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때 춤추던 공무원들은 행복했을까
'민망한 일' 억지로 하게 돼도
하루는 이미 바쁘게 돌아간다
십여 년 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일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있었고, 무엇보다 비정규직이었던 터라 생활의 터전을 완전히 옮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일 년에 100번 이상 고속철을 타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에 딱히 취미가 없었던 나로서는 대단히 생경한 경험이었다.
매주 600㎞ 이상을 철도로 주파하는 삶은 다소 고됐으나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신문물을 경험하는 기이한 설렘이 있었다고 할까. 월요일 아침 6시20분 서울역에서 탄 기차는 바람을 가르며 맹렬히 달려 나를 지방의 역에 내려놓는다. 거기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다 보면, 9시도 되기 전 내 몸은 사무실에 고이 배달돼 있다. 어째 출근이 아니라 퇴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지만, 집의 침대에서 300㎞ 떨어진 직장의 하루는 이미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다만 중간중간의 연결 지점을 놓친다면, 예를 들어 서울역에 제때 도착하는 데 실패했다면, 혹은 기차에서 깜박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쳤다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직장의 월요일 오전이란 보통 밀린 업무와 회의, 전화가 밀어닥치는 시간이 아닌가. 실수를 하나 하면 최소한 두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게 되고,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졸다가…” 하는 식의 궁색한 변명을 열 번 이상 해야 한다. 실제로 두어 번 사고를 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는 한동안 기차에서 눈을 붙이지 못했다.
토끼처럼 빨간 눈이 돼 바라보던 객차의 모니터에는 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홍보 영상들이 끊임없이 재생되곤 했다. 오늘날 SNS 광고처럼 정밀한 ‘맞춤형 타기팅’이 가능하지 않던 시절, 기차를 타는 이들이야말로 잠재적인 여행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다음 역에서 그냥 내려버리면 어떨까, 저 화면 속 청명하고 수려한 계곡에 앉아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하지만 곧 산통을 깨는 순간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영상의 말미에 공무원들이 갑자기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럿이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어설픈 춤사위를 벌이는 그들을 보면 왠지 좀 서글퍼져서, 나는 일어나려던 몸을 좌석에 다시 파묻는다. 아마 춤을 추는 것이 자신의 업무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저들은 왜 저기서 저렇게 춤을 추고 있을까. 나는 어쩌다 이 새벽에 직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밥벌이의 고독함이 물씬 느껴지는 그들의 춤은 좋게 말해 아마추어리즘의 순수한 발현, 나쁘게는 20세기 초반에 유행하던 플래시몹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졌다.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짧은 시간 동안 약속된 행동을 하고 다시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이 플래시몹 놀이의 유행은 뜨거웠다. 대도시 군중 속에서 갑자기 100여명이 춤을 추거나, 베개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관현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처음 가지게 된 인류의 철 지난 장난이라고나 할까.
이런 거 물어보는 건 반칙이지만, 행복하신가요. 나는 영상 속에서 춤을 추는 공무원들에게 묻곤 했다. 회사에서 ‘힘든 일’보다 ‘민망한 일’이 더 참기 힘든 법인데. 그러면 그들은 뻣뻣한 춤사위로 내게 대답하는 듯했다. 그런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도 기차 안에서 공무원들의 춤을 마주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온갖 지자체들이 경쟁하는 유튜브 속 공무원들을 보면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혹시 이것이 오늘날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플래시몹 댄스는 아닐까. 기차 속 영상과 달리 조회수와 팔로워 숫자가 투명하게 공개돼 더 민망한 그런 춤은 아닐까. 직접 웹드라마를 찍거나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행복할까. 억누르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중일까.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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