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국회 개원식 불참, 뭐가 문젠데?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책 없이 정글 속으로 들어가라니
민주당의 정치적 어깨 집단 생리
이재명‧레닌 사상 비교해볼 만하지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열린 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대다수 언론이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좌파 언론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우파 메이저 언론으로 지칭되는 일부 신문의 논조까지 ‘비판’을 거들고 나선 것은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게 한다(물론 개인적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제법 많이, 상당히 오랫동안 일간지 사설을 썼던 경험으로 말한다면 ‘이해할 측면’도 없지는 않다. 사회적 논란이 심한 사안, 국민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이 안전판일 수 있다. 양측이 함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데 한편의 태도나 주장만을 역성들 수는 없다는 합리성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옳음의 실천’이라고 여길 법도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데도 중정(中正: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곧고 바름)은 목 넘김이 좋은 당의정일 수 있다.
양비론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데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 둘 다 옳다거나 둘 다 그르다는 식의 논리)은 논란을 완화 혹은 종식할 수 있는 묘약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장기화·악화시키고 마는 독약이다.
조선 초의 명상(名相) 황희(黃喜)는 양시론의 전범(典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을 보여줬다. 두 여종이 다투었다. 황 정승이 각각 불러서 연유를 묻고 주장을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에게 “네가 옳다”는 답을 주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부인이 시비를 불분명하게 한다고 타박하자 “당신의 말도 옳소”라고 했다(버전이 여러 가지다). 아주 멋있는 해법이긴 하지만 이는 가정(家政)의 일면이었다. 국정(國政)에서 황 정승은 임금의 명이라도 아닌 것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맞섰다. 양시론, 양비론으로는 국정을 이끌 수가 없는 법이다.
“야당이 이렇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새 국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원식에 불참한 것 역시 도를 넘었다.”
어느 신문의 사설 한 대목이다. 또 다른 신문의 사설에는 이런 부분이 보인다.
“어떤 상황이든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대한 인정, 나아가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공자의 ‘군자(君子)정치’론을 듣는 기분이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군주가 인(仁)으로 신하와 백성을 이끌고, 조정이 의(義)와 예(禮)로서 그 뜻을 받들어 목민(牧民: 임금이나 원이 백성을 다스려 기름)하는 그런 체제·질서·가치와는 전혀 다른 ‘주권재민’의 원리 위에서 오늘날의 정치가 성립되어 작동하고 있다.
대책 없이 정글 속으로 들어가라니
우리는 대통령중심제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의 원조는 미국이다. 로마 공화정의 혼합정체와 존 로크, 몽테스키외 등의 권력 분립론에서 영감과 방법론을 배워 현실에 구현한 제도가 근대 대통령제다.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우리도 국가권력을 입법·사법·행정부가 나누어 보유하고 행사한다. 삼권은 분리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상호 개입을 배제한다. 이들 3권을 하나로 얽어매는 것이 헌법이다. 당연히 헌법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도 특정 정파의 일원이다.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정파적 중립의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정당인 이전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정을 이끈다. 그 권력의 정당성·적법성은 야당의 승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으로 확보된다. 이 점에서 대통령은 전 국민의 대표라는 지위와 위상을 갖는다고 하겠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불린다. 국회의원들은 그 속에서 국민대표의 지위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의원 각자가 ‘국민의 대표’라고 주장된다. 그렇지만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 국민의 대표라는 인식은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권리일 뿐 독자적으로 국회의 결정을 만들어내고 그걸 행사할 권한은 갖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정당은 국회를 움직여가는 실질적인 힘이다. 우리 국회는 30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지만, 그 운영과 의사결정을 실제로 좌우하는 것은 정당이다(이는 미국 헌법이 계획했던 것도 예상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보여주듯 정당 간(민주당·공화당)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렇지만 우리 정도는 아니다. 우리의 경우 거대정당이 국회를 장악, 입법권을 전횡하면서 경쟁 정당 출신인 대통령과 사생결단하는 정글 정치의 양상을 보인다.
민주당의 정치적 어깨 집단 생리
더불어민주당이 머릿수로 장악하고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그런 국회에 대해서까지 대통령이 국정 파트너로서의 예(禮)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 이 국회는 대통령의 경쟁상대일 뿐 아니라, 민주당의 행태로 보아, 대통령 몰아내기에 여념이 없는 전투 집단이다. 예는 쌍방향적인 교감과 교류의 통로이다. 이 이치를 외면하고 있는 쪽은 민주당이다.
이 당은 형사피의자·피고인인 당 대표를 법망(法網)에서 빼내고 27년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호위무사 정치, 방탄 정치를 강행하는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융단폭격식 특검 수사·탄핵소추로 대통령을 압박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힌 법안을 다시 발의·의결하고 그게 막히자 또 법안을 발의하며 힘자랑을 이어가는 정치적 어깨 집단의 생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당은 한동안 ‘대선 불복’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조심하는 빛이라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탄핵이 당면 목표라도 되는 양 떠들어 대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국회 법사위는 ‘대통령 탄핵 청원’을 핑계로 황당한 청문회를 강행했다. 주한 미 대사관 담장을 넘어 침입하고, 사제폭탄까지 터뜨렸던 시위꾼의 치기(稚氣)가 늘 정 법사위원장을 인도하는 인상이다.
지난달 14일 국회 법사위 ‘검사탄핵’ 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전현의 의원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살인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최근 일어난 국민권익위 간부 사망과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종결이 연관돼 있다면서 한 말이다. 법사위 위원들의 과도한 자료 제출 요구와 직간접적 압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데 그건 왜 말하지 않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당사자는 물론이고 민주당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 한 마디가 없다.
이재명·레닌 사상 비교해볼 만하지
윤 대통령은 이처럼 살인자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국회 개원식을 축하하러 갔어야 했을까? 정치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저런 난리를 피우는 정당의 독무대 행사에 가서 덕담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게 대통령의 도리라고 정말로 생각하는가? 대통령에게 신(神)이나 가질 수 있는 아량을 요구하려면 그만한 예우가 전제돼야 한다. 작년 10월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에 간 윤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치졸한 태도로 망신을 주려 안달했는지를 민주당이 잊었을 리 없다. 이번에 갔더라면 피켓 시위 정도가 아니라 “살인자”라는 고함을 듣기 십상(아마도)이었다. 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견제와 균형’의 상대인 국회에 가서 조롱을 자청해야 했다고 여기는지 설명해 주시라.
여론이 악화하는 것을 우려하던 민주당이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 발언을 빌미로 역공을 시도하고 있다. 강 의원은 2일 국방위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레닌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그 유사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또라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대통령을 살인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괜찮고 당 대표의 사상을 비교론적으로 검토한 것에 대해서는 콩 튀듯 팥 튀듯 하는 이런 대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조건 반사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있는 모습이라니!
국회의원 여러분, 당신들만의, 당신들만에 의한, 당신들만의 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주시면 좋겠네요. 특히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분들, 군사적·경제적 국가 안보의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이 절박한 시기에 당 대표 호위대, 전투대 역할이나 하고 있으셔야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세비를 비롯한 여러분의 유지 관리비용은 왜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게 합니까? 더 한심한 것이 여러분의 비겁함과 교활함입니다. 면책특권이 없어도 여러분은 국무위원이나 여타 증인들을 상대로 그처럼 무례하게 고함지르고 모욕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지도 못할 것이면 제발 이성 좀 찾으세요. 정말로 신념에 찬 말이라면 의사당 밖으로 나와서 국민을 상대로 하시든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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