경증환자가 넘쳐나서 중환자를 받을 수 없는 탓에 ‘응급실 뺑뺑이’가 생긴다는 주장은 한국 의료의 문제로 항상 등장하는 단골 멘트가 됐다. 2023년 5월 31일 연합뉴스TV 보도. |
ⓒ 연합뉴스TV |
병원에 가기로 하더라도 바로 그 시점부터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힌다. 환자는 언제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농·어촌 지역에 산다면 주변에 갈 병원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병·의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더라도 어느 병원 어느 과를 찾아가야 찰떡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환자가 겪는 장벽을 하나씩 생각해 보자. 살다 보면 이곳저곳이 아프기 마련이지만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그 중 일부다. 하지만 언제 집에서 쉬어도 괜찮은지 알기 위해서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치료가 필요하고, 심지어 증상이 있고, 불편함을 호소하면서도 병·의원에 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병·의원에 갈 결심을 할 수 있다. 들여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 가난한 노인처럼 삶의 곤궁함이 겹쳐있을수록 이런 상황에 놓이기 쉽다.
"해드릴 것이 없다"는 그 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환자가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병원에서는 더 해줄 것이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아픈 몸으로 살아가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의료 안에 자리조차 잡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도 의료는 사망을 막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려두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한 것처럼 여겨진다. 돌봄과 의료의 통합, 연계 같은 말이 정책 공간을 떠돌아다니지만 환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과 난관은 오롯이 각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주변에 갈 병원이 없는 상황에만 "의료 접근성이 낮다"고 말한다. 한국에 병원 못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막상 근처에 믿고 찾아갈 만한 병원이 없는 지역은 생각보다 더 많다. 전국 곳곳에서 분출하는 공공병원에 대한 요구는 이런 필요의 반영이다. 공공병원 설립을 미처 떠올리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 필요의 규모는 보이는 범위보다도 훨씬 크다. 문제는 차별 없는 좋은 의료를 널리 제공하는 병원은 고사하고, 필요하면 찾을 만한 병·의원을 갖추는 일도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 환자를 중심에 둔 의료 의료를 중심에 놓고 환자를 찾아오는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환자를 중심에 놓고 의료가 어떻게 움직여야 환자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 살필 때 비로소 환자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는 의료를 만들 수 있다. Designed by Freepik |
ⓒ Freepik |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동상이몽'의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사용자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고 잘 작동하는 스마트폰의 내부는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의료 체계가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다면, 의료체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민들이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바람직한 의료체계'를 만든다는 목표와 의사와 정부의 서로 다른 주장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살피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료체계가 무엇인지 톺아보며 대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의료체계를 가장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문서, 세계보건기구의 2000년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는 보건의료체계를 '건강을 증진, 회복, 유지하는 일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한다(관련내용: The world health report 2000 - Health systems: improving performance). 사람에 따라 보건의료체계의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의사들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학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구분해서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보건의료체계가 산출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건강을 증진· 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의료체계는 '건강'을 생산하는 체계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하면 건강이 나아진다'고 알려진 서비스를 생산할 뿐이다.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정의를 뜯어보면 의사와 환자 간의 '동상이몽'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체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첫 번째로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은 건강은 무엇이냐는 점 그리고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는 단순히 질병 또는 병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육체적·정신적 및 사회적 복리(well-being)에 있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죽지 않거나 질병이 낫는 일 외에도 괴롭고 불편하거나, 중병의 가능성으로 불안해하는 상황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서비스와 상품이 대폭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난점은 의료란 물건이 아니라 서비스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흔히 실물이 있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재화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행위를 서비스라고 부른다. 서비스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되는 장소에서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져 보관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있는 의사가 간부전을 진단하기 위해 신체 진찰을 한 후에, 그 서비스를 택배상자에 고이 담아 지방 환자에게 보낼 순 없단 소리다. 원격의료조차도 특징적이고 제한적인 부분에서 시공간적 거리를 좁힐 뿐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의료의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픈 사람과 같은 장소에 있지 않으면 의료의 대부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번째 곤란함은 건강을 증진·회복·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앞서 얘기했듯 어디까지를 건강이라 볼지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의료의 범위도 모호해진다. 예를 들어 야구 선수는 공을 잘 던질 수 있도록 트레이너가 마사지도 하고, 피도 뽑고, 침도 놓는다. 결과적으로 야구 선수가 야구를 잘하면 정신적 복리를 누릴 테니, 트레이너가 하는 여러 처치를 의료라고 보지 말아야 하는 과학적 근거가 존재할까?
