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때려치운 영화천재의 신작, 당신의 평가가 궁금하다
[안치용 기자]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사에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감독이 꽤 되지만 독창성을 기준으로 보면, 팀 버튼은 단연 정상권이다. 1958년생 개띠인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덤보>(2019년)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더불어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세계 영화계에 버튼의 존재를 알린 1988년의 출세작 <비틀쥬스>의 속편이어서 더 기대를 모은다.
영화 제목이 <비틀쥬스2>가 아니라 <비틀쥬스 비틀쥬스>인 것이 흥미롭다. 중첩하고 반복하지만, 각각의 비틀쥬스를 보여준다는 뜻일까.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팀 버튼은 여전히 거장임을 증명한다"(BLACK GIRL NERDS) 등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새롭기는 쉽지만 더 새롭기는 어려운 예술세계에서 버튼이 이번엔 어떤 성취를 이루었을지, 관객은 어떤 평가를 내어놓을까.
▲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비틀쥬스>에서는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아담(알렉 볼드윈)과 바바라(지나 데이비스)라는 젊은 부부가 나온다. 행복한 삶을 누리던 부부는 자동차를 타고 동네에 다녀오다가 길가의 개를 피하는 와중에 강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사망해 유령이 된다.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사후세계의 규칙에 따라 사망 후 125년을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뉴욕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찰스 가족이 유령 부부의 저택으로 이사 오며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아담 부부는 겁을 주어 찰스 가족을 내쫓을 생각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뜻밖에 찰스의 딸 리디아가 유령을 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어서 아담 부부와 친분을 맺는다.
아담 부부는, '산' 사람을 유령의 집에서 내쫓아 준다는 바이오 엑소시스트 비틀쥬스를 부른다. 비틀쥬스 또한 유령이지만 급이 다른 미치광이 유령이다. 아담 부부가 엑소시스트 의뢰를 철회한 후에도 비틀쥬스는 저택에 남아있으면서 리디아와 결혼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비틀쥬스는 리디아와 거의 결혼할 뻔하지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공조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지하 세계로 쫓겨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는 <비틀쥬스>의 구도가 반복된다. 그러므로 주요 등장인물은 그대로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비틀쥬스가 당연히 그대로 나오고, 비틀쥬스와 함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와 리디아의 새엄마 딜리아(캐서린 오하라)가 속편에서도 극의 중심을 잡는다.
그사이에 유령과 대화하는 영매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리디아에게 10대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가 생겨 <비틀쥬스 비틀쥬스>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틀쥬스>의 리디아 역을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아스트리드가 어느 정도 담당하지만 제한적이다. 비틀쥬스와 리디아의 결혼이 주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기본 구도를 유지하며 새로운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추가된다. 아스트리드에게 로맨스가 일어나 극 전개를 이끌고,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 델로레스가 등장해 비틀쥬스의 연애 전선을 복잡하게 만든다. 관록의 윌렘 대포가 출연해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비틀쥬스>에 '바이오 엑소시스트(인간퇴치사)'로 나온 비틀쥬스가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죽은 자의 세계로 잘못 넘어간 산 자를 구하는 역할을 한다. 엑소시스트(퇴마사)를 역전한 '바이오 엑소시스트'란 발상이 <비틀쥬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세계관의 일단이다. 헷갈리는 면이 없지 않지만,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가 말 그대로 엑소시스트(Exorcist)의 면모를 보여준 셈이다.
버튼은 어렸을 때 내성적인 성격으로 혼자 공동묘지에서 지내고, 온종일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왕따였다.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디즈니에 입사한 후 자신의 상상력을 펼칠 수 없어 바로 퇴사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삶이 영화로 고스란히 이어진 셈이다. 버튼의 어록 중에 다음 말이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널리 유통된다.
"예술가로서 사물을 새롭고 독특하게 바라볼 것을 언제나 기억한다면 바람직하다."
(It's good as an artist to always remember to see things in a new, weird way.)
"새롭고 독특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물을 제대로 봐야 한다. "새롭고 독특하게" 봄으로써 발현하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대체로 일반의 시각으로, 혹은 보통의 방식으로 사물을 본 다음 그것을 뒤집거나 확장함으로써 성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오 엑소시스트'는 엑소시스트의 역전이며, 죽은 자의 세계 또한 산 자의 세계의 역전이다. 역전은 확장이기도 하다. 동시에 역전 없는 확장도 가능하다. 확장에 꼭 역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도움닫기로 도약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비틀쥬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작품세계가 공통적으로 역전과 확장, 도약에 기반했다면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자체로 <비틀쥬스>의 역전과 확장, 도약이다.
▲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포스터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벌레와 별은 판이하다. 베텔게우스는 그냥 별이 아니다. 천문학사에서 꽤 유명하고 그러다 보니 점성술에서도 리겔 등과 함께 인간 운명을 해석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맡는다. 점성술(占星術)에 해당하는 영어는 'astrology'로 '별의 해석(account of the stars)'이란 뜻의 그리스어 명사 아스트롤로기아(ἀστρολογία)에서 파생했다.
비틀쥬스(베텔게우스)라는 작명과 속편의 이름이 비틀쥬스를 두 개 겹쳐놓은 것 또한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중요하다. 비틀쥬스와 베텔게우스 사이의 그 먼 거리에서 비롯한 천문학적(혹은 점성술상의?) 이격과 능청스러운 합체가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버튼이 말하려는 핵심이다.
이 합체는 소멸을 전제한 개념이 아니다. 다른 것들이 합체해 다른 것이 되지만, 다른 것들은 합체 안에 여전히 살아있고, 공존한다. "사물을 새롭고 독특하게(in a new, weird way)" 바라본 결과이다. 관점에 따라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의 생각과 부합한다.
흔히 칸트의 묘비명이 별과 가슴을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하늘이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과 "내 안의 도덕법칙(das moralische Prinzip in mir)"을 말했다. 둘 자체를 대비하지도 않았다. 대비가 있다면 위(über)와 안(in) 사이인데, 그 부차적인 대비에 커다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연히 칸트와 버튼은 다르다. 버튼이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베텔게우스와 비틀쥬스의 대비와 합체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만들어냈는지를, 그래도 칸트를 잠깐 떠올려 보며 음미해 보는 게 흥미롭겠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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