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컷] 고목에 꽃이 폈다…MZ 클래식 관람붐
1986년 칸영화제에서 ‘미션’이 이 영화를 밀어내고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게 논란이 됐을 만큼 영화사의 걸작에 꼽힌다. 시(詩)적 줄거리, 느린 호흡으로 관객을 잠재우는 영화란 악명도 높다. 세계적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모국 러시아를 떠나 완성한 유작 ‘희생’ 얘기다.
1995년 한국에서 세계 최다 11만 관객을 동원하며 시네필 시대를 열었던 ‘희생’이 지난달 21일 재개봉했다. 예술영화 마의 고지 1만명을 넘어, 2주 만에 관객 1만2000명을 기록했다. CGV 예매분석에 따르면 관객의 64%가 20대, 30대다.
늦둥이 어린 아들이 목 수술 후 목소리를 잃게 됐다. 아내는 알고 보니 아들의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이런 처지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아들과 죽은 나무를 심고 매일같이 물을 주는 고행을 택한다. 그가 자신의 생일날 제3차 세계대전 발발로 핵 종말이 예고되자, 온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결말은 온통 수수께끼 같다. 대자연 속 집 전체가 불타는 7분 가까운 롱테이크 장면까지, 몇 번은 졸았다는 증언이 이런 찬사와 공존한다. “어렵지만 아름답다” “압도당하는 작품을 만났다”….
기자도 다시 보며 이제야 눈이 뜨이는 장면들이 있었다. 옛 수도승의 제자가 죽은 나무에 물을 주어 3년 만에 되살렸다는 대사와 함께. “아들아, 온 마음을 담으면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단다.” 냉전 시대 소련 영화계 최고 스타였지만 평생 공산정부의 검열에 억압받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희생’을 찍고 말기암 선고를 받은 뒤 이 영화를 자신의 아들, 러시아의 다음 세대에 바쳤다.
“어중간한 신작보다 검증받은 작품에 지갑을 연다”는 MZ 관람 경향이 극장가에 뜻밖의 클래식 붐을 일으키고 있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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