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실손보험이 문제"…'상급병원 쇼핑'하는 감기환자 막는 법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큰 병원 가기가 매우 쉬운 나라이다. 상급종합병원에 예약해 놓고 동네의원 가서 진료의뢰서를 뗀다. 이 의뢰서가 큰 병원에 덜 가게 하는 문턱 역할을 하는 장치인데, 아무런 역할을 못 한다. 서울대·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4~5곳을 다니는 환자도 있다. 환자나 가족이 병원을 고르고, 의사를 선택한다.
상급종합병원에 가기 쉬우니 환자가 몰리고, 몰리니 대기 기간이 길다. 빅5 병원에는 하루 1만여명 안팎의 외래환자가 찾는다. 응급실도 마찬가지로 경증환자가 쉽게 간다. 일반적으로 동네의원은 1차, 중소병원과 종합병원은 2차, 상급종합병원은 3차 병원으로 분류한다. 단계적으로 진료받게 하기 위해 이런 단계를 뒀다. 선진국에서는 단계를 지킨다. 영국 같은 나라는 환자가 1차 의사(주치의 격의 일반의사,GP)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윗 단계는 그렇지 않다. 환자가 맘대로 고르지 못한다. 다만 민간병원에 빨리 가려면 돈을 다 내야 하고 이를 위한 별도 보험에 들기도 한다.
상급병원 구조조정 착수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중증 환자 중심, 전문의 중심의 3차 병원 역할에 충실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동선을 바꾸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 시범사업'을 이달에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상급병원이 2차 병원 10곳(진료협력병원) 이상과 짝을 지어 환자를 주고받는다. 환자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2차 병원이 상급병원에 환자를 의뢰(전문의뢰제)한다. 2차 병원이 웬만한 환자를 진료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는 '파트너 상급병원'으로 보내게 된다. 이렇게 하면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패스트 트랙' 진료이다. 하늘의 별 따기인 상급병원의 유명 의사 진료 예약이 크게 빨라진다. 환자가 이 시범사업에 등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개특위는 앞으로 이번 시범사업 모델을 전국 병원으로 확산하겠다고 한다.
2→3차병원 의뢰만 미적용
지금처럼 1-2-3차 단계를 밟지 않을 경우는? 의개특위는 '재난 상황'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2차병원의 의뢰서가 없으면 진료비를 전액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3~30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의견 수렴을 마쳤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심각 경보 때 복지부 장관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요양급여의 절차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전액 부담의 근거 조항이다. 응급·분만·산정특례질환(암·심장·뇌 질환 등)은 예외를 적용한다.
지금은 전공의 이탈로 인해 보건의료 위기 심각 단계이다. 개정안에 부합한다. 다만 '전액 부담'을 바로 시행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근거조항을 만든 것일 뿐 언제, 어떻게 시행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난 상황이란 지금 같은 의료 위기나 코로나 19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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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보법 규칙 개정안 곧 시행
지금의 의료재난 적용 가능
정부 "시기·방법 아직 미정"
전문가 "아예 못가게 막아야"
」
정부는 이번에 응급실 본인부담률을 크게 높였다. 경증환자가 전국 44개의 권역응급센터나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에 가면 진료비의 90%(지금은 50~60%)를 내야 한다. 비응급환자가 권역응급센터나 이보다 작은 126개의 지역응급의료센터에 갈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증환자는 38도 이상 열이 나는 장염, 복통 동반 요로감염, 폐렴, 척추통 등을, 비응급은 감기·두통·장염·설사·열상(상처) 등을 말한다. 이달 중 시행한다.
지금도 본인부담률이 일반 기준보다 높은 제도가 있다. 105개 경증질환 환자가 상급병원에 가면 진료비를 전액 다 내야 한다. 약값도 50%(원래 30%)를 낸다. 감기·만성비염·노년백내장·결막염·당뇨병·대상포진 등이다. 과연 진료비를 왕창 올리는 게 상급병원으로 가는 환자를 줄일 수 있을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전체 진료비가 많이 들지않은 데다 실손보험이란 괴물이 있어 진료비를 올리는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다. "왜 내가 경증이냐"라는 반발을 사기도 한다. 이달 시행하는 응급실 경증환자 90% 부담 정책도 당분간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만 제재할 것"
상급종합병원에 중등증(경증과 중증 사이)이나 경증 환자가 몰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환자가 병원과 의사를 고르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담금 증액의 효과를 의심한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외국은 환자가 의료기관과 의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은 환자의 선택이 워낙 익숙한 나라이다. 게다가 민간병원이 90%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환자 부담금을 올려 선택을 제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는 "돈을 올려도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는 문제 되지 않는다. 경제적 약자만 제재대상이 될 것이다. 실손보험을 개혁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남은경 경실련 국장은 "비용을 올리는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실손보험 1,2세대 가입자는 본인부담금을 100% 보장하고, 이걸 바꿀 수 없어 비용 올리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 대표와 남 국장은 "차라리 경증환자의 상급병원 방문 자체를 막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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