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중전 22승 77패…한국바둑 ‘검은 토요일’

2024. 9. 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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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서 자오천위 9단을 꺾고 본선에 오른 강동윤 9단. [사진 한국기원]

삼성화재배 세계바둑 마스터스 통합예선은 중국의 압도적 우위를 확인하고 끝났다. 13명을 뽑는 일반 조에서 한국 2명, 중국 11명이 본선에 올랐다. 한중전 총전적은 99전 22승 77패. 일본·대만은 전원 탈락.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일방적일 줄은 몰랐다. 통합예선은 시드를 받은 톱기사 몇몇을 제외하고 한중 양국의 기사가 전력을 다해 맞붙는 것이라서 앞으로 펼쳐질 세계바둑의 판도를 점칠 수 있다. 예선전이 끝난 지난 8월 31일은 한국바둑엔 위기 사이렌이 울린 ‘검은 토요일’이라 할 만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좋은 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조엔 중국의 미위팅(15위), 판팅위(12위), 리진청(9위)이 몰려있었는데 최종 승자는 한국 39위 안정기였다. 세계챔프 미위팅은 리진청에게 패했고 리진청은 한국 68위 김세동에게 패했다. 안정기는 응씨배 우승자 판팅위를 격파하고 결승에 올라 김세동을 누르고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의 이름 없는 복병들이 합작하여 세계챔프를 꺾어버리는 모습에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10조의 강동윤(한국6위)은 장웨이제(중국 23위) 황원쑹(27위), 자오천위(11위)를 연파하고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세 명 모두 중국 갑조 리그의 강자들이다. 35세의 강동윤이 세계바둑에 몰아치는 세대교체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밀어내며 분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1조의 천센(24위)은 결승에서 같은 중국의 황밍위(53위)를 꺾고 본선에 올랐다. 황밍위는 그 앞에 한국 7위 설현준을 꺾었다. 기대를 모았던 한국 상위 랭커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힘을 쓰지 못했다. 3조도 결승전에 나선 두 얼굴은 중국이었다. 천정쉰(37위)이 랴오위안허(20위)를 꺾었다. 중국 바둑은 1~20위까지는 실력이 비슷한 것이 특징이지만, 이젠 그게 30위 너머로 확대되는 느낌이다.

중국 선수끼리 대결을 펼친 중중전은 결승 13판 중 7판이나 된다. 6조도 그중 하나. 삼성화재배 4번 우승의 커제(6위)가 신흥강자 투사오위(19위)를 꺾었다. 7조에선 유명 신예 진위청(25위)이 일본 최강자 이야마 유타를 반집 차로 제쳤다. 8조에선 한국 13위 한승주가 중국 38위 한이저우에게 졌다. 9조에선 한국 126위 강지훈이 중국 2위 양딩신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으나 곧 셰커(13위)에게 졌다. 셰커는 중국 163위의 천자루이를 꺾고 본선에 올랐다.

11조 결승전에선 판인(30위)이 천위농(61위)을 꺾었다. 한국 8위 이창석이 천위농에게 패했다. 12조에선 한국 62위 진시영이 어렵게 결승에 올라 중국 렌샤오(8위)와 일전을 벌였으나 아쉬운 패배.

마지막 13조는 한국 신예 중 랭킹이 가장 높은(12위) 2003년생 문민종과 중국 최강 신예 왕싱하오(5위)의 한판 승부가 기대됐으나 일찌감치 중국의 독무대가 됐다. 2004년생 왕싱하오가 준결승에서 2009년생 마징위안을 꺾은 뒤 결승에서 2006년생 리신천을 누르고 본선 티켓을 차지했다. 리신천은 중국랭킹 143위, 마징위안은 144위. 중국은 AI로 무장한 이런 10대들이 많다.

이번 참패를 놓고 한국기원 국가대표 코치진은 고심할 것이다. 왜 한국의 허리층은 그토록 힘을 쓰지 못했을까. 중국은 왜 100위 밖 무명의 신예들까지 힘을 냈을까. 신진서 원톱에 의존하는 한국바둑의 앞날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한국은 두 명 뽑는 시니어와 여자 조를 독식해 조금이나마 분을 풀었다. 시니어는 유창혁과 최명훈, 여자는 최정과 김은지. 최정은 준결승에서 중국 2위 저우훙위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서 리허를 이겼다. 김은지는 중국 1위 위즈잉에게 대역전승을 거뒀고, 결승에서도 특유의 전투력으로 판을 뒤집었다. 가슴 아픈 패전 속에서도 위안이 되는 승리였다. 한국은 랭킹 1~5위까지 시드를 받았다. 이들이 참가하는 본선 32강전은 11월 12~22일 열린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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