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썩이던 바이오…반등의 시간이 온다
수익률 부진에 시달렸던 바이오주가 오랜만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 8월 23일(현지 시간)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 가능한 경로에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정책 조정의 시간이 왔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추가 상승을 기대할 만한 모멘텀도 남아 있다. 미국 하원에서 9월 표결에 들어갈 ‘생물보안법’이 대표적이다.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 목적인 만큼 국내 바이오 기업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다만 증권가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주가에 선반영됐다고 말한다. 이럴 때일수록 개별 기업 성장 모멘텀과 펀더멘털(재무·실적)에 집중해 투자할 때라는 조언이다.
자금 조달 잦아 수혜 뚜렷
바이오는 금리 변동에 민감하다. 사업적 특성과 관련 있다.
바이오의 중심이 되는 신약 개발 바이오텍은 자체 영업을 통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자본 시장 등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리 상승 시기에는 이자 부담이 커진다. 또 자금 조달처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
반면 금리 인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자 부담도 적다.
바이오텍을 고객사로 둔 위탁개발생산(CDMO) 부문도 영향을 받는다. 금리 상승기에는 바이오텍 물량이 뚝 떨어지고 금리 인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독립 리서치 법인 그로쓰리서치의 김주형 애널리스트는 “금리는 말 그대로 돈의 가치다. 금리가 인하되면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더욱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며 “금리 인하로 수혜를 받는 기업은 주로 미래 수익을 위해 현재 투자를 필요로 하는 ‘성장주’인데 바이오가 대표 섹터”라고 설명했다.
기대감은 지수로도 드러난다. 국내 바이오·제약 종목 73개로 구성된 KRX 헬스케어 지수가 반등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KRX 헬스케어 지수는 지지부진했다. 연초에는 3000선이 붕괴됐다. 1월 19일 종가 기준 2871.70을 기록했다. 하지만 8월 들어 상승세를 탔다. 8월 28일에는 3937.31까지 올라섰다.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나스닥 바이오테크놀로지(NBI) 지수도 지난 4월 4056.30으로 저점을 찍은 뒤 8월 28일 4874.80까지 올랐다. NBI는 나스닥에 소속된 총 214개 바이오 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다.
다만 모든 바이오 기업이 수혜를 본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주가에 선반영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펀더멘털이 중요하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 인하 기대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정 부분 투자심리에 반영됐다”며 “추가적인 펀더멘털 개선이 향후 주가 향방에 중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추가 모멘텀 확실한 CDMO
에스티팜·바이넥스 주목
결국 바이오 중에서도 성장 모멘텀이 확실한 부문에 주목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CDMO다. CDMO 업계 최대 화두는 미국 생물보안법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 의지가 담겼다. 중국이 강세를 보인 CDMO 분야가 주 타깃이다. 최근 폴리티코 등 주요 외신을 중심으로 생물보안법이 9월 하원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과 시 국내 CDMO 기업 수혜가 예상된다.
증권가는 특히 중소형 CDMO에 주목한다. 중소형 CDMO 주요 고객인 바이오텍이 금리 인하로 물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고 생물보안법으로 성장 모멘텀까지 챙겼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업체는 에스티팜과 바이넥스다. 매출이 우상향 중인 데다 실질적 생물보안법 수혜 성과도 나오고 있어서다. 최근 하나증권과 신영증권, 그로쓰리서치 등이 두 업체를 생물보안법과 금리 인하 대표 수혜 종목으로 꼽은 이유다.
에스티팜은 뉴클레오사이드 기반 저분자 의약품 CDMO 사업을 영위한다. 최근에는 생물보안법 반사이익이 현실화됐다.
에스티팜은 최근 “연간 수조원 이상 글로벌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신약의 원료 의약품 공급사로 선정됐다”며 “중국 대체 공급사로 선정돼 2025년 시생산 원료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파마 중 한 곳이 중국 CDMO 파트너십을 중단하고 에스티팜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에스티팜은 구체적 규모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역시 중소형 CDMO 업체인 바이넥스도 눈길을 끈다.
김주형 애널리스트는 “바이넥스는 국내 대부분 중소형 바이오텍의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수행하고 있다”며 “금리 인하로 자금 조달이 용이해진 바이오텍의 R&D 투자가 늘면 바이넥스가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도 “생물보안법 이슈로 우시바이오나 진스크립트 등 중국계 CDMO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바이오텍의 물량 이전 수요가 상당할 것이고, 바이넥스가 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IPO도 훈풍
삼성 협업한 인투셀 눈길
금리 인하 기대감은 얼어붙은 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도 녹이고 있다. 지난 7월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발표한 벤처캐피털(VC) 투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바이오 부문 신규 VC 투자액은 4208억원으로 전년 동기(3665억원) 대비 14.8% 늘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투자는 초기 팬데믹 시기인 2020년과 2021년 급상승했지만 2022년과 2023년 큰 하락 폭을 보였다”며 “2021년 말 이후 금리 상승으로 투자자들이 떠났지만 최근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진 만큼 투자 분위기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 시장이 주목하는 바이오 IPO 키워드는 ‘차세대 항암제’다. 최근 오름테라퓨틱이 주목받는 이유다. 오름테라퓨틱은 항체-분해약물접합체(DAC) 플랫폼 기업이다.
DAC는 항체약물접합체(ADC)와 표적단백질분해(TPD)를 결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다. ‘항암 유도 미사일’로 불리는 ADC가 암세포를 찾는 항체(Antibody)와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물질(Drug)을 링커라는 연결물질로 결합(Conjugate)한 구조라면, DAC는 세포독성물질이 아닌 TPD 물질로 대체했다.
TPD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또는 분해하고자 하는 단백질을 제거하거나 비활성화한다. 독성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ADC와 달리 안전하다. TPD는 표적화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역시 ADC의 유도 기술과 결합돼 암세포만 분해할 수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기술특례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4월 기술성 평가에서 ‘A, BBB’등급을 받았다. 기술특례상장 진행을 위해서는 한국거래소에서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BBB등급 이상 기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이 필수다. 기술성 평가 문턱을 넘은 오름테라퓨틱은 지난 6월 코스닥 상장을 위한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신청했다. 연내 코스닥 상장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협업해 이슈가 됐던 ADC 플랫폼 기업 인투셀도 IPO 속도를 내고 있다. 인투셀은 ADC 기술인 ‘링커’를 보유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에피스와 ADC 분야 개발 후보물질 검증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고 링커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국내 바이오텍과 R&D(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한 첫 사례다.
인투셀은 지난 2월 전문평가기관 SCI평가정보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각각 A등급을 획득해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다.
지난 8월 26일에는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예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거래소는 예심 청구서를 접수하면 45영업일 이내에 예비심사 결과를 통보한다. 10월 말까지는 심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공모 절차를 밟으면 연내 상장도 가능할 전망이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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