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행정의 군살 빼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의 차기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강한 어조로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비난했다. 심각하지 않은(unserious) 사람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에 보내게 되면 미국은 극도로 심각한(serious)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후 여론 조사에서 해리스 후보가 선전하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직도 40%를 넘는 높은 지지율로 해리스와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어 선거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해리스가 격렬하게 비판하듯, 신중하지 못하고 즉흥적이며 현재도 재판 중인 트럼프가 아직도 많은 미국인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 이단아로서 전통적인 정치 문법을 무시하고 국정을 운영해온 트럼프에 지지자들은 왜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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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이후 쌓인 행정규제 군살
커지는 사회적 비용에 불만 쌓여
규제 반발 포퓰리스트 출현 우려
민주성과 효율성 균형 발전 필요
」
1986년 6월 7일 뉴욕타임스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영화 장면에도 자주 나오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가 망가져서 이를 수리해야 하는데, 당시 뉴욕시는 6년 동안 1300만 달러를 들여서 보수 작업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미완성 상태였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코크 뉴욕시장에게 300만 달러만 주면 자신이 6개월 내에 공사를 마무리 짓겠다고 제안했다. 만약 공사비가 더 들면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코크 시장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공사는 5개월 만인 10월 28일에 계약보다 75만 달러를 절약해서 완공되었다. 그 젊은 부동산 개발업자가 바로 트럼프였다.
트럼프가 당시 내건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이스링크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게 할 텐데, 뉴욕시 정부가 어떤 법률이나 규정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정부 공사임에도 입찰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공사업체를 활용했다. 정부 공사에 당연히 수반되는 환경영향 평가 등 모든 평가도 생략하고, 제빙시설의 에너지 등급 등 모든 행정 규제를 무시한 채 공사를 진행했다. 뉴욕시민들은 환호했다. 6년 만에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를 다시 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행정학의 대표적 교과서인 제임스 윌슨의 『관료제(Bureaucracy)』에 잘 소개되어 있다. 그 책에는 행정에서 형평성, 공정성, 안정성, 투명성, 책무성 등이 강조되는 바람에 정부는 공사 해머 하나도 435달러에 사고 커피 주전자 하나도 3000달러에 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트럼프의 인기는 이런 국가 행정의 군살빼기가 큰 몫을 한다.
행정은 민주성과 효율성 두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마치 새가 양 날개로 날듯이 어느 하나도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우리도 민주화 이후 민주성이 크게 강조되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안전을 강조하고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많은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동안 효율성만 강조해왔던 산업화시대를 넘어 민주성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발전이다.
하지만 민주성만 강조하다가 차곡차곡 덧입혀진 행정규제의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민주성에 대해 국민 모두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불할 의사(willingness to pay)’가 진정 있는지 물어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지불하는 것이 아니니까 민주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정부의 정책은 세금이건 시간이건, 국가경쟁력 차원이건 간접적으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최근 오세훈 시장이 필리핀 가사도우미 임금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외국인 차등임금제를 주장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도 산업공단 내 중소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한 사업장에서 그들의 임금만 올려주는 셈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차별금지의 민주성과 사회적 비용의 효율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정책을 일방적으로 모두에게 적용할 때 이를 모아보면 국가 전체의 사회적 비용은 급증한다. 포항지진 후 전국 모든 건축공사에 지반 검사를 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검사비용이 추가로 들게 될 뿐 아니라, 검사 기관이 두 곳밖에 없어 모든 착공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려대 총장으로서 “우리 학교는 안전한 암석 지반인 안암동(安岩洞)에 있는데도 검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민주화 이후 차곡차곡 쌓여온 규제는 이렇게 사회적 비용으로 다가온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공무원 숫자는 13만 명 이상 증가하여 전 국민의 2.3%가 공무원이 되었다. 아직 우리 공무원은 국민을 도와주는 서비스의 관점보다 국민을 감시하는 규제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공무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규제는 늘어나고 우리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나친 민주성과 규제의 반작용으로 극단적 포퓰리스트의 출현 가능성이 두렵다. 행정의 민주성과 효율성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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