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뒷머리 기계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 대전 한 고교 황당 학칙
[장재완 기자]
▲ 청소년인권단체 등은 4일 오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A고등학교 인권침해 학칙 개정과 대전교육청의 조치를 촉구했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청소년인권모임 내다와 대전인권행동,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 등 70여개 단체들은 4일 오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A고등학교는 시대착오적 두발규정과 인권침해 학칙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대전의 명문고라고 불리는 A고등학교는 '파마와 염색 금지,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하여 경사지게 깎아야 하고, 윗머리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두발규정을 두고 있다. 두발규정을 위반하면 벌점 3점이고 벌점 10점이 쌓이면 징계를 받는다. 두발검사는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휴대폰을 학교에 들고 오지 못 하도록 하고,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가방에 넣고 있어도 '소지' 한 것이 발각되면 벌점을 매기고 1주일 간 압수한다는 것. 이 뿐 아니라 야간자율학습과 방과후 수업 등 정규교과시간 이외의 교육활동에 대해 형식적인 동의서 틀만 갖춰놓고, 실제로 비신청을 기재하면 다시 써오라고 요구하여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규정에 대해 일부 학생들이 여러 차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및 교육청에 민원을 통해 권리구제를 요구했으나 학교는 교육주체(학생·교사·학부모)의 의견수렴을 거쳐 정한 규정으로 개정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2024년의 학교 생활규정이 맞는가"
이에 대해 기자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A고교의 학칙이 과연 2024년의 학교 생활규정이 맞는지, 학교 관리자들의 인권 감수성이 20세기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특히, 학생들의 진정에 따른 인권위의 조사에서 학교 측이 '학생들이 두발 규제를 용인하고 입학했다', '염색과 펌을 허용하면 학업성취도가 저하될 것', '염색을 허용하면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결과적으로 학업 수행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규정개정을 거부한 것은 "온간 근거 없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인권위가 학칙 개정을 권고한 결정문에 따르면, A고교는 지난 해 한 해 동안 두발 관련 규정 위반을 이유로 총 405회, 1215점의 벌점을 줬다는 것. 심지어 인권위의 규정개정 권고 이 후 진행한 학생생활규정 개정 투표에서 학생 62.33%가 찬성했지만, 교사 투표에 10배의 가중치를 부여해 학칙 개정을 좌초시켰다면서 "아무리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A고의 모습에서 학생의 존엄성, 기본적 인권, 참여권의 자리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규정을 근거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점을 매기고,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는 인권침해적 교칙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은 학생과 교사 간 건강한 관계맺음과 교육주체 간 신뢰회복에 걸림돌이자 장벽"이라고 주장했다.
▲ 청소년인권단체 등은 4일 오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A고등학교 인권침해 학칙 개정과 대전교육청의 조치를 촉구했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인권위가 지난해 실시한 '학생인권 보장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전 관내 학교 중 학생인권 및 기본권을 학교규칙에 명시한 학교는 19.3%에 불과했고, 자의적, 주관적 해석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우려가 있는 '학생답지 못한, 불미스러운 행동, 불손한, 성행이 불량한, 불온, 불순한 등'의 표현을 가진 조항의 경우, 중학교 78.4%, 고등학교(사립) 71.4%, 고등학교(공립) 58.8%에서 발견됐다고 이들은 밝혔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인권 전담 부서를 설치하지 않고 학생인권 보장 의무를 소홀히 한 대전광역시교육청과 설동호 교육감의 책임이 크다"며 "대전교육청은 반인권적 학칙으로 학생들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끝으로 ▲ A고등학교는 시대착오적 두발규정과 인권침해 학칙 철폐할 것 ▲ 대전교육청은 전수조사 등으로 학생인권 침해하는 학칙을 전면 점검하고 개정할 것 ▲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학생인권 전담기구 설치로 인권보장책무 이행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A고 재학생이 발언문을 보내 "저는 졸업할 때까지 이 규정이 바뀔 거라는 기대조차하지 않는다. 학교 관리자들의 실상을 보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앞으로 학교를 다닐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인권침해규정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현희 전교조 대전지부장은 발언에 나서 "18년 차 교사로서 학생들의 제보내용을 읽으면서 두 눈을 의심했다. 도대체 이곳이 학교인가, 아니면 강제수용소인가"라며 탄식한 뒤 "비상식적으로 학생들의 신체 자유를 억압하고,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며, 과잉규제를 통해 학생들을 처벌과 입시 불이익에 대한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학칙 개정 투표에서 교사에게 10배의 가중치를 부여했다는 사실에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혀를 내둘었다.
또한 이병구 대전인권행동 집행위원장도 "21세기에 아직도 휴대전화, 두발복장 규정, 야간자율학습 강제 참여 같은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창피하다"며 "A고의 학교생활규정을 보면 '학습활동은 학생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임을 각성하고, 교수학습 활동에 인내심과 복종심을 가지고 참여한다'고 되어 있다. 이게 현대판 노비 문서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비난했다.
그는 계속해서 "대전고 생활규정은 하나하나 범죄를 조장하는 조항에 가깝다.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으면 강도죄에 해당하지 않느냐"며 "A고 교장과 전체 교원, 학부모들의 맹렬한 반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를 방문, A고등학교 학교생활규정에 대한 재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이에 대해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생활규칙을 만들도록 지난 해 전 학교에 안내했고, 각 학교에서 의견수렴을 거쳐 규정을 재개정한 뒤, 올해 말까지 개정된 규정을 교육청에 제출토록 하고 있다"며 "A고의 경우에는 교육 3주체의 의견수렴을 거쳐 재개한 규정이어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전교육청에서는 학생의견과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규정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모니터링하며 컨설팅 팀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인권위 권고처럼 강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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