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그곳은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9.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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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난 우려에 리모델링 다시 빛 볼까

한동안 재건축에 밀려 찬밥 신세였던 리모델링 사업이 다시 빛을 보는 것일까. 원자잿값, 공사비 상승에 기부채납 등 각종 규제로 재건축 사업이 주춤하자 다시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단지가 적잖다.

한동안 찬밥 신세였던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사진은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서울 서초구 잠원한신로얄. (윤관식 기자)
리모델링 여전히 인기

전국 리모델링 추진 단지 12만가구 넘어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전국 아파트는 총 153개 단지, 12만1520가구로 나타났다. 이 중 145개 단지 즉 95%가량이 수도권에 밀집했다.

서울로만 범위를 좁혀봐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총 77곳이다. 서울 강남권뿐 아니라 용산, 목동 등 인기 지역에서도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단지가 꽤 많다.

대표적인 곳이 ‘전통 부촌’인 용산 이촌동이다. 이촌 코오롱을 비롯해 한가람, 우성, 강촌, 한강대우아파트 등 주요 단지들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이촌동 강촌아파트다. 용산구 도시계획위원회까지 사전자문을 완료한 후 건축심의를 준비 중이다. 앞서 2021년 10월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2022년 2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단지명은 ‘디에이치아베뉴이촌’이다. 이촌 한가람아파트 역시 머지않아 사전자문을 신청할 것이라는 후문이다. 시공사는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이촌 코오롱아파트도 리모델링 단지로 눈길을 끈다.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해 기존 834가구를 최고 25층, 959가구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을 잡았다. 이촌 현대맨숀은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아 ‘르엘이촌’으로 변신한다. 조합은 리모델링으로 증가하는 97가구를 후분양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양천구 목동에서도 리모델링 단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목동우성아파트는 기존 332가구 아파트를 향후 361가구 아파트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시공사는 GS건설이다. 입지는 나쁘지 않다. 지하철 9호선 신목동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로 대규모 재건축이 예정된 목동신시가지아파트와 멀지 않다.

용산구와 함께 ‘마용성’ 지역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성동구에서는 1986년 준공된 옥수극동아파트가 건축심의 통과를 눈앞에 뒀다. 수직증축 방식을 통해 기존 15층, 900가구를 최고 19층, 1032가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시공사 선정에 나설 예정이다.

강남권에서는 송파구 문정동 현대아파트가 눈길을 끄는 리모델링 단지다. 지난 6월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시공사는 쌍용건설. 기존 1개동, 120가구를 2개동, 138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2000년 준공된 강동구 선사현대아파트도 리모델링을 통해 지하 5층~지상 최고 29층, 3328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한다.

리모델링 인기 비결은

기부채납 부담 없고 준공 15년부터 가능

서울 주요 단지들이 리모델링에 다시 속도를 내는 배경은 뭘까. 원자잿값, 공사비 상승 여파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방안을 속속 내놓지만 워낙 조합원 이해관계가 복잡한 데다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가 산적한 만큼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사업이 훨씬 수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면서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고, 리모델링 조합도 공사비 부담이 더 커지기 전에 사업을 서두르는 분위기라 리모델링이 서서히 힘을 얻는 양상이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비교할 때 사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덜하다. 재건축은 준공 30년 이상이 돼야 추진할 수 있지만 리모델링은 준공 15년부터 가능해 대상 단지가 많다. 기부채납이나 공공임대주택 건설 조건이 없어 인허가 절차도 비교적 단순하다. 조합설립부터 준공까지 평균 10년가량 걸리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5년 남짓이면 준공이 가능하다. 기본 구조물을 그대로 둔 채 수선, 증축하면 되기 때문이다.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지 않아 조합원 부담을 덜 수 있는 데다 조합원 지위 승계 제한도 없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아예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건물 골조를 남기고 다시 짓는 리모델링은 상대적으로 사업 추진이 수월하다. 입지가 좋은 지역 리모델링은 계속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기부채납을 두고 주민 반발이 커지는 만큼 오히려 리모델링이 낫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7차는 최근 기부채납 비율을 두고 주민들이 반발하는 분위기다. 당초 공공재건축에 따른 용적률 혜택을 받는 대신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했다. 조합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마련한 재건축 계획에 따른 공공기여율은 16.1%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시가 최근 추가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시는 기존 3종주거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이 이뤄진 만큼 기부채납을 더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임대주택을 제공하니 추가 요구는 근거가 없다고 맞선다. 서울시와 조합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 추가분담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재건축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민들은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반발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와 조합 간 갈등 중재가 어려워질 경우 재건축 인기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리모델링이 다시 대세로 떠오를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리모델링 역시 공사비 인상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수선 개념 리모델링보다 아예 새로 짓는 재건축 사업성이 낫다고 판단하는 단지도 적잖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일부 주민이 재건축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결의하기도 했다.

정부가 잇따라 규제를 풀어주는 재건축과 비교해 리모델링은 규제 완화가 녹록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국토교통부는 필로티(비어 있는 1층 공간) 설계에 따른 1개 층 상향을 수평증축이 아니라 수직증축으로 간주하도록 유권해석을 바꿔 논란을 불러왔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으로도 가능하지만, 수직증축을 하려면 2차 안전진단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는 안전진단 면제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리모델링 단지들은 오히려 안전진단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수직증축을 통한 가구 수 증가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다.

리모델링업계 숙원 과제인 ‘내력벽(건축물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한 벽)’ 철거도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내력벽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최신 아파트 구조로 변경하는 데 한계가 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안전 문제가 없는 선에서 내력벽 철거를 전향적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규제 완화는 깜깜무소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재건축으로 사업을 변경하는 단지도 등장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한양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추진위원회는 재건축 방식으로 사업을 변경했다. 1993년 준공된 이 단지는 용적률 229%, 건폐율 25%로 재건축 사업성이 좋지 않다는 판단 아래 리모델링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재건축 방식으로 선회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현대아파트 역시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해산 절차를 밟고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결국 구축 단지 주민 입장에서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두고 주판알을 튕겨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사업 속도가 빠른 데다 기부채납 등 각종 규제에서도 자유롭지만, 수직증축을 통해 가구 수를 늘리기가 어렵다는 점이 변수다. 단지마다 사업성을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의견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5호 (2024.09.03~2024.09.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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