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케이뱅크·서울보증보험 그리고…
하반기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재수생’이 투자자 눈길을 끈다. 조 단위 기업가치가 거론되는 대어부터 기술력을 갖춘 중소형사까지 다시 증시 입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실적을 개선하고 주관사를 교체하는 등 전열을 정비한 이들이 재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카뱅 주가 부진은 ‘걸림돌’
투자자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공모주는 단연 조 단위 ‘대어’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대표적이다. 케이뱅크는 지난 2022년 IPO를 추진하다 결국 철회했다. 시장 침체로 회사가 기대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케이뱅크는 절치부심하고 IPO 재도전을 준비했다. 올 하반기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지난 6월 28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주관사가 달라졌다. 기존 NH투자증권·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JP모건에서 NH투자증권·KB증권·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변경했다. KB증권은 카카오뱅크 상장 대표 주관 경험이 있어 인터넷은행 업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BoA는 각국 국부펀드와 연기금 등 글로벌 핵심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네트워크와 세일즈 역량을 갖췄다. BoA의 경우, 2021년 7월 케이뱅크가 인터넷은행 역대 최대인 1조2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할 때 주관사를 맡기도 했다.
2년 사이 실적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케이뱅크는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 854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지난 2022년 기록한 연간 기준 최대 순이익(836억원)을 반년 만에 넘어섰다. 여신과 수신 모두 1년 전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간다. 지난 2분기 말 케이뱅크 수신 잔액은 21조8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여신 잔액은 같은 기간 12조6700억원에서 15조6700억원으로 24% 증가했다. 올해부터 시작된 대환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덕분에 시중은행에서 인터넷은행으로 대출을 갈아탄 고객이 급증한 영향이 크지만, 상장을 앞두고 실적이 개선됐다는 점은 기업가치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다만 불안 요소도 존재한다. 국내 유일한 비교기업인 카카오뱅크 주가 부진이 길어지면서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 4조~5조원 수준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2배 이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주가 약세 기간이 길어진 카카오뱅크의 최근 PBR은 1.6배 수준에 그친다. 이를 케이뱅크에 적용하면 기업가치는 3조원대에 머문다. 이 때문에 케이뱅크가 해외 인터넷전문은행과 플랫폼 기업 등을 비교기업으로 선정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공모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케이뱅크는 이번 IPO를 통해 총 8200만주를 공모할 계획이다. 이 중 절반인 4100만주는 구주매출이다. 구주매출은 회사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지 않고 기존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공모 자금 중 절반은 회사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모가 낮춘 서울보증보험
구주매출 100% 구조는 ‘여전’
10개월 만에 코스피 입성을 재추진하는 서울보증보험도 주목할 만한 기업이다. 서울보증보험은 지난해 10월 약 3조원의 몸값으로 상장을 추진했으나,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과 공모구조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상장을 철회했다.
한 차례 아픔을 겪은 서울보증보험은 눈높이를 낮춰 다시 상장에 도전한다.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지난 8월 13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상장 추진 당시 고평가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공모가를 다소 낮춰 잡을 계획이다.
지난해 회사가 제출한 공모가 희망범위는 3만9500~5만1800원, 이를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은 2조7580억~3조6168억원이다. 당시 회사는 기업가치를 산출하기 위해 비교기업(삼성화재·DB손해보험·코파스·트래블러스)의 평균 PBR 0.95배를 내세웠다. 여기에 21~40% 할인율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당시 국내 보험사가 적용받은 평균 PBR보다 두 배가량 높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PBR 1배에 달하던 코파스와 1.7배에 이른 트래블러스를 비교기업에 포함한 영향이다.
이번 IPO에서는 최대주주의 의무보호예수 기간도 늘릴 계획이다. 서울보증보험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상장 후 1년의 매각 제한을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상장 추진 때는 최소 의무보유 기간인 6개월만 설정해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가 제기됐다. 6개월 더 의무보호예수 기간을 늘려 시장 친화적인 공모구조를 내세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먼저 공모구조가 지난해 상장 추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IPO 역시 신주 모집 없이 698만2160주 전량이 구주매출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지분의 1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실적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서울보증보험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41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역시 당기순이익 269억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61% 감소했다.
코스닥 노리는 중소형사 ‘눈길’
악화된 시장 환경 극복해야
코스닥 입성을 재추진하는 중소형사도 여럿이다.
2차전지 검사 솔루션 기업 피아이이는 지난해 하나증권의 첫 대형 스팩(SPAC)인 하나금융25호스팩과 합병 상장을 추진하다 스팩 주주총회에서 주주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약 4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제시했지만 고평가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장 주관사를 하나증권에서 삼성증권으로 바꿔 직상장을 노린다. 직상장은 기업이 상장 과정에서 공모가를 시장에서 직접 평가받는다. 스팩 합병 방식과 비교하면 고평가 논란이 덜한 편이다. 지난해 매출 858억원, 영업이익 55억원으로 흑자를 기록한 만큼 기술특례상장이 아닌 일반 상장으로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초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지난 8월 13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코넥스 상장사 에이치엔에스하이텍은 코스닥 이전 상장에 재도전한다. 전자부품 제조업체 에이치엔에스하이텍은 지난 5월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해 8월 12일 승인됐다. 지난 2021년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삼아 상장에 도전하다 철회한 지 3년 만에 다시 추진하는 것. 당시 지적받았던 이사회 요건을 개선하는 등 상장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만전을 기울였다. 2021년 당시 사외이사가 1인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부터는 총 3인으로 의석수를 확대했다. 기존 한국투자증권에서 미래에셋증권으로 주관사도 교체했다. 실적이 개선된 부분도 눈에 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301억원으로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희소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 역시 2년 만에 다시 증시 입성을 노린다. 쓰리빌리언은 지난 2022년 4월 거래소 심사 문턱에서 자진 철회한 뒤 올해 4월 재도전에 나섰다. 지난 7월 말 거래소 심사를 통과해 8월 29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2년 전 급격히 악화된 시장 환경 탓에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그사이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2년 동안 쓰리빌리언의 매출은 4배 이상 늘어 지난해 27억원을 기록했다. 기술성평가 등급도 과거 A·BBB에서 A·A등급으로 높아졌다. 공모 물량인 320만주를 모두 신주로 모집하고, 재무적투자자(FI)가 자발적으로 의무보호예수 기간을 설정하는 등 시장 친화적인 공모구조를 앞세운다.
단, 최근 악화된 시장 환경은 기업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7월 이후 상장한 이노스페이스, 엑셀세라퓨틱스, 뱅크웨어글로벌 등은 증시 입성 첫날부터 줄곧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이병화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증시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재상장을 추진하는 기업 입장에서 주식 시장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형사에 대한 투자자 관심은 지속되겠지만 중소형사는 사업 아이템과 개별 이슈가 투심을 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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