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RCPS’…부채냐 자본이냐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가 최근 갑작스러운 자본잠식 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지난 4월 공시한 2023년 감사보고서다. 버킷플레이스는 자본총계를 마이너스(-) 7988억원으로 기재했다. 2022년 감사보고서에서 공시한 자본총계(2217억원)를 고려하면 1년 만에 약 1조원의 자본 변동폭이다. 영업 환경이 급격하게 악화했거나 숨겨진 경영 리스크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다. 매출은 여전히 늘고 있고 수익성도 소폭 개선됐다.
자본총계가 급격하게 바뀐 건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관련 있다. RCPS는 회계기준에 따라 성질이 바뀐다. 비상장사가 채택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은 RCPS를 자본으로 평가한다. 반면 상장사 혹은 상장을 앞둔 기업이 적용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실질을 따져 RCPS를 부채로 보는 시각이 짙다. 버킷플레이스도 지난해 회계기준을 K-GAAP에서 K-IFRS로 변경했고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의 RCPS를 부채로 반영했다. 업황은 달라진 게 없지만 회계기준 변화에 따른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상환권+전환권+우선권
RCPS는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의 약자다. 말 그대로 ① 상환권 ② 전환권 ③ 우선권 기능을 모두 갖춘 주식이다. 이 중 상환권(Redeemable)은 투자자가 특정 시기부터 투자금을 상환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물론 아무 때나 요청 가능한 건 아니다. 일단 투자 계약서상 명시된 상환 청구 기간을 지나야 한다. 다만 최근에는 일종의 ‘특약’ 개념으로 투자금 유용과 투자자 사전동의 항목을 넣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투자금을 목적과 다르게 활용할 때 투자자 확인을 거치지 않으면, 상환 청구 기간이 지나지 않더라도 상환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영권 견제 수단을 확보하는 셈이다.
상환 청구 기간이 지났다고 무조건 상환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년도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재무제표 기준으로 회사에 배당 가능한 이익이 있을 때 상환 요청할 수 있다. 배당 가능한 이익이 없다면 회사는 투자자의 상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만약 지속적으로 이익을 못 내는 기업이라면 상환권은 무의미하다.
전환권(Convertible)은 투자자가 정해진 기간 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다. 회사가 성장을 지속해 상장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투자자 엑시트 전략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전환권은 리픽싱(Refixing) 조항이 붙는다. 리픽싱은 조건부 전환비율 조정을 의미한다. 투자자는 이를 통해 기존에 정한 비율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앱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가정하자. 투자자는 계약 시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앱 다운로드 수가 5000건 미만일 경우 우선주 전환비율을 2주로 조정한다’ 등의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혹은 ‘상장 후 주가가 전환 가격보다 낮아질 경우 전환 가격을 갱신한다’ 등의 단순 조건을 내걸 수도 있다.
우선주(Preferred Stock)는 배당 시 보통주보다 우선권을 가진 주식이라는 의미다. 계약상 투자자의 우선주 형태는 크게 누적적(Cumulative) 혹은 비누적적(Non-cumulative)으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회사 측 배당 부담도 달라진다. 누적적 우선주 투자자라면 회사에 충분한 배당 이익이 생길 경우, 과거 회계연도에서 배당 못 받은 금액도 누적해 받는다. 당해 배당만 받는 건 비누적적 우선주다. 동시에 우선주는 참가적(Participating)과 비참가적(Non-participating)으로도 나뉜다. 회사 성과에 따라 추가 배당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차이다. 쉽게 말해 투자자 입장에서는 ‘누적적-참가적 우선주’를 선호하고 회사 입장에선 ‘비누적적-비참가적 우선주’를 원한다. 배당과 별개로 회사가 청산돼 잔여 재산을 분배할 때도 우선주가 우선권을 갖는다.
형식은 자본, 실질은 부채
회계기준 따라 변동돼
RCPS는 자본의 성격을 갖고 있는 ‘전환권’과 부채 성격을 지닌 ‘상환권’이 한데 모인 주식이다. 이 때문에 회계기준에 따라 RCPS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비상장사에 적용되는 K-GAAP는 RCPS를 자본으로 인정한다. 판단 근거는 단순하다. K-GAAP는 우선주를 자본으로 판단하는데 RCPS 역시 우선주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K-GAAP 제15장(자본)을 보면 “주주로부터 현금을 수령하고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주식(상환우전주 포함) 발행 금액이 액면 금액보다 크다면 차액을 주식발행초과금으로 해 자본잉여금으로 회계 처리한다”고 설명돼 있다.
반면 상장사가 의무 채택하는 K-IFRS는 RCPS 실질을 따진다. RCPS에 리픽싱 조항이 붙거나 투자자가 상환권을 보유했다면 부채로 판단한다. 현장에서 RCPS 대부분에 리픽싱 조항과 투자자 상환권이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K-IFRS는 RCPS를 부채로 본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부채비율 급증 착시 현상
금융업 위해 ‘R’ 삭제한 토스
문제는 변경 과정이다. 앞선 버킷플레이스 사례처럼 상장을 앞두고 회계기준을 K-GAAP에서 K-IFRS로 변경할 경우, RCPS 보통주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RCPS로 확보한 자금은 자본에서 부채가 된다. 회계상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부채비율이 급증한다. 회사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기 힘든 시장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주요 커뮤니티에서 버킷플레이스 자본잠식 소식이 전해진 뒤 ‘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온 배경이다. 논란이 커지자 버킷플레이스는 지난 8월 28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오늘의집이 판매자 정산금을 미지급하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어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로 한국거래소는 기업 상장예비심사 신청 전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RCPS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버킷플레이스 역시 올해를 시작으로 보통주 전환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종에 따라 RCPS는 직접적인 허들이 되기도 한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9년 토스는 인터넷은행과 증권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 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RCPS로 인한 자본 적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수개월 동안 심사를 지연했다. 당시 기준 자본금의 70% 이상이 RCPS고 RCPS의 실질이 부채인 만큼 안정적 상태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이에 토스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투자자 동의를 얻어 RCPS 전량을 CPS로 전환했다. ‘RCPS 실질은 부채’라는 금융감독원 주장의 핵심 근거인 상환권(R)을 삭제한 셈이다. 토스는 금융감독원 허가 끝에 2021년 토스뱅크를 출범시켰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상환전환우선주를 이용한 벤처캐피털 투자 관련 이슈의 분석’ 보고서에서 토스 사례를 언급하며 “RCPS 회계 처리는 스타트업이 금융업과 같이 자기자본 요건이 엄격한 산업에 진입하려고 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사적 시장에서 이뤄지는 일인 만큼, 공적 규제가 개입할 영역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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