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 페예노르트와 4년 계약…"네덜란드 선배 박지성 닮고 싶다"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10년 전 네덜란드를 떠난 선배 박지성을 닮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 굴지의 명문 페예노르트 구단에 입성한 한국 대표팀 미드필더 황인범의 각오다.
페예노르트 구단은 3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황인범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8년까지 4년이다. 황인범은 붉은색과 흰색을 반씩 가르는 페예노르트 유니폼에 등번호 4번을 달고 뛰게 된다.
페예노르트는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구단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일궈낸 두 스타, 송종국과 이천수가 뛰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송종국은 한일 월드컵 직후 네덜란드로 건너와 3년을 뛰었다. 이천수는 지난 2005년 K리그 MVP를 거머쥐고는 2년 뒤엔 2007년 페예노르트를 통해 생애 두 번째 유럽 진출을 이뤘다.
황인범은 페예노르트 한국인 3호가 됐다.
이로써 황인범은 지난 2년간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세르비아 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을 통해 동유럽에서 뛰었으나 생애 처음으로 서유럽 구단 입단 기쁨을 누리게 됐다.
구단은 세부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현지 매체들 보도를 종합하면 황인범을 데려간 페예노르트가 즈베즈다에 수백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한다.
네덜란드 유력지 '더 텔레그라흐'에 따르면 즈베즈다는 황인범의 바이아웃(이적 보장 최소 금액)을 800만 유로(약 118억원)로 책정한 걸로 알려졌다. 즈베즈다는 지난해 여름 황인범을 550만 유로에 영입했다. 1년 사이 250만 유로, 약 43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황인범은 입단 직후 "내 경력 중 페예노르트가 가장 큰 클럽"이라며 기뻐한 뒤 "페예노르트는 홈경기마다 스타디움이 꽉 차는 것으로 들었다. 유럽에서도 빅클럽이고 여기 오래 머무르고 싶다. 여기 와서 처음 하는 얘기"라며 페예노르트에서 롱런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황인범은 아울러 자신의 SNS를 통해 즈베즈다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황인범은 "즈베즈다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1년 전에 내가 제일 힘들 때 계약해줘서 감사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제 생애 첫 번째이자 두 번째 트로피인 2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지난 시즌 나에게 '올해의 선수'를 선물해 준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황인범은 지난해 여름 전전 소속팀인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와 분쟁을 겪으면서 경기에 출전하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빅리그 이적시장 기한이 끝나고 9월 초가 되어서야 나타난 곳이 즈베즈다였고 황인범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즈베즈다행을 선택했다.
황인범은 이미 세르비아 1부리그가 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지난 시즌 즈베즈다에서 리그 4골 4도움을 올렸고 우승에도 앞장섰다.
결국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올시즌에도 공식전 7경기에서 어시스트 5개를 쓸어 담으며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적설에 휩싸였다. 이번 여름 황희찬의 소속팀 울버햄프턴을 비롯해 크리스탈 팰리스(이상 잉글랜드), 레알 베티스(스페인),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독일) 등 여러 빅리그에서 황인범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네덜란드 구단들이 황인범을 주목하고 나섰다. 사실 황인범 다음 행선지로 거론된 팀은 페예노르트가 아니라 라이벌 구단인 네덜란드 최고 명문 아약스였다. 아약스가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할 의사를 보였다고 세르비아 매체들이 최근 보도하면서 황인범은 석현준 이후 14년 만에 아약스 유니폼을 입는 한국인 선수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르비아 언론에 따르면 아약스 러브콜이 온 뒤 페예노르트도 참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결국 황인범은 행선지를 페예노르트로 최종 결정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닌 끝에 서유럽 빅클럽에 입성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하계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통해 해외 진출의 기회를 얻은 뒤 밴쿠버 화이트캡스(캐나다)로 향한 황인범은 이후 2020년 루빈 카잔(러시아)에 입단,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카잔에 머무를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왔고 K리그 FC서울에서 잠시 뛰다가 올림피아코스로 갔다. 이어 즈베즈다를 거치고는 천천히 유럽 축구계에 이름을 알렸다.
