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임금의 <사제문>
[김삼웅 기자]
▲ 남명 조식 |
ⓒ 김동수 |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남명을 무척 존중하여 직접 <사제문>을 지었다. 이런 경우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한때 제자 정인홍의 제문이 <남명집>에서 삭제된 채 발간되기도 했지만, 역사상 '역사'를 이긴 권력자는 없어서 후일에 다시 보충되었다.
남명의 제문이나 만장을 쓴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명사들이다. 그래서 내용이 충실하고 문장이 장중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깝지만, 대표적인 몇 편을 수록한다.
먼저 선조의 <사제문>이다.
선조의 사제문
아아! 영령이시여!
강과 산악의 바른 기운과
우주의 빼어난 정영(精英)이로다
정중한 자품은 빼어나게 밝고
타고난 바탕은 순수했다오
난초 떨기에서 싹이 돋아난 듯
학문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도다
글을 배우고 재주 익혀서
무리에서 빼어나고 날카로웠소
일찍이 큰 의리를 보고서
두루 깊은 뜻을 탐구했었지
우뚝하고 우뚝한 공자와 안자
그 경지에 도달하고자 기약하였소
하늘이 우리 유교를 망치려 함인가?
선비들은 지도자를 잃었도다
세상 사람들 참되고 순박한 본성 잃고서
시대의 조류에 영합할지라도
그대는 뜻 둔 바를 더욱 굳게 지켜
그 지조 변하지 않았다오
남는 힘을 좋은 문장에 쏟았고
도(道)에 나가는 데 정성스러웠소
이에 조예가 깊게 되어
드디어 명성이 사방에 퍼졌소
좋은 자질을 간직하고서도
노을 낀 산골에서 고상하게 숨어살았지
아침저녁으로 옛 고전을 대하여
학문을 익혀 연마하기에 더욱 힘썼소
산이 솟은 듯 우뚝하였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깊었소
맑은 기상 서리처럼 깨끗하였고
아름다운 덕은 향기로운 난초 같았소
얼음 담은 병(甁)인양 가을밤 달빛인양
큰 별인 듯 상서로운 구름인 듯했소
멀리 숨어산다고 세상을 잊었겠소?
외척들이 하는 정치 깊이 근심하였지
아아! 그 마음은
요순 같은 임금 만들고 요순의 백성 만들고자 했소
선왕께서 등극하신 그 초기에
도적 같은 신하들 권세를 차지하였지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 하고 도척을 청렴하다 하며
간사한 무리들이 바른 사람을 공격했지요
세 가지 정기인 해, 달, 별이 거의 빛을 잃고
인간의 윤기가 뒤집히려고 했소
천장을 쳐다보고서 깊이 생각하건대
누구 때문이며 누가 그런 지경으로 몰아갔는지?
하늘이 우리 임금을 도우셔서
정성을 기울려 어진이 불렀다오
대궐에서 부르는 교서를 내려
예 갖추어 초빙하는 행렬 끊이지 않았다오
그대 이에 떨쳐 일어나
나라 위해 몸을 바치려 했소
곧은 말은 바람이 이는 듯했나니
뜻을 바르고 말은 준엄했었소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봉황새가 울어
뭇 사람들의 위축된 마음을 풀어줄 줄을
간사한 아첨꾼들 뼈 속이 서늘하였고
자리나 차지한 벼슬아치 얼굴엔 땀 줄줄
그 위엄은 종묘사직을 압도하였고
그 충성은 조정을 뒤흔들었다오
사람들이 그대 위험하다고 말했을 적에
그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오
선왕(先王)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거룩한 마음으로 깊이 두려워하였소
삐뚤어지고 간사한 무리 내쫓고
어진이 생각하고 덕 있는 이 구하려 했소
맨 먼저 그대를 불러일으키느라
역마(驛馬)가 자주 자주 달렸다오
베옷 입은 채로 선왕을 마주하여
좋은 것들을 모아 임금님께 바쳤소
주고받는 문답이 메아리 같았고
물고기가 물 만난 듯 서로 흐뭇했소
그대는 살던 곳이 그리워서
이에 곧장 돌아가 버렸다오
그대 머물러 둘 수 없었나니
말이 여기에 이르자 느낌 많도다!
내(宣祖)가 왕위를 계승하고서는
그대의 명성을 일찍이 흠모했다오
이에 선왕(明宗)의 뜻을 쫓아서
여러 차례 그대를 벼슬로 불렀다오
그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나니
내 정성 얇은 것 부끄러워하였소
충성을 다하여 상소를 했는데
말은 높고 식견은 대단한 것이었소
아침저녁으로 마주 대하면서
곁에 두고서 고문으로 삼았으면 했소.
그대 올라오면 나의 팔 다리처럼 되어
나를 도와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오
어찌 알았으리오? 한 번 병들게 되자
소미성이 징후를 나타낼 줄이야
내를 건널 때 누구를 의지하며
높은 산을 어떻게 우러러보겠소?
소자(小子)는 누구를 의지하며
백성들은 누구에게 희망을 걸겠소?
말이 여기에 미치니 내 마음 슬프다오
옛날 은둔한 사람을 생각하니
시대마다 그 공적과 빛이 있었다오
허유와 무광이 이름 세웠고
요 임금 순 임금은 창성했다오
노중련은 진나라 거부했고
엄광은 한나라를 지지했다오
비록 다 같은 절개라고 하지만
오히려 혹 어지러움을 막을 수 있었소
하물며 그대의 아름다운 학덕은
금이나 옥처럼 바르고 굳음에랴
몇 마지기 시골 전답 속에 숨은 몸이
세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오
그 빛은 한 세상을 밝혔고
그 공덕은 백대에 남아 전하겠소
비록 벼슬을 추증하지만
어찌 예우를 했다 할 수 있으리오?
옛날 훌륭한 임금들이
같이 살지 못했음을 한으로 여긴다더니
내가 이 말을 음미해 보고서
마음에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오
그대 목소리와 모습 영영 볼 수 없으니
이 통한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
저 남쪽 땅을 바라다보노라니
산은 높디높고 물은 아련하도다
하늘이 어찌 훌륭한 원로 남겨 두지 않고
계속해서 들어가게 하시는지?
나라가 이로 인해 텅 비게 되었고
전형(典型)이 없어졌으니 이 일을 어쩌겠소?
신하 보내어 맑은 술을 내려 제를 올리니
내 마음이 무척이나 슬프다오
훌륭하신 영혼은 밝게 살피시어
나의 향기로운 술을 흠향하소서. (주석 1)
주석
1> 하권수 편역, <남명 그 학덕을 그리며 - 제문과 만나>, 1~8쪽, 경인문화사, 2011.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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