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의대 정원, 아직 타협점이 남아있다
[김진욱 기자]
갑작스러운 의대증원 2000명에 반발하며 전공의가 병원을,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 지 반년이 되었다. 지금의 의료대란은 해결의 기미가 전혀 없고, 응급의료 붕괴는 임박해 있다. 내년에는 신규면허를 발급받는 의사도, 필수의료를 담당할 전문의도 거의 배출되지 않게 된다. 유급된 의대생에 늘어난 신입생까지 감당해야 할 의학교육 체계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두가 인정하듯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의료의 접근성과 질적 수준이 우수하고, 큰 질병에 걸렸을 때 소위 이름난 '명의'를 찾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모두가 대형상급종합병원을 찾았지만 진단에서 치료까지 빠른 치료가 가능했던 것은, 교수들이 핵심 의료행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전공의를 필두로 한 의료진이 감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입원 환자의 주치의로 실질적인 처치와 처방을 도맡았기에, 교수들이 하루 10건이 넘는 암 환자를 수술하고 50명이 넘는 외래환자를 진료할 수 있었다. 외과수술 수가가 원가에 훨씬 미치지 못했어도, 저임금 전공의들을 최대한 활용했기에 큰 무리가 없이 병원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MZ세대 전공의들이 300만 원 남짓한 월급에 주 100시간 근무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의사들이 전공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면허를 취득하자마자 미용의로 취업하고 경력을 쌓은 후 개업하는 이들도 많다. 전공의들은 필수의료를 업으로 삼으며 안정적인 삶과 명예를 함께 얻고자 고달픈 수련 과정을 감내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은 기득권을 누리지 못한 전공의들에게 의사로서의 안정된 미래는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한 것은 한국 의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젊은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반발이다.
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이 아무리 옳더라도 의료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의사들 없이 개혁을 진행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반발이 예상되는 개혁을 가장 편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무런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고 고생만 한 전공의들을 악마화하여 전 국민의 미움받이가 되도록 한 것이다.
▲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
ⓒ 연합뉴스 |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2025년 증원을 유예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고, 정부는 2025학년도 수시전형이 이미 시작되어 1500명 증원은 불가역적이라 항변한다. 정말 2025학년도 정원은 조정의 여지가 없을까?
현 상황에서 증원된 2025학년도 의대정원 자체를 건드리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어 정부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시 결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으면 의대 증원의 폭을 줄일 여지가 있어 이를 지렛대 삼아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
대부분의 의대들은 수시 전형에서 3합 4 또는 4합 5와 같은 높은 수준의 수능 성적을 요구한다. 과거 입시에서도 중복 합격과 수능 최저 요건으로 수시 정원을 채우지 못한 사례가 빈번했다. 올해 입시에서는 의대 정원이 갑자기 확대되어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한 수시 결원이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수시 결원을 정시에 이월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카드로 꽉 막힌 의정 간의 협상 물꼬를 터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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