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긴급사태 명시’ 개헌 재촉하는 日총리 후보들
자민당 총재 후보들 앞다퉈 속도 강조
“보수층 결집·스캔들 시선 돌리기 목적”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 선출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자위대 보유’를 명시하는 헌법 개정에 경쟁적으로 의욕을 내보이고 있다. 당내 조기 개헌론을 의식한 포석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한 분위기다.
가장 먼저 입후보를 선언한 고바야시 다카유키(49)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은 지난 2일 아오모리시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자위대 명기와 긴급사태 조항 신설을 우선순위로 높여 (의회) 발의를 위해 각 당과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고 지지통신이 3일 전했다. 그는 지난달 출마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전날인 2일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는 현행 헌법 9조를 유지하면서 ‘자위대 보유’를 새롭게 명기하는 것을 포함한 쟁점 정리안을 승인했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적으로 포기(제1항)하고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부인(제2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민당은 이 조항을 그대로 두되 자위대 보유 권리와 긴급사태 관련 조항 등을 명시하기로 했다. 실질적 군대인 자위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을 우선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새 총리에게도 인수인계해 더 많은 논의로 이어가겠다”며 자신의 후임에게 조속한 국회 발의를 촉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게로 전 간사장은 9조를 유지하기로 한 실현본부 회의 후 기자들이 2항 삭제를 계속 주장할 것인지 묻자 “결정된 이상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물러섰다. 다만 자신이 주장해온 ‘안전보장기본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안전보장기본법은 자위대 활동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한 법안이다.
최근 개헌 의지 표명을 강화하고 있는 후보는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은 2일 도쿄 시내에서 기자들에게 “(개헌은) 자민당 창당 이후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이를 확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국민투표를 하루빨리 하고 싶다. 자위관(자위대원)이 헌법에 놓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실현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가토 가쓰노부(68) 전 관방장관은 같은 날 기자들에게 “(쟁점 정리를 바탕으로) 국회 제출, 국민투표라는 경로를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노 다로(61) 디지털상은 전날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회견에서 개헌 관련 대응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발의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강경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둔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도 개헌 논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조속히 개헌을 추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명당 관계자는 “총재 선거에서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냉담하게 말했다고 지지통신은 전했다.
자민당 총재 후보들이 개헌을 놓고 적극적인 발언을 내놓는 배경에는 당내 비자금 스캔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각 후보는 자민당 내 파벌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진상규명 등 대응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지지통신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헌법 개정을 둘러싼 각 후보자의 주장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면서도 “여론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성급한 논의는 오히려 다른 정당이나 일반 유권자들과의 거리를 넓힐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안보와 개헌이 세트처럼 이야기되지만 방위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토지 구매, 태양광 패널 원격 시스템, 감시카메라, 통신장비 등과 같은 구매 가이드라인을 빨리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글 작성자는 “쿠르드인 이민자, 중국, 베트남 절도단 등 외국인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히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많은 지지를 얻은 글은 “마치 연예인 오디션처럼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후보들로 무엇이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회의감을 드러낸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단지 간판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인 것 같다”며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자민당의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총재로) 결정되면 ‘이제 자민당이 새롭게 태어납니다’라고 어필할 생각이겠지만 그 정도로는 국민이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 보면 자민당이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원로들이나 지도부는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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