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질감의 정물화…낯설지만 본질이 또렷해진다 [더 하이엔드]

이소진, 윤경희 2024. 9.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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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① 김시안 작가

「 지난 2022년부터 9월은 ‘예술의 달’이 되었습니다. 국내 대표 아트 페어 키아프와 세계적으로 가장 ‘힙’하다는 아트 페어 프리즈가 함께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막이 열리는 오늘(4일)부터 서울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겠죠.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도 증폭됩니다.
더 하이엔드가 올해도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들 중 주목할만한 이들을 선정, 묵묵히 예술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아티스트들을 다시 한번 조명합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재구성해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 합니다. 캔버스 속 모든 것은 제게 이상적인 ‘무(無)의 상태’죠.”

김시안 작가는 매끄러운 정물화를 그린다. 일상 속 정물들은 물감을 분사하는 에어 브러시 작업을 통해 본래 지닌 질감 대신 플라스틱처럼 미끄러운 물체가 된다. 여기에 젯소·모래처럼 거친 질감이 드러나는 소재를 덧입혀 실제로 작품을 보면 시각적인 대비가 느껴진다. 디지털 툴로 변형한 형태와 질감은 익숙한 사물을 낯설고 신비롭게 드러낸다. 현실의 복잡한 모습을 지워가며 만든 작가만의 유토피아다.


익숙한 듯 낯선 물건들


말과 새·풀 때로는 물줄기를 뿜는 분수까지, 그의 반짝이는 회화는 가볍고 입체적이다. 말끔한 표현을 위해 작가는 에어 브러시 작업을 통해 의도적으로 붓질이 느껴지지 않는 ‘납작한’ 형상의 층을 쌓는다.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즉흥적으로 표현이 가능한 에어 브러시는 작가에게 가장 적합한 매체였다. 때로는 작품 위로 마감재인 젯소나 모래를 덧붙인다. 편평한 화면은 질감을 통해 현실 공간으로 한 발짝 들어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작업을 물리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표면적 질감에서 3차원의 조각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을 발전시키는 한편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하고 있다.
김시안, 정물301, 2024, acrylic on canvas, 117x91cm [사진 아트사이드갤러리]

Q : 사물의 질감을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표현한다.
“사물이 지닌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그 맥락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해석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처럼 매끄러운 질감으로 만드는 방식은 모든 부가적인 요소를 배제해 오직 본질만 집중하고자 선택한 것이다. 사회에서 주입된 맥락을 사라지게 한 형태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재구성된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고 각자만의 생각을 느끼면 좋겠다.”

Q : 십장생이나 유물처럼 보이는 오브제들을 그린다.
“오래된 물건들은 물리적인 시간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고, 바라볼수록 다양한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유물에 담긴 실제 이야기나 역사에 몰입하진 않는다. 작품을 통해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도화선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시안, 정물328, 2024, acrylic on canvas, 112x162cm [사진 아트사이드갤러리]


한국과 중국, 같은 듯 다른 문화를 경험하다


김시안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평소 즐겨 그리는 새·물고기는 아시아 문화권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작가는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부터 두 나라 사이에 조금씩 다른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시아라는 뭉툭한 지역적 분류 안에서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하는 지점은 작가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같은 이미지를 두고도 서양에서 동양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동양 문화 안에서 서로를 인지하는 시선이 교차하는 것이다.

Q : 한국과 중국을 오간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주는 바가 있다면.

“미술을 공부할 때는 서양화를 중심으로 배웠다. 그런데 결국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역과 문화의 뿌리가 중요하더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고 체화하는 것도 지금 사는 곳이 영향을 준다. 내 작업은 서양과 동양의 혼재가 아닌 ‘서로 다른 두 동양의 혼재’라는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인접해 있지만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지닌 두 문화권을 동시에 경험한 점이 작업에도 반영되었다. 사물을 볼 때도 두 가지 시선으로 보게 된다. 십장생을 보면 무언가를 염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금방 알아채지만, 각자 세세한 의미는 다른 것처럼. 그런 미세한 시각 차이를 인지하고 빈틈을 찾아 들어가는 지점이 작업에 도움이 된다.”

2024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이는 작품 (아트사이드갤러리). 김시안, 정물332, 2024, acrylic on canvas, 145x97cm [사진 아트사이드갤러리]

Q :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이번 출품작들의 주제는 ‘미래’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우리가 갈망하는 세계이자 비현실적인 세계다. 혹은 도피하는 태도이거나. 화면 속 세상은 무중력과 공허함의 별이 빛나는 곳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짐을 준비하고, 옷을 다림질하고, 날개를 달고 여행을 떠나려 하지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 조금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다.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만약 실제로 이런 미래에 가게 된다면 ‘자유자락(自娛自樂, 혼자 즐긴다)’의 태도로 살고 싶다.”

Q : 최근의 관심사는.
“혼자서도 ‘잘’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가 지금 작업하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 작가 김시안은…

「 1992년 출생. 중국 칭화대학미술학원 회화과 판화과 졸업, 중앙미술학원 판화과 석사 졸업.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2024), 대만 갤러리OVO(2023), 서울 갤러리인HQ(2021・2023)에서 개인전을 얼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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