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 문장, 멜로디... 아, 훔치고 싶은 욕망이여
[윤일희 기자]
※아래 기사에는 <옐로페이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페이지는 잘 넘어갔다. 그래도 좀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을 빈번히 쓰지 말고 한 100페이지 즈음 줄였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옐로페이스>를 읽다 든 생각이다. 작가적 능력은 인정, 그럼에도 할 말만 딱 짧게 쓰고도 재미와 감동을 다 잡아내는 '클레어 키건'식 스타일은 참고할 만하다.
▲ <옐로페이스>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 R.F. 쿠앙의 소설이다. 책표지. |
ⓒ 문학사상 |
이를테면, 중국계 미국인 여성 작가 C 팸. 장이 미국 서부 골든 러시 시대에 황금 광산 노동자로 태평양을 건너 온 중국인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의 역사를 소설로 다룰 때, 그가 다루고자 하는 중국인 디아스포라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의 인종 정체성으로 이해되고 공감받는 경향이 있다. 이때 작가가 누리게 되는 마땅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인정은 그가 중국계라는 문화적 유산에 상당히 빚지게 되는 셈이다.
이때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작가적 성공을 거두게 하지만, <마이너필링즈>의 저자 캐시 박 홍의 비판처럼 "인종 정체성의 순수성을 가정, 인종 정체성을 지적 재산권으로 전락시킬"수도 있다. 유색 인종 작가로서 백인성을 탈 중심화하는 글쓰기에 무수히 도전하지만, 결국 백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는 선을 지킨 작품만이 출판계의 러브 콜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인 이민자의 후손인 정이삭이 부모의 디아스포라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미국 내 큰 호감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백인 여성이 중국계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소설을 쓴다면 소설의 진가를 평가하는 데 편견이 작용할 수 있다. 주인공과 디아스포라를 대상화하지 않는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정체성 논란은 발화자의 자격을 묻는 문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옐로페이스>는 소설에 이 논쟁을 개입시키면서, 백인 여성이 잘나가는 중국계 여성 친구의 초고를 훔쳐 대담하게도 재구성한 소설이 그의 주장처럼 그의 것이냐는 표절의 문제를 질문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빈번한 표절 논쟁
표절 논쟁은 동서를 막론하고 빈번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내게 가장 기억나는 논란은 '신경숙 표절 사건'이다. 당시 표절도 문제였지만, 그가 깨끗이 인정하고 한동안 숙려하면 됐을 사건을 소위 '문단 권력'이라 불리는 문단 내 카르텔이 그를 옹호하면서 문단과 출판계의 적폐가 고스란히 드러나 일파만파가 되었다.
이 뿐 아니라 이미상의 소설 <이중작가 초롱>이 세밀하게 다루듯, 서로의 경험과 대화가 도난당하듯 소설에 차용되기도 한다. 이런 사건은 실제로 얼마 전에도 일어나 떠들썩했고, <옐로페이스>에서도 재연된다.
소설의 주인공 백인 여성 주니퍼 헤이워드는 중국계 친구 아테나 리우의 소설 초고를 훔친다. 훔친 초고를 갈고닦아 출판계의 문을 두드리고 뜨거운 반응을 받는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러나 아테나는 지금껏 줄곧 누려왔던 대우였다. 자신을 대접하는 출판계의 태도가 공손할수록 주니퍼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필명마저 주니퍼 헤이워드에서 주니퍼 송으로 부르며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염색한다.
"이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는 내 것이 아닐지 몰라도, 이 소설을 부활시킨 사람, 거친 원석을 다듬어 다이아몬드로 만든 사람은 나였다"고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다만 초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그것도 초고의 주인이 유명을 달리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져왔다는 것은, 소설의 저작권이 누구의 것인가를 넘어선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탄생한 첫 소설의 반응은 SNS에서 첨예한 논쟁 거리가 되고 이러한 논쟁은 주니퍼에게 심대한 고통을 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이즈 마케팅으로 소설의 판매량을 증가시킨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일약 스타 덤에 올랐으나 이도 잠시, 차기 소설에 대한 재촉은 그를 첫 소설의 성공에 심취하도록 두지 않는다. 신간에 대한 압박감으로 아테나의 메모를 다시 기웃대고, 이에 영감을 받아 써낸 신간은 재차 표절 논란에 휩싸인다.
▲ 대중이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료사진). |
ⓒ hannahrodrigo on Unsplash |
두 권의 소설이 모두 친구 아테나의 유산이라는 것이 들통나고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주니퍼,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는 법인가. 그는 아테나가 팬덤에 오른 소설들이 타인의 삶을 통째로 표절했다는 진실을 알고 있다. 인기를 끌었던 한 소설은 그가 아테나를 믿고 고백한 강간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도둑질이었어.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사람들의 고통을 마음대로 갖다 썼어. 나 못지않게 훔쳤다고. 나한테서도 훔쳤고..."
주니퍼가 재기의 수단으로 비장하게 고안한 소재는 유사 자서전으로 아테나 죽이기 폭로가 될 예정이다.
단 한 번도 명품 소설을 써야 한다는 소망을 품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병적인 집착과 열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글쓰기가 자신의 정체성이고, 살아갈 이유이고, 세상의 전부라는 데서 한껏 비판하기가 망설여진다. 표창처럼 날아드는 세간의 비난을 맞고 피 흘리면서도, 세상이 원하는 것을 주고 살아남으려는 여성 작가들의 자기애적 글쓰기가 짠하다.
표절은 비난 받아 마땅한 범죄다. 하지만 표절의 경계를 정확히 구획 짓는 일은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 세상에 온전히 나만의 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의 지점에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인간 문명 모두는 언어로 매개되었고 인류는 그 강력한 자장 안에 있다. 나만의 유일한 언어가 없다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의식적 무의식적 표절로 미끄러지는 욕망을 다스리는 윤리적 글쓰기가 요구될 뿐이다. 게다가 지금 인류는 인간 뿐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가공할 표절 도구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시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택시 안 최상위층 노부인의 반전... 믿어지지 않았다
- 지방대 국문과의 기적... 항간에 떠돌던 말, 이상할 게 없다
- '계엄 준비설' 나올만한 이유 있다
-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 옳았나?" 답변 못한 심우정
- 꼭 가고 싶었던 차팔라 호수, 직접 보니 공포스러웠다
- 할머니와 손 잡고 본 임영웅 영화, 씁쓸함만 남았습니다
- "마지막이 뭐였더라?" 상식 파괴한 윤 대통령의 반말
- "뭐가 잘 돌아가요?"... 응급실 사태에 보수도 버럭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피의사실 공표, 검찰과 공수처의 차이는?
- '마약류 투약' 유아인 법정구속... "도주 우려·재범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