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여야 대표 회담의 한계

전석운 2024. 9. 4. 00: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동훈·이재명 대표 회담
1년 전 체포동의안 격돌
떠올리면 흥미로운 반전

회담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쳐
지구당 부활은 민생과 무관
계엄령 발언으로 다시 경색

대통령 궁지로 모는 의제로는
여야 대표 회담 성공 못 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여야 대표회담을 갖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1년 전만 해도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관철하려 했다. 이 대표는 이에 맞서 24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이고도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이 11년 만에 열린 여야 대표회담의 파트너로 국회에서 다시 만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지난 1일 국회 오픈홀에 등장한 두 사람은 취재진 앞에서 화기애애한 포즈를 취했다. 한 대표는 이 대표와 악수를 나눈 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 대표 옆에 섰다. 이 대표는 자신을 구속시키려 했던 한 대표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겠지만 한 대표에게 발언 순서를 양보하며 다수당 대표로서의 여유를 보였다. 양당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8개항의 공동발표문도 내놨다. 외견상 두 사람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러나 여야 대표 회담 치고는 성과가 초라했다. 만남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합의문’이 아닌 ‘발표문’이라는 형식에서 알 수 있듯 별 알맹이가 없었다. 양당의 공통 공약을 추진하는 민생 공약 협의기구 설립을 성과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원내대표가 있고, 국회 상임위가 있는데 굳이 별도의 기구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과거에 정치개혁 차원에서 폐지된 지구당을 부활시키기로 합의했는데 이것이 민생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 대표가 주장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이 대표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이 대표가 요구한 채 상병 특검법안은 한 대표가 호응하지 않았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혼란은 아예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다만, 추석 연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을 정부에 당부하는 수준의 내용만 발표문에 담았다.

이번 회담을 보면서 여야 대표 회담이 왜 11년 동안 열리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여야가 합의할 수 없는 것들을 고집하며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다. 2013년 회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와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가 회담을 가졌지만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때도 야당은 여권을 겨냥한 특검을 주장했고, 여당은 난색을 표했다. 결국 두 사람은 빈손으로 회담장을 떠났다.

여야 대표 회담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은 대통령을 공격하는 의제 설정이다. 비록 한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63%의 지지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특검법안을 야당 대표와 선뜻 합의하기는 어렵다. 이 대표는 한 대표의 제3자 추천 특검 아이디어에 반색했지만 한 대표가 ‘내부 총질러’로 비판받을 상황을 무릅쓰고 특검에 합의하긴 쉽지 않다. 역대 국민의힘 지도부 중에 윤 대통령과 불화를 겪고도 살아남은 정치인은 없었다. 전당대회를 거친 당 대표도 두 명이나 중도하차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 윤리위 징계를 받아 물러났고, 김기현 전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는 형식으로 자리를 내놨다. 당 대표 권한대행과 비대위원장을 합치면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만 지도부가 10차례 교체됐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이 대표가 한 대표에게 채 상병 특검을 종용한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했다. 회담장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각시킨 한 대표의 발언도 아쉬웠다. 무언가를 합의하기 위한 회담이었다면 굳이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여야 대표 회담의 성과를 희석시킨 것은 이 대표의 ‘계엄령 준비 의혹’ 발언이다.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한 뒤 이의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하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대표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터무니없는 거짓 정치 공세”라며 반발했다. 한 대표도 뒤늦게 이 대표의 발언은 “국기문란에 해당한다”고 비난하면서 여야 대표 회담으로 조성된 협치 분위기는 이틀 만에 실종됐다.

이러려고 대표 회담을 열었는지 실망스럽다. 차기 대권 주자로 주목받는 두 사람이 꼬인 정국 현안을 풀고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하고 회담을 열었는지 모르지만 기대에 영 미치지 못했다. 만일 두 사람이 또 회담을 한다면 윤 대통령과 무관한 의제로 만나기 바란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