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무제한 일하는 한국 사회, 바꿀 수 없을까
[이혜은]
지난 5월, 쿠팡에서 심야 배달을 하던 40대 택배 노동자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졌다. 사망원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되었다. 고인은 주 6일 근무로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하루 10시간 30분 근무했고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 지시와 관련하여 주고받은 메시지에 "개처럼 뛰고 있다"라고 답변한 내용이 보도되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야간노동이 건강을 갉아먹는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과로사로 표현되는 뇌심혈관계질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수면 건강의 악화,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소화기나 내분비계의 문제 등 여러 건강 문제가 서로 악순환을 그리며 정신과 육체가 점점 피폐해져 간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사고의 증가를 가져오고, 남들과 다른 생활로 인해 가정과 사회 생활에서도 어긋나게 된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나쁜 야간노동, 당연히 법으로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야간노동 규제
현재 우리나라 법에서 야간노동은 거의 규제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야간노동에 대한 언급은 야간노동에 대한 보상과 여성 및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제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 임금의 가산 :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이의 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한다.
- 보상 휴가 :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야간근로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휴가를 줄 수 있다.
- 야간노동의 제한 : 18세 이상 여성의 야간근로는 그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는 야간근로를 시키지 못한다 (예외 : 18세 미만자와 산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여성의 동의가 있는 경우, 임신 중의 여성이 명시적으로 청구하는 경우)
여성 및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야간노동 제한 규정조차 예외 조항으로 인해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는 규제이다. 그 외 야간노동과 관련된 제도로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는 특수건강진단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야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호 조치의 일환으로 수행된다.
▲ 꼭 필요한 경우라도, 야간노동에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 밤새 일하는 동서울 우편집중국. |
ⓒ 유청희 |
현 정부에서 작년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춰야 한다고 무척 강조했다. 실상은 과도한 노동시간 유연화의 확대로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는 전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개편안이라 구호가 무색했지만. 어쨌든 다른 나라의 노동시간제도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면 야간노동에 대해 규제가 이루어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의 규정을 정하고 있을까.
- 야간노동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 제2장에서 야간노동을 정하고 있다. 첫 번째 조항에서 야간노동의 원칙적인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야간근로를 요청할 경우 경제활동 또는 공익적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야간노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야간노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취지의 규정은 야간노동을 대하는 그 사회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핀란드의 노동시간법에서도 야간노동이 허용되는 경우를 14가지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기본적으로는 야간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야간노동이 허용되는 구체적인 업종이나 작업을 열거하기도 하고 교대조가 3개 이상일 경우(2개 조일 경우 새벽 1시까지만 허용)로 교대조 숫자를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24시간 맞교대나 주야맞교대는 핀란드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 야간노동 시간 및 횟수의 제한
1일 야간노동시간의 제한은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다. 대부분 8시간 전후 이내로 제한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하루 야간노동은 최대 10시간까지 가능한 것으로 정하고 있어 다소 길어 보이나 야간노동의 횟수나 야간노동 후 휴식시간 등을 더욱 엄격하게 규제한다. 16주의 기간 중 야간노동은 최대 36회까지 할 수 있다. 대략 월평균 9회 정도 가능한 것이다. 정기적으로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 (16주 기간 중 16회 이상)의 경우 (16주 기간의 평균) 주당 40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주간에 일하는 노동자의 최대 노동시간은 16주 평균 주당 48시간이므로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훨씬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이 35시간인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최대 노동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 주당 노동시간은 최대 40시간으로 엄격하다.
우리나라에서 2020-2021 근로환경조사 데이터를 이용하여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주간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2.5시간이었던 것에 반해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46.3시간, 그중에서도 고정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 평균 50.1시간으로 더 길었다(장태원, 2023). 더 힘들고 위험한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긴 시간 일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 야간노동 거절의 권리
프랑스의 노동법에서는 노동자가 야간노동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거나 차별적 조치를 할 수 없으며 해고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자녀의 양육이나 가족의 부양과 같은 긴급한 가정적 의무로 야간노동을 거절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노동자는 주간 근무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독일의 근로시간 법에서도 가정에서 돌봐야 할 12세 미만의 자녀가 있거나 돌봄을 심히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 노동자의 요구에 따라 주간 근무로 전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 규제는 전반적으로 느슨한데다 야간노동에 대해서 규제가 거의 없으니 야간노동의 폐해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높이고 건강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중심으로 야간노동 규제를 포함한 노동시간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이혜은 님은 한노보연 소장이고, 노동시간센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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