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삽질했네…땅굴 4m 팠는데, 송유관 9m 앞두고 딱 걸렸다
영화가 따로 없다. 송유관 매설지점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석유를 빼내려 한 일당이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하 송유관 석유를 훔치려고 한 9명을 전원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나머지 작업자 3명은 불구속한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 2월 8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한 2층짜리 창고 건물을 빌린 뒤 6월 20일까지 삽과 곡괭이 등을 이용해 1층에서 지하로 4m가량 땅굴을 파는 방식으로 송유관까지 접근해 기름을 빼내려 한 혐의(송유관 안전관리법 위반)를 받고 있다.
동종전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50대 A씨는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석유 절취시설 설치 기술자, 현장 관리책, 굴착 작업자, 운반책 등 공범을 모집했다. 이들은 범행 장소 물색, 송유관 매설지점 탐측, 석유 절취시설 설계도면 작성, 절취한 석유를 판매할 장소를 알아보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A씨 등 일당은 지하 4m 지점에서 가로 75㎝, 세로 90㎝, 길이 16.8m가량의 땅굴을 파내다 송유관 9m 전 지점에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땅굴을 파는 동안 임차한 창고에는 허위 물류센터 간판을 내걸었다. 땅굴로 이어지는 곳은 냉동 저장실 등으로 위장했다. 특히 이들이 땅굴을 파낸 장소는 초·중학교, 도서관, 요양병원, 아파트 등이 있는 도심 한복판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4차선 도로 바로 아래였다. 땅굴로 인한 지반 침하와 붕괴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이었다.
일당 중 기술자인 C씨와 관리책 D씨는 과거 한국석유공사에서 수십 년 동안 근무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현장이 주거시설이 밀집된 도심지역으로 4차선 도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자칫 지반침하, 붕괴 위험도 있었다”며 “현재 유관기관 협조로 땅굴은 모두 원상복구 된 상태”라고 밝혔다.
지난해 4월에도 통째로 빌린 모텔 지하실에서 땅굴을 파서 송유관 기름을 훔치려 했던 일당 전원이 대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검거됐다.
이번에 검거된 일당의 수법도 당시와 비슷했다.
범행에 가담한 일당은 총책인 50대 E씨와 자금책 2명, 기술자 F씨(60대), 작업자 등으로 역할을 나눠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2022년 5월 기술자 F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범행 모의를 시작했다. 일당은 모텔 지하 벽면을 부수고 송유관까지 가로 81㎝, 세로 78㎝ 크기로 땅굴을 팠다. 소음과 진동으로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주로 삽과 곡괭이로 작업했다. E씨 등이 땅굴을 판 지점은 국도 바로 아래였다.
하지만 이들은 송유관을 불과 30㎝ 앞두고 경찰에 적발되면서 범행에 실패했다. 국가정보원을 통해 관련 제보를 접수한 대전경찰청은 지난해 3월 3일 현장을 급습, 지하에서 땅굴을 파고 있던 작업자 4명과 총책 E씨 등 7명을 검거했다. 그해 4월에는 나머지 자금책 1명도 추가로 검거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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