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의 퍼스펙티브] 주택대출 옥죄기 한계…싱가포르식 자가보유 촉진책 펴자

2024. 9. 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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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불패 만드는 똘똘한 한 채 현상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전국에서 미분양이 급증하고 침체일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값은 유독 서울, 수도권만 상승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3월 넷째 주 0.01% 상승을 시작으로 8월 둘째 주에는 0.32%로 5년 11개월 만에 최고 오름세를 보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셋값 밑으로 집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역전세난이 있었고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들과 전세 사기범들로 전국이 시끄러웠는데 격세지감이다. 당시 정부는 시장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전세 반환보증금 대출 등 여러 정책으로 침체의 깊은 골을 메웠다. 그런데 너무나 짧은 시간에 시장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 평생 내집 못 산다는 불안감 방치하면 분노로 비화
고가주택 규제해도 서민·중산층 내집 마련 지원해야
광역 거점을 수도권 대체재로 키울 균형개발 절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올 11월 준공을 앞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의 모습. 황의영 기자

전국의 모든 자금이 서울 아파트를 향해 몰려들고 있다. 17개 시도 중 집 한 채만 가져야 한다면, 그 한 채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탓이다.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보다는 일자리와 자본이 집중된 서울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가 서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강남 불패가 아닌 서울, 수도권 불패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똘똘한 한 채’ 전략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노후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 되어 버렸다. 전 정부가 물려준 반갑지 않은 ‘규제의 유산’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치워버리지 못한 탓이다.

다만 아직은 비이성적 과열 상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비이성적 과열이란 아프리카 초원에서 임팔라 한 마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뒤따라 무리의 모든 임팔라가 뛰어 내달리는 것처럼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시장 광풍을 말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제3차 장기주거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췄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광풍이 확산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는 조치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강수를 뒀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대출도 규제했다. 조건부 전세대출은 중지됐고, 그간 미뤄뒀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이달부터 시행됐다.

대출 규제로 현금 부자 유리
이런 대출 옥죄기로 단기적 효과는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고 부작용이 오히려 크다는 것이다. 첫째, 주택매입 경쟁에서의 공정성 훼손이다. 대출 규제는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현금을 보유한 사람을 유리하게 만든다. 물려받은 자산이 없는 사람, 부자 부모를 두지 못한 사람들은 내 집 마련 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이 있다.

김경진 기자

둘째, 정책의 본질을 훼손하여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한다. 시장 안정화 정책의 목표는 서민 주거 안정인데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주거 안정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각인된다. 임대주택은 자기 집으로 옮겨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어야 하는데, 징검다리가 사라진다고 느끼는 순간 임대주택에 갇힐 것이라는 불안감은 분노로 진화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2021년 12월 90%였던 LTV를 2022년 9월 85%로 강화하고, 지난달 말에는 80%에서 75%로 낮췄다. 고가주택 거래가 과열된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규제지만, 내 집 마련에 지장이 없도록 보조금도 함께 올렸다.

싱가포르, 주택매입보조금 지급
싱가포르에서 부부 합산 연봉이 6000만원인 가구가 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한다고 하자. 지난달까지는 80%인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이나 민간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만약 그 아파트가 신축이 아니라 구축 아파트라면 나머지 자금의 대부분도 싱가포르 국민연금인 중앙적립기금(CPF : Central Provident Fund)에서 저리로 조달할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적립했는지와 월 소득에 따라 최대 8000만원까지다. 신축 아파트라면 주택매입보조금이 있다. 4600만원 정도를 주택매입보조금(EHG : Enhanced CPF Housing Grant)으로 지원받을 수 있고, 부모와 함께 거주하면 300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부부가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최종 금액은 2400만원이다.

김경진 기자

이달부터는 LTV가 75%로 낮아져 3억7500만원만 대출이 가능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보조금도 6650만원으로 올렸다. 따라서 부모 거주 보조금 3000만원을 더하면 부부가 자력으로 마련해야 하는 돈은 2850만원이다. 전과 비교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다.

이는 시장 안정화 정책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장 과열을 선도하는 것은 고가주택이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중저가 주택에 대해서는 LTV 규제를 피해갈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열어준다.

한국은 어떠한가. 규제 지역과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다른 복잡한 LTV에 DSR 규제까지 더해지면 실제 집값의 50% 이상 대출 받기가 어렵다. 청년층일수록 나머지 돈을 구하기 쉽지 않다. 싱가포르에서는 국가와 국민연금이 청년들의 ‘현금부자 부모’가 되어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데 말이다.

흔히 싱가포르의 임대주택 정책을 벤치마킹하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라 불리는 리콴유가 1960년대 당시부터 세운 목표, 즉 모든 국민이 자신의 집을 소유하여 가족과 함께 삶을 유지하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자가 보유 촉진 정책’이다.

자가 소유가 주거 안정 수준 높여
물론 싱가포르 주택매입 보조금은 자격이 제한되어 있다. 한국의 청약 자격과 유사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소득 기준에 따라 보조금을 수령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다르고, 금액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집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싱가포르 정부는 그 길을 열어 준다는 점이다. 심지어 주거 상향을 위한 두 번째 집, 즉 더 넓고 좋은 새집을 매입해 이사할 때도 보조금은 지급된다. 자기 주택에 거주하는 동안 전·월세 상승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주거 안정으로는 자기 집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속세도 양도세도 없다. 취득세는 높을지언정 상속세와 양도세는 없다는 것은 국민이 자기 집을 가져 부유해지길 싱가포르 정부가 바란다는 것이다. 심지어 취득세조차도 싱가포르 국민연금에서 빌려 낼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 그것은 오롯이 집주인이 된 중산층의 자산이 된다. 주택을 통한 자산 형성은 싱가포르에서는 죄가 아니다.

4대 시중은행의 연령대별 주택담보대출 잔액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차규근 의원실]

소득이 낮을수록 주택매입보조금은 더 많으며, 2.6%의 저리로 20년 넘게 장기적으로 쓸 수 있다. 저금리이지만, 공짜가 아니므로 포퓰리즘이 파고들 수 없다. 자기 집을 마련하고 그 집값이 일정 정도 상승하면 매각도 자유롭다. 국가에 차익의 일부를 내어줄 필요도 없다. 토지는 국가 소유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지 임차료를 낼 필요도 없다. 온전히 국민, 그들의 것이므로 싱가포르 국민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그 돈을 갚아나간다. 성실한 국민성은 미래에 가시화될 희망에서 나온다. 싱가포르의 자가 보유 촉진 정책을 배워야 할 이유다.

이제라도 고가주택에서 발생한 비이성적 과열의 위험을 제거하되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자금 부담을 주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자신이 낸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DSR 적용을 받지 않는 저리의 주택매입 자금 대출을 허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자가 보유 촉진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만이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고 10년 뒤 매입하려던 주택을 오늘 영끌해 매수하려는 사람들을 돌려세울 수 있다.

주택시장 왜곡하는 부동산 세제 고쳐야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이유로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 계획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면서 동시에 주택 실수요자들의 내집 마련도 지원해야 한다. 민달팽이는 집을 갖고 싶다. 집이 있는 달팽이도 새집을 갖고 싶다. 국민의 그러한 요구를 들어줄 수 있어야만 정부 정책은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국정의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똘똘한 한 채로 귀결되는 그간의 모든 정책, 재산세·종부세·양도세·취득세의 모든 부동산 세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방 소멸’‘몰락하는 지방’이라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지역균형 개발정책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수도권을 규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광역 거점들을 육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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