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에 월가 혼란…모건은 또 경고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식’이라는 엔비디아 실적이 나왔다. 그런데 시장 반응이 애매하다. 월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보였는데도 주가는 빠졌다. 전문가들은 “AI가 산업 변화를 이끌 메가 트렌드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몇 년간 가파른 상승세에 피로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2분기 300억4000만달러(약 40조1785억원) 매출과 0.68달러(909원) 주당순이익(EPS)을 기록했다고 8월 28일(현지 시간)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LSEG가 전망한 월가 예상치 매출(287억달러)과 주당순이익(0.64달러)을 웃돈다. 또 엔비디아 분기 매출이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122% 급증했다. 엔비디아는 이어 3분기(8~10월) 매출은 3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역시 월가 전망치 317억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런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하락했다. 뉴욕 증시 정규장에서 2.1% 하락 마감한 주가는 실적 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 한때 8%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2분기 실적과 3분기 실적 전망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이전보다 상회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모건스탠리 “고점에 대비하라”
엔비디아 실적 발표와 함께 AI 고점론이 다시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한 국내 애널리스트는 향후 투자해야 할 종목을 묻는 질문에 “AI만 빼고 투자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증권가에서 나타나는 ‘AI 불신’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 7월 구글 2분기 실적 콘퍼런스에서도 AI로 언제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논쟁이 뜨거웠다. 당시 투자자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에게 “수십조원을 AI 투자에 쏟아붓는데 도대체 돈은 언제부터 벌 수 있느냐”는 날 선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AI 붐이 둔화하더라도 AI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는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투자자를 달랬지만 불안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다른 서비스로 돌릴 수 있다”는 발언이 AI 수요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돼서다.
미국 실리콘밸리 톱 벤처캐피털(VC)인 세콰이어캐피탈이 내놓은 보고서는 AI 버블론 확산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세콰이어캐피탈은 ‘AI에 관한 6000억달러(약 830조원) 질문’이라는 보고서에서 ‘AI 버블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도달하고 있다’고 썼다. 보고서는 AI 설비투자에 쏟아부은 돈을 회수하려면 830조원을 벌 수 있어야 하는데, 최종 수요 시장에 위치한 소비자가 그만큼 지갑을 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역시 ‘고점에 대비하라(preparing for a peak)’는 보고서를 내고 AI 피크론에 불을 지폈다. 급락했던 AI 관련주 주가가 반등하며 논란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지 일주일여 만이다.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황에 대해 종종 고점론을 제기해왔고 이때마다 관련주가 급락했다. 지난 2021년 ‘반도체 시장에 겨울이 온다(Memory, winter is coming)’라는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업황 다운 사이클(장기 하락 추세)을 예측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 발간 직후 SK하이닉스 주가는 20% 가까이 하락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은 곧 AI 시장 호황보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의 피크아웃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황은 내년까지 호조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실적 증가율이 ‘업황 피크아웃’ 우려를 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올 3분기(21%)에 고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4분기부터 매출 증가율은 18%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 1분기부터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기의 매출 증가율(8.3%)도 고점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부터는 투자비 증가율이 8% 수준으로 내려온다는 분석이다. 모건스탠리는 “AI 산업 투자 랠리는 영원하지 않다”며 “결국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까지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업황은 좋을 테지만 주가는 결국 실적 증가율을 따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KB증권 “내년 D램 시장 50% 성장”
다만 국내 증권가를 중심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가 과장됐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업종이 세계 금융 시장에서 EPS 상승을 주도하고 있고, ‘M7(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을 주축으로 한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반박이다. 세계 경기 여파에 따라 추후 AI 투자는 ‘업 앤드 다운’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결국 AI로 간다는 대전제가 틀리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과거 메모리 ‘슈퍼 사이클’에 비춰 사이클 종료가 단순히 전년 동기 대비 ‘분기 이익 상승률 고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 때도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상승률’ 기준 SK하이닉스 고점은 2017년 2분기(상승률 574%, 약 7배)였다. 하지만, 슈퍼 사이클은 1년 정도 더 지속되다 2018년 5월을 기점으로 주가는 ‘피크아웃’했다. 당시 D램 가격 상승률이 5% 이하로 떨어지고 더 이상 분기 이익 상승이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주가 랠리가 종료됐다.
KB증권은 내년 D램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5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소 내년 3분기까지 반도체 업황이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주가가 통상 업황 고점 약 6개월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초까지는 주가가 탄탄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이 HBM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범용 D램 반도체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전망이다.
이를 보여주듯 삼성전자 실적도 탄탄하다.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은 올해 하반기 영업이익률 30% 돌파가 유력하다. 특히 D램 이익률은 당장 3분기부터 4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 역시 40%에 근접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각각 8%, 22%대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HBM 선두 주자인 SK하이닉스 내부는 실적 기대감이 더 높다. 2분기 33%를 넘어 3분기 40%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 회사의 고공행진은 수익성이 높은 HBM과 관련이 크다. 류성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SK그룹 이천포럼에서 “ ‘M7’에서 모두 찾아와 HBM 커스텀(맞춤형)을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군의날 임시공휴일 지정…오늘 국무회의서 의결키로 - 매일경제
- 아파트 매매 가계약 뒤 매도인이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면 - 매일경제
- [단독] 손태승 처남, ‘우리은행 명예회장’ 행세하며 가짜 서류로 부동산 대출 - 매일경제
- 국민 절반이 울분 상태…30대 유난히 ‘심각’한 이유 - 매일경제
- “쉽게 살 빼자”…머스크 14kg 감량한 ‘비만약’ 한국 온다 - 매일경제
- 텍스트힙 이끄는 책은…‘시집’에 빠진 MZ - 매일경제
- 北, 7년간 해킹 등 불법으로 63억달러 벌었다 - 매일경제
- 롯데백화점에...한잔에 48만원짜리 커피 등장 - 매일경제
- 곽튜브에 슈카까지 떠난 샌드박스…위기론 팽배한 ‘MCN’ - 매일경제
- 한소희 모친, 불법 도박장 12곳 운영 혐의로 구속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