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딥페이크 규제, 피해자의 눈으로
그 역시 피해자였다. 한달여 전 미국 상원을 통과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법안(Defiance Act)을 발의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 이야기다. 이니셜이자 별칭인 ‘AOC’로 불리는 그는 2018년 28세의 나이로 미국 역대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스타 정치인이다. 지난달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연단에 등장해 ‘이날 연사 중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빼면 가장 뜨거운 환호를 받은’(더힐) 인물이다.
법안을 발의한 뒤 지난 4월 실린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를 통해 AOC는 우연히 SNS를 보다가 자신의 성행위 이미지를 발견했을 때의 심정을 밝혔다. “누군가 진짜라고 생각할 내 모습을 볼 때” 느낀 충격과 공포, 이후 반복 재생된 트라우마 증상을 털어놨다. 딥페이크 음란물의 피해자를 ‘성폭력 생존자’라고 부르면서 “신체적 강간과 다를 바 없고”, “피해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다”고 경고했다.
AOC가 상하원 의원 10여명과 함께 발의한 법안은 초당적인 지지를 얻어 만장일치로 상원의 문턱을 넘었다. 아직 하원 통과와 대통령 서명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플랫폼 업계의 로비 혹은 ‘표현의 자유’ 논란에 좌초되거나 지연되던 유사 법안과 달리 순항 중이다. 이 법안이 남다른 이유는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높여 AOC가 ‘성폭력 생존자’라고 부른 피해자의 회복과 권리에 주목한다는 점 때문이다. 법안은 딥페이크 표적이 된 사람이 이를 제작·배포한 사람은 물론 소지한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보장한다. 플랫폼 규제, 가해자의 형사 처벌에만 머물던 기존 입법 논의를 피해자 회복 차원으로 확장했다. 여기엔 미국 곳곳에서 온·오프라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온 30여개 단체와의 충분한 소통과 협업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중순 이후 국내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실태와 피해 사례가 연일 부각되자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 부산하다. 대통령의 ‘불호령’에 따라 부처마다 처벌 기준을 높이고 신고·수사, 영상 삭제, 예방교육 강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여야도 9월 정기국회에서 규제 강화, 법정형 상향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지금껏 나온 대책의 대부분은 과거 음란물 대책의 재탕 또는 텔레그램과의 핫라인 설치 같은 ‘희망 사항’의 나열에 그친다. AI를 활용한 성착취물 범람이란 미증유의 사태를 이런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 차라리 피해자들을 찾아가 공감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면 게 어떨까. AOC와 동료의원들처럼 말이다.
천인성 국제부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가지 상식 깨부쉈다…서울대·의대 간 '최상위 1%' 전략 | 중앙일보
- 아내에 약물 먹인 후 72명 남성 모집…잔혹 성폭행한 프랑스 남편 | 중앙일보
- 이런 집주인, 어디 또 없다…120채 ‘강남 아파트왕’ 비밀 | 중앙일보
- "만지지 마라""밤에 무섭더라"…송도 출몰한 야생동물에 깜짝 | 중앙일보
- 1억짜리 벤츠, 1년 만에 6000만원 됐다…"이게 무슨 날벼락" | 중앙일보
- '육즙수지' 본 과즙세연 "뭐야 저게?"…박수 치며 보인 반응 | 중앙일보
- 8m 싱크홀 빨려들어간 여성, 시신도 못찾았다…9일만에 수색 중단 | 중앙일보
- '5대1 예약 폭발' 필리핀 이모님…실제 서비스 들어가니 줄취소 왜 | 중앙일보
- '스타킹'서 우동 50그릇 뚝딱…사라졌던 일본 먹방 유튜버 근황 | 중앙일보
- '젊은 대장암' 한국 MZ가 세계 1위…이 음식은 드시지 마세요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