도중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액으로 유혹하기도 했지만 황인범은 오로지 축구를 중심에 놓고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페예노르트라는 큰 구단과의 계약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굵직한 항구 도시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둔 페예노르트는 아약스(36회), PSV 에인트호번(25회)에 이어 리그 우승 3위(16회)에 자리한 명문 구단이다.
지난 시즌에는 26승 6무 2패로 승점 84를 쌓아 에인트호번(승점 91)에 이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우승은 25승 7무 2패로 승점 82를 쌓았던 2022-2023시즌이다. 이 때 우승을 일궈낸 아르네 슬롯 감독이 이번 시즌부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지휘봉을 잡고 있다. 현재 사령탑은 브리앙 프리스케 감독으로 덴마크 출신이다.
황인범은 페예노르트에 오자마자 정확히 10년 전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선배 박지성을 닮고 싶다고 했다. 박지성은 2003~2005년 PSV에서 뛰다가 이후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QPR에서 뛰었다. 2013년 PSV에 임대 신분으로 1년간 활약한 뒤 은퇴했다.
비록 라이벌 팀 선배지만 박지성의 활약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황인범이 스스럼 없이 꺼냈다.
네덜란드 'fr12'에 따르면 황인범은 어떤 선수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니에스타를 선택하겠다"면서 "그는 전설이다. 이니에스타의 플레이스타일은 내가 어렸을 때 내게 영감을 줬다. 지금도 가끔 유튜브에서 옛날 영상을 찾아보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을 언급하는 것도 뺴먹지 않았다. 황인범은 "이제 이니에스타 같은 스타일대로 플레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그건 매우 어려울 것"이라면서 "한국 선수 중에서라면 박지성을 꼽고 싶다.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선수로서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페예노르트에서 그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 황인범의 플레이스타일은 박지성과 적지 않게 닮은 것으로 분석된다. 황인범은 중앙 미드필더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고정돼 있고, 박지성은 미드필더와 윙어를 동시에 볼 수 있지만 포지션에 상관 없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공격을 이끌고 수비에 도움을 주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언론도 이미 그런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부트발 플릿센'은 "황인범은 페예노르트 이적을 앞두고 에레디비시에서 9번째 한국 선수가 될 것"이라며 "그 중 특히 박지성은 PSV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공격형 미드필더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유니폼을 입었고, 2013년 한 시즌 동안 복귀했다"고 박지성이 가장 성공한 선수였다고 조명했다.
이어 "박지성은 PSV에서 119경기에 나서 28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네덜란드 컵과 요한 크루이프 샬이라는 2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박지성의 PSV 커리어도 설명했다.
황인범은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강 맨시티와 격돌이 성사되자 황인범은 "개처럼 뛰겠다"고 각오를 밝힌 적이 있는데, '개처럼 뛴다'는 유럽 언론이 상대 선수를 쉴 새 없이 괴롭히는 PSV 시절 박지성에 대해 했던 극찬이었다. 박지성은 이런 움직임으로 안드레아 피를로, 리오넬 메시 등 당대 최고의 공격수들을 꽁꽁 묶고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으로부터 "가장 저평가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황인범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비를 하는 능력이 빼어나 많은 감독들이 중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황인범이 박지성의 뒤를 이어 '개처럼' 뛰는 한국인 미드필더가 될지 흥미롭게 됐다.
황인범은 박지성 외엔 이니에스타를 롤모델로 지목했다. 이니에스타는 박지성보다는 조금 더 기술을 갖추고 있어 침투패스나 예측 불허 움직임이 훌륭하다. 황인범이 이니에스타와 박지성의 장점만 섞어서 닮는다면 네덜란드에서도 일찌감치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
사진=페예노르트, 연합뉴스,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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