▲ 야간 및 휴일 비상진료 최근 국립중앙의료원 로비에 보건의료재난 발효로 시작된 야간 및 휴일 비상진료 안내가 게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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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의료체계의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문제로 지목하는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의사는 의사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한국의 의료체계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도대체 같은 걸 보고 있는가 싶을 정도로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의료체계의 '문제'가 수학 문제의 정답 같은 게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방향과 권력 관계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균열'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의료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정부와 의사의 말에서 정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양쪽 모두 사람들에게 해로워 보이는 일들을 과감하게 벌이면서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건 어떤 공통의 이해를 보여준다.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처지에서 문제를 살피는 게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의료라는 '업의 본질'에도 맞다는 주장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주장에 대한 오해를 반영하는 흔한 응답은 "환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줘야 하나?"라는 반문이다. 당연히 아니다. 인터넷이 좋아지면서 환자들의 지식이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환자들도 접할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지식으로 엮어 활용하는 데에 의사의 전문성이 있다. 현실에 조금 더 가까운 방식으로 말하자면 질환의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진단할 수 있는 전문성,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의사의 진짜 전문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 중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 질문에 답하는 사람에 따라 답변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장 권위 있는 연구자를 데려온다고 해서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환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모전을 벌이고, 그 결과를 모아 책을 낸다고 해도 그게 곧 '민의'를 대변한다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애써 환자의 필요에서 출발해 질문과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있다. 아픈 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사회적 공론장에서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질환을 중심으로 모인 환우회가 있지만, 환우회는 흔히 중증·희귀질환 환자를 중심으로 조직되니 특정한 질환을 중심으로 논의가 흘러가기 쉽다. 게다가 몸도 아픈데 이곳저곳 다니며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다. 몹시 아픈 사람은 건강이 사회적 활동을 허락하지 않고, 조금 아프고 말았던 사람은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을 두고 겪은 분노를 사회적으로 풀어내기엔 대개 살아가는 일이 너무 험하다. 환자들은 전문가의 언어로 말할 지식을 갖기도 어려운데, 지식이 있어도 말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추가로 있는 셈이다.
수가만 올리면 된다는 의·정, 시민 위한 의료는 어디로 갔나
세상에 완벽한 의료체계 같은 건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의료체계는 만들어갈 수 있다. 각 나라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의료에 불만을 표하곤 한다. 아직도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해서 그렇다는 철 지난 소리도 있지만, 이제는 정말로 해외 사례는 참조의 대상일 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선진국 같은 건 없다. 전 세계에서 병원을 가장 많이 간다는 한국의 의료를 어떻게 바꿀지를 모색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다면 환자의 필요에 대한 공적 논의가 북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의료개혁 방안을 훑어보면 우리가 시민의 필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병원에 돈을 주고, 주먹구구식이던 전공의 수련을 선진화하자고 말하는 정책 문서에서 사람들은 어떤 위안과 안심을 얻을 수 있을까? 나름의 고려와 숙고 끝에 나온 대책이라고 해도 환자와 시민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다른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데 그쳐왔다.
환자를 중심에 놓자, 시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하자는 말이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보기 좋게 만드는 장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다"고 하더라도 6개월이 드러낸 '의료체계'의 문제에 성실히 답하지 않고서 한국 사회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6개월, 환자의 말, 시민의 삶에서 출발하는 의료를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의료의 종착역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임을.
* 필자 소개: Health Socialist Club은 사회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인구 집단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내용을 일반 시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연구모임입니다. Manager 김새롬/ Member 김진환·문다슬·문주현·박서화·이한빈. HSC의 블로그(https://www.notion.so/healthsocialist/Health-Socialist-Club-4f293bb8aab34b3c91dfed0ddd7f7ba3)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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