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음' 얻자고 기시다 '졸업 여행' 시켜주나

오태규 2024. 9. 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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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일본 퍼주기 외교의 절정, '한국의 마음'은 잃고 '기시다 마음'만 얻자는 건가

[오태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올해 들어 2번째 국정보고 및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국정보고 횟수만 헤아리면, 지난 5월 취임 2주년 국정보고와 6월 동해 심해 가스전 브리핑에 이어 3번째입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전혀 국내 기자들 앞에 나서지 않다가 올해만 세 차례나 귀한 모습을 드러내 주셨으니, 양적으론 달라졌다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얼굴만 자주 보여주면, 뭐합니까? 질이 달라진 게 전혀 없는데요.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윤 대통령의 소통 방식

이번 국정보고 및 기자회견은 5월 행사의 판박이였습니다. 40여 분의 국정보고 내내 '미국 사대주의'의 상징물인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는 이전처럼 화면의 중심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메가 클러스터', '세일즈 외교', '컨트롤 타워', '글로벌 스탠다드', '글로컬 대학', 'AI 디지털 교재'와 같은 외국어·외래어 남용도 여전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국정보고를 집무실 책상에 앉아 교시 내리듯이 하는 권위주의 태도도 그대로였습니다.

국정보고에서 기자회견까지 2시간이 넘는 '윤 대통령의 일인극'을 관람하는 것은, '인내력 시험'이었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제발 아프지 마세요'라는 인사말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데도 "응급실이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니, 시금치 한 단 값이 1만 원이나 된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요란한데 "경제는 확실히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니,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화자찬과 아전인수로 뒤범벅된 얘기를 일방적으로 하는 게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제발 옛날의 불통으로 돌아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윤 대통령의 아전인수와 자화자찬 행진은 내정과 외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는 "그동안 113개국과 197회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전방위 경제 안보 외교를 펼쳐서, 우리 기업과 국민의 운동장을 크게 확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라고 자랑했습니다. 특히, 한일 관계에 관해 "작년 3월, 한일 관계를 12년 만에 정상화시켰고, 정부 출범 이후 11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다고 으스댔습니다.

일본에 10배나 더 퍼주고 얻은 게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113개국과 197차례 정상회담을 했다니 한 나라 당 1.053회꼴로 정상회담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과는 무려 11차례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일본을 다른 나라보다 10배 이상 중시했다는, 즉 전방위 외교가 아니라 지독한 일본 편중 외교를 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다른 나라보다 10배나 더 퍼주고 얻은 게 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 정권의 외교 안보 실세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반 잔의 물컵'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적극 변호하고 나선 걸 보니 아직도 일본의 마음을 사기 위해 갖다 바쳐야 할 게 많이 남은 모양입니다. 지하철과 공공기관 등에 설치했던 독도 조형물을 슬그머니 철거하고도(논란이 되자 뒤늦게 일부 되돌려놓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친일 부역 세력을 옹호·지지하는 자들을 무더기로 역사와 이념을 다루는 공공기관장에 앉힌 것으로도 일본의 마음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윤 정권의 대일 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사협력의 가속화, 폭주입니다. 이와 함께 독도 영토 수호 의지는 현저하게 약해졌습니다. 역대 정권이 기를 쓰고 지켜왔던 독도 주변 수역은 어느덧 일본 해상 자위대 함정들의 훈련장으로 변했고, 일본 정부가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큰소리쳐도 수세적으로 항의하는 시늉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도방어훈련 마저 비공개로 했습니다.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고유 영토'인 독도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이 나라에서 서자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판에 국방차관이라는 자는 지난 8월 28일 국회에서 일본 자위대의 한국 진출 발판이 될 수 있는 한일 군수지원협정(ACSA)에 관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했습니다(김선호 국방차관은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후 김병주 의원의 '한·일 군수지원협정 체결' 관련 질문에 "정부 차원에선 동의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 편집자 주).

저는 이 발언을 듣자마자, 7월 말 신원식 국방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을 방문해 미국 국방장관 및 일본 방위상과 맺은 한미일 '3자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 각서(MOC)'를 떠올렸습니다. 윤 정권은 이 협정의 상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 '독도와 관련한 밀약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는데도 말입니다. 만약 윤 정권이 주권과 영토를 양보하고서라도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일본 자위대를 이 땅에 끌어들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기시다 '졸업 여행' 성 방한, '대일 퍼주기 외교'의 절정
 올해 7월 10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악수하는 모습.
ⓒ 대통령실
윤 정권의 '일본 퍼주기 외교'의 절정은, 한 달 뒤 퇴임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9월 6일~7일)입니다. 그동안 모든 걸 쏟아붓듯 퍼주고도 반 잔의 물도 얻어먹지 못했으면서 그의 '졸업 여행'까지 살뜰하게 챙겨주는 꼴입니다. 국내에서는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까지 세우면서 말입니다.

저는,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과 윤석열-기시다의 12번째 정상회담이 한국 외교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리라 봅니다.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외교 관례에도 맞지 않는 '헛발질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기시다 총리는 2012년 자민당이 다시 정권에 복귀한 뒤 가장 인기가 없는 총리입니다. 그래서 9월 말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도 포기했습니다. 일본 국민과 자민당에서 철저히 버림받고 떠나는 터여서 퇴임 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가 출마를 접은 자민당 총재(사실상 총리) 선거에는 지금 10명이 넘는 후보들이 손을 들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가 총리가 될지 오리무중입니다. 외교력을 총가동해 누가 새 총리가 될지, 새 총리의 한국 정책은 어떨지, 새 총리와 어떻게 선을 댈지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24시간을 써도 부족한 때입니다. 한가하게 인기 최악으로 떠나는 총리의 졸업 여행이나 챙겨줄 때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재임 내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기시다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안면을 싹 바꾼 채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를 미국에 보내 트럼프를 만나게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정권 교체에 대비해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국익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국제외교 무대의 냉엄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마지막까지 깍듯하게 모심으로써 '기시다 개인의 마음'을 살 수는 있겠지만 '일본의 마음'을 사기는 어려울 겁니다. 오히려 일본 쪽은 '순진하고 얕은' 윤석열 정권의 대일 외교를 호기로 삼아, 차기 총리가 들어선 뒤 더욱 맹렬하게 빼먹기 외교 공세로 나올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윤 정권의 균형 잃은 대일 과공 외교, 대일 헛발질 외교를 보는 게 너무 안타깝고 무섭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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