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운율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원문의 느낌 만끽할 수 있어”

이영희 2024. 9. 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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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운문의 느낌을 살려 새롭게 번역한 최종철(75) 연세대 명예교수. 그는 “한글의 위대함 덕분에 원작의 리듬감을 표현하는 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진 민음사 ]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O Romeo, Romeo! wherefore art thou Romeo?)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원수 집안의 아들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줄리엣이 안타까움에 휩싸여 내뱉는 대사다. 이 대사는 시일까 산문일까.

원작에서 이 대사는 서양 정형시의 한 종류인 소네트(sonnet) 형식으로 쓰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번역서나 영화·연극 등을 통해선 이 대사의 시적 운율과 리듬감이 충분히 전해지지 못했다. 최근 전 10권으로 완간된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은 셰익스피어의 전작을 운문의 느낌을 살려 새롭게 번역한 야심찬 시리즈다. 최종철(75)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993년 ‘맥베스’ 운문 번역을 시작으로 30년간 이 작업에 매달려왔다.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인 느낌을 한글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시조를 비롯해 우리 시의 가장 보편적인 운율인 ‘삼사조(三四調)’를 적용해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사상을 리듬감 있게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실제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 절반 이상은 운문 형식이다. 4대 비극 중 ‘햄릿’과 ‘리어왕’은 75%, ‘오셀로’는 80%, ‘맥베스’는 무려 95%가 운문 형식 대사로 이뤄져 있다.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 뒤에 강세를 받는 음절이 따라오는 구성(약강)이 시 한 줄에 연속적으로 5번 나타나고(오보), 각운은 맞추지 않는(무운) ‘약강 오보격 무운시’ 형식이 주로 사용됐다. ‘햄릿’의 명대사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란 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사를 삼사조 운율을 적용해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로 옮겼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운문 완역이 이제야 이뤄진 이유는 뭘까. 최 교수는 “1920년대 우리 지식인들이 일본, 일본어라는 통로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처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표의 문자인 한자와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가타카나를 혼합해 쓰는 일본어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시어의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한국어는 표음 문자라는 점에서 영어와 통하고, 비슷한 길이와 리듬감으로 운문의 묘미를 살리는 게 가능하다. 최 교수는 자신의 이번 작업이 “위대한 한글 덕분에 100여년간 지속돼온 일본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독립했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전집에는 4대 비극을 포함한 비극 10편, 희극 13편, 역사극과 로맨스 외 15편, 시 3편, 소네트(14행의 정형시) 154편 등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이 담겼다. 최 교수는 그중 가장 번역하기 어려웠던 작품으로 ‘맥베스’를 꼽았다. “맥베스의 대사에는 압축·비유·상징이 너무 많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대사들의 의미와 느낌을 우리말로 충실히 옮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은 사람은 내면의 변화가 찾아오고,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했다. 특히 “셰익스피어 운문 번역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보라”고 독자들에게 권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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