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에서 만나는 루이나의 지속가능한 예술 [더 하이엔드]

이소진 2024. 9.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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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루이나가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2024 프리즈 서울에서 예술 프로젝트 ‘카르트 블랑쉬 2024’를 공개한다. ‘자연과의 대화’를 주제로 자연과 교감하는 작품은 땅에서 길러 물과 빛으로 빚어내는 샴페인의 본질과 닮았다.

물질의 성찰을 통해 생명의 기원을 찾는 소바주 작가의 작품.


“루이나는 300년 역사의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로서 땅 그리고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유서 깊은 샴페인 브랜드인 메종 루이나의 프레데릭 뒤포 대표는 자연을 향한 유대감을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혜안을 지닌 예술가야말로 다양한 사람을 참여하게 하는 강력한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

자연의 소리를 탐구하는 소바주의 작품과 조우한 루이나 블랑 드 블랑. 사진 루이나


1729년 최초의 샴페인 하우스로 설립된 루이나는 지식과 철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꿨던 계몽주의 시대와 맞물려 탄생했다. 우아하고, 단순하며 아로마틱한 신선함이 돋보이는 포도의 빛과 맛은 살롱에 모인 지식인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했을 것이다. 예술가들과 함께 세상에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태도 역시 이들의 DNA에 각인된 운명이다. 아르누보 미술의 대표 격인 알폰스 무하와의 접점도 영향이 있다. 1896년 루이나는 무하에게 광고 디자인을 의뢰해 파리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가 있다. 예술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사람들을 일깨우고 연결한다는 사실은 루이나의 신념이 됐다.

루이나의 카르트 블랑쉬 2024에 참여한 토모코 소바주 작가. 룩셈부르크 무담 현대미술관에서 퍼포먼스 중인 장면.

참여하는 예술, 자연과의 대화


메종 루이나는 2008년부터 매년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전권을 위임한다’는 뜻처럼 예술가들이 창의적인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해학 넘치는 회화 작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슈리글리를 포함해 예페 하인, 에바 조스핀 등 현대 미술가들이 최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매년 한 작가를 선정한 것과 달리, 올해는 기후 위기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자연과의 대화’를 주제로 다섯 개 대륙 작가들을 초대했다. 안드레아 바워스(미국), 마커스 코츠(영국), 티스 비어스테커(네덜란드), 파스칼 마르틴 타유(카메룬), 엔리케 올리베이라(브라질), 토모코 소바주(일본)으로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들은 메종 루이나의 본거지인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 방문해 자연과의 교감은 물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키며 작업의 밑그림을 그려갔다.

물질의 성찰을 통해 생명의 기원을 찾는 소바주 작가의 작품. 사진 루이나


메종 루이나는 생태 균형을 중요시한 선조들의 가르침에 따라 최고의 샤르도네를 수확해 엄정한 공정으로 샴페인을 만든다. 자연을 관찰하고, 듣고, 이해하는 시간이야말로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잇따른 기후변화는 농장 생태계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큰 사건이 됐다. 이들은 더는 자연을 주제 삼아 다가가야 할 것 이 아니라 대화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의 대화’라는 주제가 여기서 기인한다.

루이나가 프리즈서울에서 선보이는 '자연과의 대화' 캠페인 이미지. 사진 루이나


6명의 작가가 만든 결과물은 아트페어에서 공개한다. 루이나는 매년 프리즈·아트바젤을 포함, 수십 개의 주요 아트페어에 참가하는데 이같이 큰 국제 무대에 카르트 블랑쉬를 선보이려는 것. 올해 행사만 16개로, 2월 열린 아트 두바이를 시작으로 연말 아트바젤 마이애미까지 페어 당 1~2명 작가의 작품을 나누어 소개한다. 모든 대장정을 마친 작품들은 프랑스 북동부 도시, 랭스에 있는 ‘예술가의 정원’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기포가 올라오며 내는 태초의 소리를 찾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오브제를 물속에 넣는다.

태초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기포 소리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사운드 아티스트, 토모코 소바주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소바주는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고 지금은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그는 물·도자기·수중 앰프·전자기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악기를 통해 실험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명성을 얻었다. 도자기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고 표면에 진동을 가하는데 수중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자연음과 전자음 사이에서 독특한 공명을 만들어 낸다. 물속에서 뽀글거리며 올라오는 공기 방울도 그에겐 특별하다. 기포가 올라오며 내는 태초의 소리를 찾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오브제를 물속에 넣는다. 15년 동안 기포의 음향 효과를 연구한 작가에게 루이나 블랑 드 블랑의 조밀하고 투명한 기포는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퍼포먼스 중인 토모코 소바주 작가. 사진 루이나
물속에서 공기를 뿜어 소리를 내는 새로운 개념의 악기 ‘불로크록(Buloklok)’.

그는 이번 페어에서 기존 작품을 발전시킨 ‘인투 더 세르펜틴 벨(Into The Serpentine Bells)’ 를 선보인다. 고대 물시계인 클렙시드라(clepsydra)부터 해상 암석까지 등장하는 이 가변적 설치물은 물을 통해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시간 개념을 연결한다. 인간의 몸은 본능적으로 수중 속 시간 감각을 지니고 태어난다. 양수 속에서 들린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통해 일종의 시계를 경험하는 것. 작가는 “진동은 생명체의 표현”이라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물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소리는 깊은 사유의 세계로 초대한다.

메종 루이나와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자연과의 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용하는 매체는 다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곳을 향한다. 인간과 자연은 결국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한다는 것. 예술이 지닌 순수한 에너지가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행동하는 힘을 보태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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