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시카고가 알려준 품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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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현장 취재를 간 미국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는 수많은 연사가 연설의 정수를 선보인 축제였다.
"말 잘한다"는 평가가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퇴색하기 쉬운 시대지만 여전히 정치에서 말이 갖는 힘, 영혼을 담은 연설이 주는 영감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희망을 말하는 미국 정치인의 연설에 투표권이 없는 이방인 기자도 뭉클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찾아 천천히 들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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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현장 취재를 간 미국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는 수많은 연사가 연설의 정수를 선보인 축제였다. 4일 내내 쏟아진 연설은 각각의 개성으로 시카고의 밤을 빛냈다. “말 잘한다”는 평가가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퇴색하기 쉬운 시대지만 여전히 정치에서 말이 갖는 힘, 영혼을 담은 연설이 주는 영감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희망을 말하는 미국 정치인의 연설에 투표권이 없는 이방인 기자도 뭉클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여러 연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 중 하나는 ‘품위(decency)’였다. 전당대회라는 지극히 당파적인 행사에서도 연사들은 민주당원의 단결을 넘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과 대화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분열을 통한 통치가 아닌 ‘민주적 다수를 만드는 정치’를 강조했다. 오바마는 “정치가 너무 양극화돼 있어서 우리는 타인이 모든 논쟁거리에서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최악을 너무 쉽게 단정한다”며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꾸짖고, 모욕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가끔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그분들이 나쁜 사람이라 단정하지 않는다”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들은 시간이 필요하고 어쩌면 격려도 필요하다”고 했다. 오바마는 상대 후보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 객석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야유가 아니라 투표를 하자”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든 이웃과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사람들을 만날 것을 촉구한다”며 “상대방이 여러분을 존중하길 바라는 것처럼 여러분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 달라”고 했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상대 정당,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적으로 돌리며 악마화하지 않았다.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들은 민주당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다웠다. 민주당이 상대하는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가. 미국 역사상 조롱과 막말에 가장 능한 정치인일 것이다. 그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막말을 뱉어 왔다. 이번에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적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산주의자라며 매번 ‘해리스 동지(comrade)’라고 칭한다. 해리스가 성적 거래로 커리어를 쌓은 것처럼 시사하는 무책임한 SNS 글까지 공유했다. 이런 트럼프를 상대하면서도 민주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꺾어놓자고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막말을 핑계로 자신들의 막말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다. “상대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간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그들은 스스로 품위를 선택했다.
한국에서는 상대를 더 아프게 후벼 파고 결국은 무릎 꿇리는 것에 특화된 정치인이 지지층의 열광을 먹으며 인기를 구가한다. 상대가 저급하게 가면 한 발 더 저급하게 간다. 선거를 통해 나쁜 정치인이 사라진 것 같다 싶으면 어디선가 더 나쁜 정치인이 등장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찾아 천천히 들어보길 권한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0대인 피터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은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정치는 추악하고 짓밟으며 모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최상의 정치는 힘을 실어주고 고양하며 심지어 영혼을 빚는 기술(soul craft)일 수 있다.” 최상의 정치는 못 하더라도 최악의 정치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임성수 워싱턴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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